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이미 이곳에, 2021년의 얼굴들"
젊은작가상이 2021년의 봄을 알린다. 수상자로 호명된 작가는 전하영, 김멜라, 김지연, 김혜진, 박서련, 서이제, 한정현. 모두가 젊은작가상을 통해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이다. 아직은 낯선 작가를 만나는 설렘. 아직 단독 작품집을 출간하지 않은 작가, 전하영이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55쪽)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중 '매사에 분명한 여자'를 맡고 있다. 매혹적인 친구 '연수' 옆의 여자1을 맡은 여자. 이 성애의 화살표에서 '소외된' 여자는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혹은 자신에게만 세상의 다른 면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한때 영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나는 이제 중년에 가깝고, 계약직 행정사무 보조로 대학에서 일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현재의 나는 대학 시절의 강사 '장 피에르'와 '연수', 그리고 '나'로 이루어진 술자리와 파리 여행 같은 것을 기억해낸다. 연수의 허벅지를 만지던 장 피에르의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 우리를 매혹했던 장 피에르의 유약하고 책임감없는 기질이 2021년엔 어떤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할지. 우리가 사랑했던 예술의 자리에 놓인 잔해를 우리가 어떤 말로 정의해야 할지, 이제 우리는 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바닷가로 떠밀려온 쓰레기를 보면 참담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줍게 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소설은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야." (56쪽)라는 연수의 문자와 함께.
"어느 날 두 사람은 학생회관 옥상에 앉아 부당한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다 그 미움을 사랑으로 바꿔 특별한 목적 없이 세상을 향해 온정을 베푸는 일을 도모했다." (김멜라, <나뭇잎이 마르고> 91쪽) 앙헬, 체, 대니 같은 이름들. 주어진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소통하는 김멜라의 사람들처럼. '과학 소녀'가 나오는 소설을 쓰는, '껑충한 남자 옷을 걸친 여성'이 아닌, '경준'으로 불리어야 마땅한 한정현의 사람들처럼, 다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소설을 읽는다. 그 온정이, 낙관이, 우리의 2021년을 기록한다.- 편집 주간회의
"월급만으로는 부족해! 장류진과 달까지!"
2006년 데뷔한 야구선수 류현진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거머쥐었고 그 기록은 아직 류현진의 것이 유일하다. 시즌은 매해 치러지고 신인왕은 매해 탄생하지만, 이른바 '괴물 신인'의 출현은 (안타깝지만) 매 해 있는 사건은 아니다. 신인작가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의 출간 역시 매 해 찾아오는 유형의 사건은 아니었다. 판도를 뒤흔든 한 권의 책. 화제의 작가 장류진이 장편소설로 독자를 찾았다.
초코밤으로 유명한 마론 제과에 입사한 세 여성.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팀에서 겉돌고 있다. 스낵팀의 다해, 구매팀의 은상, 회계팀의 지송. 인사평가는 늘 '무난'을 넘지 못하고, 상사는 존경할 만한 구석이 없다. 자신의 월급은 모두 모으고 부모님의 지원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 특유의 '해맑음'과는 다른 낯빛을 지닌 그들. 디테일을 잘 알아보는 구석진 곳에 선 이들, "우리 같은 애들"(193쪽)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보고 친구가 된다. 이 우정을 이끌어나가던 언니, '은상 장군'이 어느 날 탑승한 코인 열차, '이더리움'의 등락과 함께 이들의 우정도 거대한 낙차에 휘말리게 되는데.
