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로 살아가는 법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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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프롤로그>



[소원을 이루고 싶지 않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눈앞, 또는 휴대폰에서 이런 문구가 뜬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니의 요술램프처럼 무엇이든지 이루어 줄 수 있다는 문구.

힘들고 각박한 세상에서 달콤한 쉼터 같은 말.

그것은 수많은 사람을 불에 이끌린 불나방처럼 ‘균열’로 이끌었고, 그들은 치명적인 생존게임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목숨과 생존에서 발버둥치며 살아남은 자들이 끝에 올라가면 갈수록, 그 끝은 비참함을 줄 뿐.

“히야……. 이거, 사람 뒤통수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언제부터 그 지랄한 거지?”

벽. 그 어떤 끈적이는 것으로도 붙을 것 같지 않은 매끈한 대리석 벽면 아래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단단한 흑색의 갑옷, 거기에 코뿔소를 연상케 하는 강인한 투구. 한눈에 봐도 강자라고 생각할 모습이지만 지금 모습은 패배자에 가까웠다.

그는 이전까지 아무도 뚫지 못했던 선혈의 공간을 뚫은 남자로서, 소원이라는 선물 대신 죽음이라는 선고를 받아든 상태였다.

“소원이라더니 역시 새까만 거짓이었군. 이 새끼들 순 사기꾼이네. 나 참, 역시 이런 건 함부로 하면 안 됐는데.”

가슴 아래로 시뻘건 웅덩이가 생성될 정도로 다친 그.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사내는 마치 가벼운 일이라는 듯 입을 놀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남자는 작금의 위기가 별로 개의치도 않는다는 말투였다.

죽을 위기에 초연해진 걸까? 아니다.

차라리 이 남자의 성격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그래도 설마 여기까지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네. 안 그래? 박사!”

마치 악마와 같이 뱀처럼 찢어진 눈자위를 가진 소년의 시선이 옆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박사라고 불린, 흰 가운의 사내가 있었다. 그의 옆에는 초록색의 커다란 원통에 사람 얼굴들이 가득히 뒤엉켜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영혼을 모아서 뭘 하려는 거지? 게임은 재미있더라고. 개발자가 서비스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남자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현실에 강림시키는 거다. 그리고 이미 늦었다. 네놈 정도의 영혼과 그동안 모은 영혼이라면 충분하지. 세계가 멸망……. 아니, 내 손에서 재창조된다는 걸 깨달아라. 허세 부리는 자여.”

박사가 자신을 조롱하는 남자에게 담담히 계획을 설명했다.

“강림? 이 게임을? 아서라, 아서. 대단하긴 한데 게임을 싫어하는 노년층이 많다고. 그거 당장 국회에서…….”

푹.

남자가 그렇게 재잘대는 사이에 기다란 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어버리고 말았다.

단단해 보이는 갑옷을 여지없이 관통한 그것. 삽시간에 남자는 바닥을 뒹굴며, 멀리 밀려나고야 말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남자군.”

“그것보다는 비장의 수가 있으니까 이러는 게 아닐까?”

두 사람은 낄낄대며 죽기 일보 직전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별안간 남자의 손에 커다란 큐브가 나타나며 빛나는 게 아닌가?


-랜덤 박스를 발동합니다.―

1. 당신이 바칠 포인트를 선택하세요.

2. 바친 것에 따라 선물이 결정됩니다.


“무, 무슨 짓을?”

갑작스러운 움직임, 그리고 앞에 물음표 무늬가 새겨진 상자.

‘저게 무엇일까?’ 하는 값싼 의문보다 몸을 먼저 움직인 그들이었다.

“어디 한 번 어떻게 되나 보자! 내 모든 걸 건, 랜덤박스 스킬이다! 내 목숨을 걸 테니까 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남자는 자신의 랜덤박스 스킬을 가동하면서 외쳤다.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스킬에 비해 등가교환이라는 형식으로 항시 기적을 만들어내는 스킬.

여기에 그는 자신의 모든 포인트와 목숨을 건 것이다.

“아니!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등가 교환식인가?”

악마와 박사가 당혹해 했지만 중과부적.

그렇게 붉은 기운이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모두의 마음속에 예측 불가의 사태가 떠오름과 동시에 그것은 하나의 폭발로 일어나고야 말았다.

<돌아온 과거>



언제부터였을까? 이 악몽의 무대가 나타난 게.

3년 전, 요즘 같은 시대라면 군대를 두 번 갔다 올 시간 동안 균열은 존속하고 있었다.

대체 왜? 누가? 어째서? 라는 의문에 답할 수도 없었다.

균열은 그들의 물음에 응답한 자만 잡아가는 게 아니라 무심코 그걸 건드린 자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분명, 그때 난…….’

그렇게 풀밭에 누워 살짝 예리한 눈매를 매만지며, 여울은 눈을 떴다.

“여기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한 기분과 함께 기묘한 광경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사투가 마치 거짓말인 듯, 숲 속엔 산들 바람이 여유롭게 불고 있었다.

‘설마……. 천국은 아니겠고, 어떻게 된 거지?’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뿐. 여울은 곧, 이곳이 아주 익숙한 곳임을 깨달았다.

‘초심자의 숲 속인가? 내가 최초로 왔을 때…….’

그때의 순간을 어찌 기억하지 못할까?

그는 옛 동창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균열이 나타나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그것이 예전 기억이었다.

“여기 뭐야?”

“뭐야? 누구야? 회사에 있었는데?”

익숙한 반응들이 여울의 귀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온 자들의 어리둥절함과 궁금증이 사방에서 터지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온 건가? 아니면 첫 포인트로 온 건가?’

