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으로 레벨업 하는 영주님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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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프롤로그



“자~ 오늘도 해 볼까?”

짧은 머리의 한 남자가 기지개를 피면서 말했다.

늦은 저녁의 시간, 밖은 비가 연신 몰아치고 있었다.

“징글징글하게 오는구나……. 뭐 이러면 내일은 나름 시원할 테니 괜찮겠지.”

비가 많이 오면 시원하기는 하지만, 습도 때문에 답답할 수도 있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에어컨을 틀어 놓으니까, 그와는 그다지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럼…….”

그는 눈앞에 있는 캡슐의 버튼을 눌렀다.

가상현실 게임 ‘대군주’에 접속할 수 있는 장치로, 사람의 정신을 게임으로 전송시켜 주는 일종의 접속기다.

끼긱…… 끼긱…….

캡슐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린다.

20년 된 중고를 사고, 거기서 5년을 더 썼다. 한마디로 이제 막 23살이 된 그보다 나이가 많은 캡슐이었다.

“음…… 이것도 한계구나…….”

싼값에 덜컥 구매를 했는데, 슬슬 캡슐의 끝이 찾아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리를 하면서 버텨 왔지만, 더 이상 끌고 갈 순 없을 것 같았다.

“뭐…… 게임도 오늘이 마지막이지……. 조금만 힘내라.”

그는 캡슐을 애정 넘치는 손길로 쓰다듬었다.

오늘로 그의 게임 생활은 끝이 난다. 그가 하는 유일한 게임 ‘대군주’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서비스 종료를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날 남자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그래…… 조금만 힘내 줘……. 너도, 나도 오늘로 끝이니까.”

남자는 캡슐 위에 몸을 눕혔다. 그러자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캡슐 뚜껑이 닫힌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장치가 나와 그의 몸에 붙었다.

남자는 접속을 시도했다.

“대군주, 접속.”


-플레이어, 강민철 님을 인식했습니다.

-홍채 스캔을 합니다. 눈을 크게 떠 주세요.

-홍채 인식…… 2…… 1……. 완료됐습니다.

-대군주에 접속합니다.

-환영합니다, 대군주 아바로스트 님 영지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5년을 넘게 들어온 알림 음에 민철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정신이 아늑해진다. 게임에 접속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낡은 캡슐 안에서 마지막 게임을 즐기고 있을 때, 밖에서는 천둥 번개가 내려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굵은 번개 하나가 그의 집 위로 떨어졌다.

1화



“…….”

민철은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대군주라는 게임의 마지막 플레이를 즐기고 있었다.

거대한 영지와 수천만 명이 넘는 영지민을 보유하고 있는 대군주 중에서도 최상위급 플레이어였던 민철, 아니 아바로스트는 마지막 게임을 플레이하는 도중, 돌연 이상한 메시지를 받았다.


-비상! 비상! 과도한 전력 공급으로 인해, 캡슐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즉시 캡슐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강제 로그아웃이 실행됩니다. 5…… 4…… 3…….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정신이 멀어졌다. 로그아웃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마치 어디론가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라고 할까?

무언가가 자신을 붙잡고,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다시 일어났을 때, 그는 전혀 다른 공간에 놓여 있었다.

마지막에 본 게임 내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공간.

그는 하얀 옷을 입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응?’

무심코 중얼거린 그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지금 내뱉은 단어는 한국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 일본어나 그런 부류의 언어도 아니다.

차원이 다른 언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색적인 언어였다.

‘뭐지? 뭔데…….’

“크윽!”

민철은 물밀 듯이 밀려오는 두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머릿속으로 갑자기 엄청난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곳이 어딘지, 이 몸이 누구의 몸인지…….

이 기억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기억!

“그…… 만……!”

엄청난 양의 기억은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깨질 것 같은 두통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고통!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컥……!”

엄청난 기억들이 순식간에 재생되며, 민철에게 각인이라도 시키듯이 그에게 모든 것을 보여 준다.

이 몸의 주인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전부....

그것이 민철에게 스며들며…… 점차 그의 것이 돼 가고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엄청난 두통은 시간이 지나자 점차 사그라졌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아…… 하아…… 미친…….”

욕지거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의 두통이었다.

머리가 깨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하아…….”

그는 한숨을 내뱉었다.

두통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 기억은 이 몸의 주인이었다.

“바데르 후작의 막내아들, 바데르 오르딘인가…….”

그는 몸의 주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전부 이해됐다. 바데르 오르딘은 사냥을 나갔다가, 말에서 낙마를 하고 말았다.

한데 그 말에서 떨어졌을 때, 하필 머리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그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고, 그대로 1년 동안 침대에서 의식불명인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바데르 오르딘은 죽었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같은 시각, 민철 또한 죽었다.

서로 다른 차원이 인간이 도원결이라도 맺은 것 마냥 한날한시에 죽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죽은 오르딘과는 다르게 민철은 죽지 않았다.

그가 속해 있던 차원에서 죽기는 했지만 그의 영혼은 차원을 넘어서 바데르 오르딘의 몸으로 다시 환생하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미친 소설 같은 이야기야…….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현실을 쉽게 부정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

그리고 게임에서 마지막으로 본, 메시지 창…….