'달까지' 라는 표현은 차트 급상승을 기원하는 코인 시장 참여자들의 은어라고 한다. 2017년의 코인 열풍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더리움의 5년 간의 차트를 펼쳐놓고 시점을 맞추어가며 '팔아야 해, 팔면 안 돼' 이들을 응원하며 이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 어디까지 간다고?" 이 외침이 서늘하게 들리는 것은 일확천금이 아니고선 '모든 게 유려하고 우아'(179쪽)한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열차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 소설가 정세랑은 "장류진을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은 많겠지만 아무도 따라 하지 못할 것이다. 장류진이 쓰는 소설은 장류진만 쓸 수 있다."라고 이 소설을 이야기한다. 적절하게 달고 적절하게 쓰다. 이 미묘한 맛의 배합은 장류진만이 할 수 있다.- 편집 주간회의
"가즈오 이시구로,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발표 소설"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되는 인공지능 로봇 매장. 쇼윈도에 진열된 '클라라'는 바깥 세상에 호기심이 많다. 거리를 비추는 햇빛의 색깔과 무늬, 아이들의 웃음소리, 서로를 끌어안는 사람들의 행복한지 속상한지 모를 표정. 창밖 풍경을 빠짐없이 눈에 담아 언젠가 인간 친구를 만나 그 세계 속에서 함께할 자신을 상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라 앞에 다가온 한 소녀. 걸음걸이가 불편하고 어딘가 그늘을 가진 듯한 조시를 보고, 클라라는 한눈에 조시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인공지능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물음이 무례하게 느껴질까 조심스러운 것은 소설 속 클라라가 보여준 무수히 따스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에 '마음' 외에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과 상호작용을 유심히 관찰하며 기억하고, 진심을 다해 위로의 말을 건네고, 태양이 자신에게 주는 양분과 힘이 조시에게도 닿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행동하는 클라라.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건네는 자신의 전부에 대해 생각한다.- 편집 주간회의
"<프로이트의 의자> 정도언 10여 년 만의 신작!"
삶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운명의 몫, 사건에 대한 해석은 나의 몫이다. 나를 둘러싼 일들을 어떤 이야기로 읽어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정신분석가 정도언 교수는 정신분석이 인생의 이야기를 고쳐 읽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이번 책은 상실감, 환상, 자기애, 정체성, 초자아, 열등감, 공격성, 고독감의 8가지 주제를 다룬다. 그는 삶의 면면에서 관성적 사고 아래 작동하고 있는 무의식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적극적으로 기술을 제시한다기보단 담담하게 생각을 풀어내는데, 30년 간 마음의 세계를 탐구해 온 그가 부드럽게 꺼내어놓는 무의식에 관한 진실들이 마음을 툭툭 치고간다. 우리 각자 인생의 서사를 건강하게 구성하도록 돕는 책이다.- 편집 주간회의
""백은선의 시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시집 <가능세계>,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의 신작 시집.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의 언어로'라고 선언하며 시작하는 시. 시집을 여는 첫 시는 <클리나멘>이다. 나이테처럼 구불구불 퍼지는 말의 행렬. 이 행에 눈이 멈춘다.
모든 여자가 스물한 살이었거나
스물한 살이 될 거라는 게
고통받을 거라는 게
보는 눈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클리나멘> 중
감히 납작함을 무릅쓰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에 실린 시인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본다. "스물한 살부터 스물여덟 살 때까지, 매일 700칼로리를 계산해서 먹었고 그 이상은 먹지 않았다." (75쪽) '스물한 살'의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게 맞았을까. 우리가 존재한 그 방식이 예술적인 게 맞았을까. 다시 <클리나멘>속, 시인은 변주하며 다짐한다. "아름다움을 갖는 것 / 아름다움을 잊지 않는 것 /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
"고전들의 정수만 두고 다시 쓰는 일을 하고 싶어요." (<픽션다이어리> 부분) '보르헤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쓴 시' (<졸업> 부분)에서 시인은 어딴 서사에 대해선 '빻았다'는 평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지만, '이전'과 같은 눈으로 이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점은 확실해보인다. 나침반을 잃은 탐험대처럼 헤맬 수 밖에 없는 말들. 그리하여 이 시집에서 백은선이 취하는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문장을 숨기기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많은 말 속에 숨기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아니야 그냥 두는 거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부분) 라고 말하며 '그냥 둔' 많은 말들. "대신 무엇을 쓸 수 있을까요? 떠올렸다고 하면 될까요? 봤다고 하면 느낀다고 기억한다고 하면 뭐가 다른가요? 그런 안일 속에서 쓰며 쓰며 쓰며" (<우리가 거의 죽은 날> 부분) 이어지는 긴 시를 따라 읽으며 노고를 무릅쓰는 사랑을, 부스러지기 위해 나아가는 용기를 읽는다. "한국 시에 벌어지는 사건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는"(시인 황인찬의 추천사 중) 순간. 백은선의 시집이 2021년에 도착했다.- 편집 주간회의
"알고 있던 것들을 잊어야 할 때"
