더 시커 : 마나가 필요 없어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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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프롤로그



“죽어라, 이 괴물 같은 놈! 너는 살아 있으면 안 된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태어난 너는!”

크로우의 복부에는 화려한 검이 꽂혀 있었다.

성검 아메리스.

과거 일곱의 마왕과 타락한 용사까지 베어 버렸다던 그 희대의 명검이 자신에게 꽂혀 있었다.

뚝뚝.

입에서 흐르는 피는 썩어 들어가는 왼쪽 팔처럼 새까맸다. 수없이 많은 마법과 저주에 당한 결과였다.

역산하여 풀고 캔슬했다고 하지만 결국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나라고…… 나라고 좋아서 누군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게 아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리고 너도 똑같잖아? 너도 결국 이용당하는 처지 아니냐!”

크로우는 박혀 있는 성검을 두 손으로 쥐고 강하게 자신 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아메리스를 들고 있던 ‘용사’가 순간 이쪽으로 끌려왔다.

콰-앙!

“크윽……!”

용사를 향해 강하게 박치기한 크로우는 용사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전부…… 전부 바꿔 주마. 이 빌어먹을 인생도, 그리고 네놈도!”

명백히 상황은 용사에게 유리했다. 성검 아메리스에 찔린 크로우는 당장 1분 뒤에라도 죽을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용해 줄 거다. 날 이용했던 놈들 전부.”

그러나 그런 크로우의 눈에 용사는 순간 압도되고 말았다.

샤아아악-!

용사가 쥐고 있던 성검에 힘을 주려는 그 순간.

성검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적합자], [키워드], [다시 시작] 재구축을 시작합니다.”

1장. 실험체 B-101



아슐란 가문은 몰락한 귀족 가문이었다.

왕국의 뛰어난 가문 중 하나였던 아슐란 가문이 몰락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전쟁.

왕국과 왕국과의 전쟁에서 선봉에 섰던 아슐란 가문은 패배했고 그 결과 가문의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죽어 나가게 된 것이다.

아슐란 가문이 속한 왕국은 패배했다. 승리한 왕국은 선봉에서 맹렬히 싸웠던 아슐란 가문을 기억했고 그들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아슐란 가문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귀족 가문을 왕국은 받아들였다.

물론 정말로 그들의 용맹함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기존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외적인 퍼포먼스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승리한 왕국의 귀족들은 그것을 썩 좋게 보지 않았다. 자신들을 신귀족 그리고 새롭게 받아들인 이들을 구귀족이라 칭하며 차별하더니 이내 괴롭히고 멸시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은근히였지만 왕국이 묵인함에 따라 은근히는 대놓고가 되었다.

전쟁 당시 아슐란 가문은 선봉에 섰기 때문에 꽤나 많은 이들을 죽였다. 그리고 죽인 이들 중에는 귀족가의 자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죽은 자가 포함되어 있던 신귀족의 가문들은 아슐란 가문을 압박했고 협박했으며 가문으로써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괴롭혔다. 가문은 그렇게 몰락의 길을 걸었고 그 끝자락에서 크로우 아슐란이 태어났다.

크로우 아슐란은 어렸을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검이면 검, 창이면 창, 그리고 마법이면 마법.

배우면 배우는 대로 습득했고 누군가 알려 주지 않아도 응용했다.

무엇보다 뛰어난 점은 습득의 속도였다. 이해가 굉장히 빨라 배우고 능숙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크로우 아슐란은 빛이었다. 몰락한 가문을 되살릴 수 있는 빛. 하지만 언제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다닌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슐란 가문의 빛이었던 크로우 아슐란이 어느 날 실종되었다.



* * *



실험체 B-101.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이러한 이름으로 불렸다. 대부분은 어린아이였고 많아도 13살을 넘기지 않았다.

본래부터 이름이 없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이들 중에는 귀족도 있었을 것이고 평민도 있었을 것이며 이러한 이름이 아닌 본래 수없이 많이 불린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선 모두가 실험체에 불과했다.

실험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인간 병기. 전쟁을 위해 사용될 인간 병기를 만들기 위한 실험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그 재능과 적합성에 따라 A부터 C까지 숫자를 부여받았고 그 그것을 이름으로 삼게 되었다.

“똑바로 서라! 실험체들!”

매서운 목소리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불안한 눈빛을 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물론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여, 여기는 어딘가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자그마한 영토.

어딘가에 존재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그런 곳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모여 있는 아이들은 대충 30명가량 되었고 얼어 있었다.

허름한 옷. 그리고 목에는 기이한 아티팩트가 채워져 있었다. 검은 원 모양의 아티팩트로 목 전체를 감싸는 형태를 취했다.

얼어 있는 그들 앞에는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너희들은 팔려 왔다. 팔린 이유야 본 교관들은 모른다. 우리들은 너희들을 구매했기 때문에 구매한 용도에 맞도록 사용하려고 한다! 알겠나! 실험체들!”

“그게 무…… 무슨!”

“여긴 어디냐고 물었어요!”

“어째서 기억이…….”

“닥쳐라!”

실험체라 불린 아이들이 쓸데없는 말들을 하자 교관들이 손에 들고 있는 동전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30명의 아이들이 전부 비명을 질렀다.