이게 환상이 아니라면, 그는 그곳을 벗어난 게 아닌가. 인류를 희생양 삼으려는 그 미친놈들에게.

“여, 여울아!”

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존재가 눈앞에 왔다.

“얌마! 살아있었어?”

바로 자신의 동창인 신우가 황급히 달려오는 게 아닌가. 그는 초반에 죽은 자였다.

그런 그가 눈앞에 있다? 이게 과거라는 명확한 증거다.

“어떻게 된 거야?”

“균열이야. 그 빌어먹을 균열이…….”

뻔하지만 당연한 말을 내뱉었다. 과거로 왔다.

어떻게 온 건지 모르겠지만, 랜덤박스가 기적을 일으킨 게 아닐까? 어리벙벙해 있지 않고 상황을 파악하는 여울이었다.

‘잠깐? 그러면 놈들을 잡을 수 있겠어.’

게다가 과거로 온 거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는 상황을 미리 체험하고 온 게 아닌가.

‘이번에는 잡는다.’

예전의 그는 악착같이 소원을 이루겠다는 욕망으로 올라갔다.

사실 그가 원해서 균열에 온 것이 아니다. 그저 불행히도 균열이 나타난 것일 뿐. 그런데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니 개고생하며 올라갔는데 소원은커녕 사람의 영혼을 매개로 지옥을 만들려는 자들만 있었다.

“여울아, 왜 그래? 표정이 무섭다?”

“아니야. 좋아. 우중충하게 있지 말자고. 일단, 일어서야지.”

‘그래, 선 포인트를 쌓고 메이저 카드들을 얻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과 자신을 뒷받침해줄 자들이 절실했다.

혼자서는 안 된다. 초반에 쌓기 쉬운 악 포인트로 정점까지 간 그였지만 결국 뒷심이 딸리지 않았는가.

다시 돌아온 기회라면 그걸 만회할 수 있으리라.

‘어차피 요건은 대강 아니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조건과 퀘스트.

다는 아니지만 성장하기 쉬운 포인트는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다 안 깨어났나? 슬슬 목소리가 우리를 인도할 텐데.’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나 첫 테스트를 인도해주는 망할 목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았다.

“일단 붙어서 다녀야 한다. 뭔지도 모르니.”

“그래, 그래야지. 근데 다른 애들은 없어. 어떻게 된 거지?”

190cm되는 큰 체구에 살짝 통통한 몸, 그가 아는 친구 신우가 당혹스럽게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물론, 마찬가지로 다들 어리둥절해 하고 황당해하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모두 깨어나셨군요. 욕망에 찌든 어리석은 중생들이여. 모두 자기 앞쪽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왔다.’

그렇게 모두가 자기 자신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 살갑게 울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면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마치 빛이 강림하듯,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가 어느새 그곳에 나타나 있었다.


[모두 깨어났군요. 이곳에 억지로 왔든 자발적으로 왔든 당신들은 움직여야 합니다. 네, 이곳에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 초보자이기에 그냥 내보냈다가는 죽겠죠. 우리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랍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가벼운 운동을 시켜줘야겠죠? 제가 무기를 준비해주겠습니다. 모두 하나씩 들고 눈앞의 몬스터랑 싸워보십시오.]

상냥하지만 기괴하다. 감정 없이 원고지 읽는 목소리라고 할까?

그렇게 경고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그 빛 옆에는 매트릭스처럼 온갖 무기가 정렬되어 전시된 벽이 나타났다.

“크아아아!”

거기다가 빛의 뒤에는 얼굴 반쪽이 부패한 사람 덩치만 한 늑대 세 마리가 노려보고 있었다.

“꺄아악!”

“저거 뭐야!”

사람들은 전부 기겁했다.

‘움직여야 해.’

여기서 여울이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좋은 포인트, 그리고 히든 피스. 초반에도 존재하지 않는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가자.”

“어? 왜? 움직이게?”

여울은 가장 먼저 어리둥절한 사람들 사이로 신우를 끌고 갔다.

‘여기서 먼저 잡고, 동료를 이끌어주면…….’

추가적인 이득이 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신우 녀석도 여기서 안 죽게 하려면 가야 해.’

그가 아는 과거에서는 신우가 이 미션에서 죽었다.

아무리 연습용 몬스터라도 방심하면 죽는 게 이 게임의 무서움이었다.

죽으면 그걸로 끝. 영혼을 빼앗기고 만다.

‘총. 총이 어디 있지?’

그리고 여기서 그가 선택할 무기는 총이었다.

이 게임에서 자신이 처음 선택한 무기가 곧 직업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무기 선택은 중요한 갈림길이다.

차후 성장 시 무기에 따라 스탯이 올라가는 방식이기에 여울이 생각한 직업을 위해서는 총이 나은 선택이리라.

마침 그의 시선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것이 들어왔다.

게임에서 자주 보던 불펍식 돌격소총.

그는 당연히 그것을 골랐다. 일반 소총보다야 짧고, 두꺼운 외관에 총열이 파묻힌 것처럼 보이는 이것. 초반에 사용하기에 아주 좋은 무기이다.

각 무기에 따라 다르지만 이곳에서 총은 총알 필요 없다. 게다가 연사력을 보장하기에 선택할 수 있는 무기 중에는 이게 장땡이었다.


(민첩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포인트가 부족하다고 뜨는 게 아닌가? 그러면 사용을 하지 못한다.

‘그래, 이걸로는 못하지. 너도나도 이걸 고르면 힘드니까 제한이 걸려 있어.’ 

회귀자로 살아가는 법

 

지은이 : 고대나무

제작일 : 2016.07.21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권아주

표지 : 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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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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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13-01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