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 대하여>로 인상적인 출발점에 선 김화진의 연작소설. 5월인데 열대야처럼 무더웠던 어느 봄밤 어쩌다 한 테이블에 앉게 된 친구들, 주희, 솔아, 지원, 현우는 (나중에 합류한 공룡 피망이까지) 그 자리에서 오가는 서로의 마음 씀씀이가 좋아 친구가 되었다. 각자 되고 싶은 게 되기 전까지 필요한 노력들을 알아서 하는, '되기 전 모임'을 만들어 자신이 쓴 글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 주희는 '그 사람들이 전부 나 같았고 그래서 좋았다'(18쪽)고 그 밤에 대해 적었다. 인과 없이 시작된 우정은 인과 없이 끝나기도 하는 법. 파들파들 물장구를 치던 지느러미가 멈추고, 움직임이 멈춘 자리에 이제 마음만 남았다. '나는 그 친구를 잃지 않으리라고 과신했다. 잃어버리지 않는 친구,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49쪽) 김화진의 친구들은 이렇게 마음을 더듬으며 마음이 있었던 자리 안쪽을 자꾸만 들여다 본다.
지원의 이야기 <나 여기 있어>는 MBTI 테마소설집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에 INFP가 주인공인 세계를 주제로 실린 소설이었다. 나는 종종 마음이 물러지는, 그래서 종종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나의 INFP 친구를 떠올리며 이 소설을 읽었다. 꼭 내 친구들이 했던 말들 같아서 이 친구들의 뒷모습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눈치가 없는 나는 그들이 진작 떠나버렸고 이제 내 친구가 아니라는 걸 계절이 몇 번은 지나야 알았다. 꼭 나 같은 친구들에게, 우는소리 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혼자 우는 친구들에게, "친구들은 자꾸만 떠나가고 그때마다 처음인 것처럼 속상하네요." (136쪽)라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야 나는 뭐 좋아서 니 마음에 대고 매번 노크하고 그 마음 앞에 찾아가고 기웃거리는 줄 아니."(189쪽)라고 투덜대면서도 기어이 다시 마음을 두드리는 친구들에게, "좋은 걸 보면 회복된다. 그러니까 좋은 걸 자꾸 보면 되는 거야."(170쪽) 다시 용기내는 친구들에게, 그러니까 '사랑의 신'인 나의 친구들에게 권하고 함께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 소설 MD 김효선
왜 모든 건 지나가고 마는지, 우리가 이렇게 생생하게 사랑하고 화내며 살았는데, 그 즈음엔 그게 자꾸만 슬퍼서 드라마든 영화든 그 비슷한 것들만 보면 울었어. 노인들이 나오고 회상 장면 속에서 젊은 모습이 나오다가 다시 늙은 모습으로 끝나게 되는 그런 거. 그 여름에 나는 그 정도로 삶이 좋았다. 내가 아직 젊다는 게 좋았어. 내가 여름 같았어. 뜨겁고 물기가 차오른. 언제 어디에 있는 물가에 빠져도 깔깔 웃거나 엉엉 울어도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