“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 아파. 너무 아파!”

“너희들 목에 채워진 것은 아티팩트다. 원하는 만큼 고통을 줄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아티팩트지. 우리들은 너희들을 통제할 수 있다. 고통으로써 말이야.”

고통스러운 와중에 B-101, 크로우 아슐란은 이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 또한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고 있었지만 이것은 연기였다.

이 정도 아픔 따위 이미 수없이 많이 느껴 본 것이다. 참으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왜 살아 있지? 아니, 그 전에 여기는…… 훈련소잖아.’

인간 병기 실험.

통칭 워-머신 프로젝트는 페일트리스 왕국에서 은밀히 진행되던 계획이었다. 실험체로서 조건을 충족한 어린아이들을 납치 혹은 은밀히 구매하여 왕국을 위해 일하는 병기로 만드는 계획으로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계획이었다.

크로우는 일련번호 B-101로서 훈련소를 수료했고 15년간 인간 병기로서 살았다. 그리고 기억을 되찾은 후 그로부터 5년 뒤 사망했다.

아니, 사망했었을 터.

‘그런데 살아 있어.’

그것도 훈련소 시절로 돌아와서.

‘주마등…… 같은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방금의 그 고통은 너무나 생생했다. 분명 이것은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의 자신은 성검 아메리스에 찔려 죽지 않았던가.

깊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실험체들, 대답하지 않으면 같은 꼴을 당할 거다. 내가 너희들을 부르면 너희들은 대답한다. 알겠나?”

“예…….”

“크게!”

파지지지직-!

또다시 아티팩트가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아이들은 비명인지 혹은 대답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20년 전이다. 지금 이 순간은 20년 전 훈련소 첫날이다.’

20년 전의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 그러나 지금은 기억해야 했다. 너무 옛날의 기억이라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기억하려고 하니 싫어도 기억하게 되었다. 지옥 같은 첫날부터 훈련소를 수료하던 그날까지.

‘첫날엔…… 구르기만 했다.’

복종 훈련이라고 했다. 이들은 현재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법으로 기억이 전부 지워졌다.’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어디 살았는지, 누구였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

‘그리고 이 복종 훈련이 끝나고 본격적인 개조에 들어갔지.’

복종 훈련은 고통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기억이 사라져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교관들은 이미지를 형성했다. 말을 거역하면 고통스럽다. 대답하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고통을 주는 교관들이 두렵다.

“빨리빨리 안 움직이나!”

“네, 네엣!”

더 이상 고통스럽기 싫은 여자아이가 크게 대답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이들 전부가 교관의 말에 또박또박 아주 크게 대답했다. 하라는 것은 전부 했다. 더 이상 아프긴 싫었으니까.



* * *



복종 훈련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오랜 시간이라 한 이유는 이곳에 시간을 알 수 있을 물건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알 수 있는 것은 낮인지 밤인지의 구분뿐이었다.

이 영지는 마법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마법과 아티팩트로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이세계였다.

아주 잠깐의 휴식 시간. 3명이 들어가면 꽉 차 앉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방에 4명이 들어 가 있었다.

쉬고 싶었지만 그 쉬는 것조차 불편하다. 모인 아이들은 복종 훈련으로 인한 공포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 전에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머리겠지.

‘전부 아는 얼굴이다.’

현재의 자신과 같은 또래인 아이들.

크로우의 나이가 딱 열 살이었고 마찬가지로 다른 아이들 또한 비슷했다.

‘생각을 정리해 보자. 현재의 나는 10살이다.’

크로우는 자그마해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돌아왔다. 기억을 전부 가지고 돌아왔다. 당시의 힘은 전부 사라졌지만 기억은 그대로야.’

모든 것이 기억났다. 죽기 전의 상황들이며 20년간 굴러왔던 인간 병기로서의 나날들. 그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이 났다.

떠올리지 않으려면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떠올리려고 하니 아주 선명하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기억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몸은 그렇게 개조되었으니까. 모든 것을 흡수하고 절대로 잊지 않도록.

원하는 기억은 잠시 동안 잊어버릴 수 있도록. 그래서 아무런 거리낌 없고 거부감 없이 명령을 이행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의도적으로 강해졌으니까.

크로우가 실험체로 이용당한 워-머신 프로젝트는 왕국의 묵인하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요컨대 왕국이 허락하고 주도한 왕국의 비밀스러운 프로젝트였다.

페일트리스 왕국은 야망이 컸다.

대륙에는 여러 왕국이 있었고 대륙의 패권을 가지기 위해 왕국 간의 전쟁이 쉼 없이 벌어졌다.

다른 왕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페일트리스는 패권을 잡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때문에 대의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묵살. 이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왕국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들을 모아 갖가지 마법과 아티팩트로 그들에게 힘을 삽입.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들-적합자를 전쟁에 사용했다.

물론 전면적인 전쟁에서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은밀한 일들에 전부 투입시켜 사용했다.

그야말로 강력한 무기.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무기에 불과했다.

‘내가 크로우 아슐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족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15년 뒤.’

딱 스물다섯 살 무렵이었다.

더 시커 : 마나가 필요 없어

 

지은이 : 새도

제작일 : 2018.02.20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가영

표지 : 김하영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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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94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