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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를 주우며
최영숙

살구는 자기가 살구인 줄 모를 거야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지천으로 땅에 떨어질까,

살구를 줍는다

장마 끝 후두두 떨어진 내 마음의 살점

둥근 황금고리를 친 살구알이 여기저기 널렸다

상한 것보다 흠집이 더 많은

이건 비바람의 상처, 천둥과 번개가 아문 자국이렷다

불주사 그 더운 열기가 속으로 익었다?

조카 두 놈이 작대기를 들어 가지 사이를 휘젓는다

아파라, 때때로 내 마음 아닌 마음 매 맞는 것 같아

검은 구름 몰려가 터진 사이로 날아가는 새떼들같이

맑은 하늘 촘촘히 매달린 살구알 올려다보며

아이야 그만 내치라,

장마물에 신맛 단맛 다 빠진 살구는 그러나 싱겁고

늘 남들보다 한수 늦게 웃고 우는 내게

아차, 이 녀석

가지를 쳐도 덜 익은 건 안 떨어진다, 한다

익은 건 떨어져도 안 익은 건 가지를 꼬옥 잡고 있는다, 한다

투둑, 투두둑, 살구가 구르다 멈춘 자리

결국 내가 잡아온 생이란 가지는 어떤 것이었을까

마음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여기서 본다

불에 덴 자리 시커먼 속에서 더 향내 나는지

어떤 건 개미떼 까맣게 줄을 섰는데,

살구는 아마 자기가 살구인 줄도 모를 거라

모르면서 그렇게 한여름 익어가고 있는 걸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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