그는 마지막으로 게임 접속하기 전에 본 창밖 풍경을 떠올렸다. 언제 천둥 번개가 내리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였다. 거기에 민철의 집은 맨꼭대기였다.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설마 거기서 번개가 내리쳐서, 캡슐에 과부하가 걸려서, 감전돼 죽었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리 들어도 한심한 이야기다.

그가 살고 있는 집 옥상에는 피뢰침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번개가 내리친다고 해도, 그에게 피해가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아.”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일이 있었다.

‘그 피뢰침, 내가 빨랫줄 묶는 걸로 사용했다가 부러졌지…….’

두꺼운 이불을 말리려고 했다가, 피뢰침이 두 동강 나서 부러진 것이 떠올랐다.

그 이후, 피뢰침을 몰래 구석에 밀어 넣은 것은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인과응보.

그가 했던 일이 부메랑이 돼, 다시 돌아온 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정은 끝나지 않았다.

“혹시 이거, 게임 후속작 아니야? 맞아, 그럴 수도 있잖아? 대군주가 그런 식으로 끝날 리 없지, 그래! 이건 후속작이야! 분명해! 그럼 일단 로그아웃 좀 해 볼까?”

가장 현실성이 높은 가설을 세운 민철은 다시 한 번 대군주를 플레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는 평소처럼 메뉴를 불렀다.

“메뉴.”

하지만 눈앞에 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운영자 소환.”

이것도 묵묵부답.

“로그아웃!”

“귓속말!”

“친구 목록!”

게임 내에서 사용했던 명령어를 말해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내심 포기할 생각으로 마지막 명령어를 내뱉었다.

“하아…… 상태 창…….”

팍!

“응?”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이건…….”

게임할 때 많이 봤던 상태 창이었다.


이름 : 바데르 오르딘

나이 : 15살

성별 : 남

종족 : 인간

레벨 : 1

생명력 : 300/300

마나 : 300/300

-힘 6, 민첩 6, 지혜 3, 지능 5, 체력 3, 행운 2

-보너스 능력치 : 0


“허어…….”

갑자기 떠오른 상태 창에 민철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상태 창은 나타난 것이다.

“혹시…….”

그는 지금까지 읽었던 판타지 소설을 떠올렸다.

한창 즐겨읽던 소설 중 하나가 있다.

퓨전 판타지로, 그 중에서 자신처럼 게임을 하는 도중, 여러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이 세계로 넘어오는 부류의 소설이다.

“그런 것과 비슷한 건가?”

아직 확인이 더 필요했다.

민철은 다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명령어를 말하려고 할 때, 그가 누워 있는 방의 문이 열렸다.

“도련님 실례하겠습…….”

한 메이드 여성이 들어왔다. 제법 귀여운 얼굴을 가진, 한국인 평균 키를 가진 여자 메이드!

‘아마…… 벨라라고 했지?’

그의 머릿속에 여자 메이드의 이름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있던 그의 전속 메이드였다.

그가 실수하거나, 다치거나 할 때, 화를 내 주고, 걱정해 주는 착한 메이드.

다른 귀족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례할지 모르겠지만, 오르딘은 그런 그녀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 집안에서 그의 편이 돼 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

벨라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땡그랑!

그러곤 들고 온 쟁반을 떨어트렸다.

내용물을 보아하니 죽이다.

아마 정신을 잃은 그에게 먹이기 위해서 준비한 모양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사람을 봤으면 일단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는 일단 손을 들었다.

“안녕, 벨라? 잘 지냈어?”

‘이렇게 하는 거 맞겠지?’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러자 벨라의 두 눈동자에서 투명한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으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민철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 큰 여자가 자신이 인사하자마자 대성통곡을 한다.

아마 굳이 민철이 아니라고 해도 다들 당혹스러워 할 것이다.

“아니, 왜 갑자기 울기 시작한 거야?”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리고 5분 후, 사람들이 벨라의 대성통곡을 듣고 찾아올 때까지,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 * *



“아들…… 깨어났구나!”

아름다운 여성이 그에게 다가온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자.

바로 바데르 오르딘의 어머니였다.

‘아…….’

그녀를 보는 순간, 민철 아니 정확하게는 바데르 오르딘의 육체는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를 만났다는 감정이 그를 지배한다. 민철은 갑자기 찾아온 그리움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뭐야…… 뭐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민철은 당황했다. 그때, 갑자기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정말 다행이구나……. 엄마는…… 네가 죽는 줄 알았어…….”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그를 감싸 안는다.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민철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당신의 아들은 죽었거든요?’

죽은 아들 대신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면 그녀는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아들을 돌려 달라고 울부짖을까? 화낼까? 어떻게 될까?

어릴 때 부모를 잃은 민철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네…….’

누군가가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 준 것은 단연코 처음이다.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진정되고,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그렇게 따뜻한 공기가 방 안에 감돌고 있을 때, 마치 드라이아이스라도 잔뜩 집어넣은 것 마냥, 갑자기 분위기가 식어 버렸다.

한 남자의 등장으로 말이다.

시스템으로 레벨업 하는 영주님


지은이 : 오브더

제작일 : 2017.10.11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민혜

표지 : 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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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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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71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