이미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경험과 학습 등으로 한번 자리잡힌 생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시험을 볼 때 답을 고치면 십중팔구 틀린다거나, 개구리를 찬물에 넣고 끓이기 시작하면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저자 애덤 그랜트는 진리처럼 여겨지는 그 이야기들을 연구를 통해 '다시 생각해' 봤더니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오랜 믿음이 바뀔지는 미지수다. 우리에겐 이미 형성된 지식과 견해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옷과 신발, 휴대폰은 최신형으로 쉽게 바꾸면서 생각은 수십 년간 바꾸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이 긴급히 도망쳐야 하는 순간에도 무거운 장비를 버리지 못하고, 특급호텔이 극심한 불황에도 '1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렇다. 다시 생각하기는 배우고 알고 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정신적 유연성을 기르는 일이다. 다행히 호텔들은 재택근무자와 호캉스족을 위한 무박상품을 내놓고, 항공사들은 무착륙비행을 통해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우리 개인과 기업에겐 다시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곧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편집 주간회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신작"
홋카이도 동부의 작은 마을 에다루에 사는 소에지마 가족 3대. 할머니 요네의 탄생부터 손자 하지메의 귀향, 그리고 그 곁을 지킨 네 마리의 홋카이도견들까지. 약 백 년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가 소설 속에 잔잔히 흐른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인연 속에 머무르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인간의 생을 담담히 그려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경험한 슬픔과 기쁨과 아픔을 이야기 안에 담아 완성한 장편"이라는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말이 소설의 분위기가 전작들에 비해 유난히 고요하고 정적인 까닭을 짐작케 한다. "별처럼 밤의 시가지처럼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는 소설 속 표현처럼, 하루하루의 희로애락도 이렇게 커다란 정경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조망하면 그저 아름다울 뿐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 치도 삶을 미화하지 않고 지독하게 객관적이건만, 어째서 이리도 아름다운 것일까!”라는 감탄사를 덧붙이며 가쿠타 미쓰요가 추천했다.- 편집 주간회의
"두 여성 학자가 주고받은 병, 죽음, 운명에 관한 편지들"
말 한마디도 얹기 어려운 책이 있다. 초연하게 분석하기엔 책을 읽은 후의 감정이 아무래도 식지 않아서다. 이 책은 평생 '우연'을 연구하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질병과 죽음, 확률과 선택의 문제를 고민해온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가 나눈 편지의 모음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들은 질병, 죽음, 우연, 운명, 불운, 불행에 대한 생각들을 나눈다. 마키코는 죽음으로 향하는 중에도 단정하고 꼿꼿하며 마호는 함부로 위로하지 않되 다정하고 사려 깊다. 이들이 나누는 아름다운 대화가 분명하고 따스하게 졸졸 흐른다. 책을 읽는 동안 무수한 감정이 끓었다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그것들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책은 내 옆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라는 예감만이 확실하다.- 편집 주간회의
""이 시간을 건너면 다시 여행이 찾아올 거야.""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하루에 백 번쯤 내뱉지만 현실은 꽉 막힌 공간에 있는 우리에게. 휴가가 있더라도 쉽게 여행을 선택할 수 없는 우리에게. 여행의 기쁨을 잃어버린 채 마스크 쓰며 답답한 일상을 반복하는 우리에게.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김민철 작가가 그런 우리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
샌프란시스코, 가마쿠라, 베네치아, 아를, 리옹, 더블린, 포틀랜드, 밀라노, 우붓, 제주도, 교토. 언젠가 밟았던, 여행했던 그곳들의 기억을 불러내어 가장 좋았던 순간의 이야기를, 가장 다정한 문장으로 써내려간다. 한 통의 편지에는 한 번의 여행이 담겨 있어 읽는 각자의 마음이 제일 먼저 닿는 곳부터 읽으면 된다. 어딜 펼쳐도 이국의 풍광과 여행지에서만 겪을 수 있는 우연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김민철 작가의 편지들은 우리가 잠시 잊은 여행의 감각을 깨워주고, 이 시간을 건너면 다시 여행이 찾아올 거라며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편집 주간회의
"생각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어디 새로운 건 없을까? 좀 색다른 게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러한 고민은 비단 예술가, 디자이너, 작가 등 창작자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마케터와 기획자들은 새롭고 신선한 '한 방'을 찾아 머리를 싸맨다. 기획안 마감일 며칠 전부터 속이 쓰리고 출근이 두렵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갑자기 떠올라 우리를 구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그러나 포기하긴 이르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기획의 단서는 도처에 널려 있다. 파편처럼 흩뿌려져 있을 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재료가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을 붙들 방법은 없을까? 동료 및 후배 마케터, 기획자들을 위해 '생각을 쓰는' 자신의 노하우를 들려주는 저자에게 주목해 보자. 블로그 등 콘텐츠 활동에 잔뼈가 굵은 그는 수많은 인풋 소스들에서 비롯된 생각들을 어떻게 끌어모으고 어떻게 적시 적소에 활용하는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까지, 같은 실무자로서 고민했던 모든 흔적들을 아낌없이 담았다. 최고의 재료는 신문 같은 정제된 콘텐츠, 그 중에서도 책이 으뜸이라 말하는 그의 생각이 특히 반갑다.- 편집 주간회의
"황금사자상 수상작 '노매드랜드' 원작!"
"이게 새로운 은퇴자들의 시대예요." 책 속 인물의 말 한마디가 이 책에 대한 가장 간략한 소개 같다. 집 대신 차에서 살며 평생 일하는 삶, 미국 노년층의 뉴노멀이다. 책은 이 노마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좇는다. 평생 일했고, 성실했고, 전문 분야가 있었고, 한때 다른 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고, 존경받기도 했던 이들은 지금 길 위에 있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열심히 살았지만 삶에서 튕겨져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는 상상하지 않았던 미래라도 세상은 이들을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마존의 물류창고는 차에서 살며 일하는 노년층을 환영한다. 값싸고 성실하고 금방 교체되는 인력, 사용자 입장에서는 반길 조건이다. 노마드 노동자들은 물류창고에서, 캠핑장에서, 놀이공원에서 쉼 없이 노동하며 하루하루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
열악한 풍경이지만 이들의 삶이 온통 잿빛인 것은 아니다. 차 안에도 기쁨과 낙관, 새로운 희망의 자리는 있다. 이들은 서로를 붙잡고 꿈을 꾼다. 인생의 바닥에서 여전히 농담할 여유를 찾고 삶을 긍정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왜 늘 애쓰는 건 개인뿐일까. 파괴되고 배신당한 삶들에 대한 책임마저 개개인에 맡긴다면, 국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크고 굵은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편집 주간회의
"여락이들,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
지난 5년간 여행 유튜버로서 세계 곳곳을 여행한 경험을 뜨겁게 나눈 '여락이들'이 첫 책을 펴냈다. 러시아, 쿠바, 인도, 프랑스, 스위스, 이집트, 포르투갈, 태국, 그리고 한국. 아름다운 여행지, 재밌는 여행을 선택한 대신 겪어야 했던 전전긍긍의 시간들과 속내, 영상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숨은 에피소드까지 담아 여락이들만의 여행기를 펼쳐 보인다.
책은 아버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관한 가슴 아픈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하고 싶은 일은 후회 없이 다 해보라는 엄마의 응원이 더해져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마음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며 선택한 것이 여행이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여행이었으나 계획한 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넘어지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반복하며 길 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여행의 순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여행을 통한 깨달음, 새로운 도전. 그 값진 이야기들이 여행의 설렘으로 이끈다.- 편집 주간회의
"그림 유튜버 이연, 그림을 향한 진심"
과연 내가 그림을 그려도 될까? 그림을 처음 시작하는 이도, 그림을 오래전부터 그려온 이도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2년 만에 독보적인 미술 크리에이터로 성장한 이연, 그의 첫 책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에서 작가의 진솔한 생각을 듣는다.
그림 그리는 기술과 추천 그림 도구, 선의 이해와 색의 사용 등 실용적인 정보를 기본적으로 담고 있지만, 이 책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점은 그림을 그리는 마음, 창의적인 일을 지속하는 자세,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힘에 있다. 저자는 [준비] [관찰] [그리기] [다듬기] 그림 단계에 맞춰 자신이 오래 걸어온 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수년간 창작하는 일을 지속해왔더라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그림을 향한 진심, 그림을 대하는 마음을 이 책에 정성스레 담아냈다. 그림 대신, 무엇이든 대입해도 좋다. 대개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한, 좋아하고 설레는 일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 주간회의
"송재환, 수학약점이 초등 수포자를 만든다!"
20년 넘게 초등 교사로 재직하면서 <초등 고전읽기 혁명>, <초등 1학년, 수학을 잡아야 공부가 잡힌다> 등의 저서로 학부모와 만나온 송재환 선생님 신작. 수학은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공부하는 과목이지만, 싫어하거나 어려워하거나 아예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가장 많은 과목이다. 1학년 수학은 너무 쉬웠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수학은 모든 영역과 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어느 한 부분에서 제대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부분이 점점 약해지고 커져서 큰 약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저학년에서 틀린 한두 문제가 나중에는 엄청난 점수 차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약점은 대부분의 아이에게 공통으로 보인다. 학년별로, 작년의 아이들이 어려워했던 부분은 올해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작년의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배운 내용은 올해도 수월하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수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과서를 분석하여 수학약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학년별, 영역별로 아이들이 쉽게 빠지는 약점들을 소개하고 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구체적인 사례와 상세한 설명이 있어, 아이들만큼이나 수학이 두려운 부모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 주간회의
"편혜영이라는 숲이 당신을 초대할 때"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 속의 한 장면. 옆집과 우리집 사이엔 어림잡아 삼천 평은 되는 것 같은 무성한 옥수수밭이 있다. 이웃과의 거리는 그 옥수수밭의 면적만큼 멀다. 옥황상제를 모셔야 한다는 전도사와 이런 골짜기 외딴집은 위험성 측면에서 단독주택이 아니라 길거리로 보는 편이 낫다고 비싼 가격의 보안 용품 설치를 권유하는 보안 업체 직원들이 가끔 이 집을 찾는다. "아아악." (<어쩌면 스무 번> 20쪽) 고즈넉한 교외의 풍경을 깨트리는, 느닷없이 내질러진 비명처럼 그렇게 서스펜스는 존재한다. 조금 더 일상적인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은 편혜영이라는 숲의 풍경. <홀>로 셜리잭슨상을 수상하기도 한 편혜영의 여섯번째 소설집.
정교하고 경제적인 문장은 한 단락만으로도 우리를 그 숲으로 초대한다. "어찌보면 나는 줄곧 그런 사람한테 끌렸던 것 같아요.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 지금의 삶이 힘들어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려는 사람들." (소설가 손보미와의 인터뷰 <어쩌면, 편혜영> 中) 이라고 말하는 작가 편혜영은 부정하고 불의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수치스러워하는 사람들을, 궁지에 몰린 후 '시골' 같은 낯선 곳에서 또 다시 삶을 세우려는 사람들을 선택해 그들의 앞에 갈림길을 내민다. 각 단편이 마무리되는 순간, 그 가차없는 마지막 문장 이후 남은 뒷맛을 바로 보내기가 아쉬워 몇 번이나 쉬어가며 소설집을 아껴 읽었다. 그들의 삶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제 편혜영의 서스펜스는 죽음의 공포가 아닌 삶의 영속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지독한 그 일상을 본다.- 편집 주간회의
"<잘 자요, 엄마> 후속작, 서미애의 귀환"
2018년작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으로 미스터리 독자의 환대를 받은 서미애의 2021년 최신작. 전 세계 16개국에 수출되며 세계의 미스터리 독자가 함께 읽은 작가의 대표작인 <잘 자요, 엄마>의 '하영'이 돌아왔다.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전작의 열한 살 하영은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다. 연쇄살인범 이병도와의 사건 이후, 꾸준히 상담을 받고 있지만 하영의 새엄마인 '선경'은 여전히 하영을 경계하고 있다. 하영 역시 가끔 제 안에 있는 것을 느낀다. 하영은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 계속 자신을 괴롭힐 것 같'(193쪽)아서 뱀을 향해 칼을 뻗을 수 있는 아이. 전학을 하게 된 학교에서 하영은 '유리'의 사건과 얽히게 된다. 그렇게 하영은 학교폭력과 만난다.
"트릭보다는 범죄 심리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작가 서미애는 하영의 내면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직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미성년'인 하영에겐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인간이 될지, 집중한 독자의 손과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개연성 있게 잘 읽히는, 이 책을 선택한 독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이야기가 미덕. "수많은 범죄자의 마음을 분석했지만, 가장 들여다보고 싶은 인물이 이 소설에 있다."는 말로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추천했다. 총 3부로 구성될 '하영 연대기'의 두 번째 이야기. 성인이 된 하영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편집 주간회의
"매년 세계 최고의 신작 SF를 한 권으로 만난다"
테드 창, 켄 리우, N. K. 제미신… 당신이 손꼽아 기다린 주요 작가의 최신작뿐 아니라,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중단편을 매년 한 권의 책으로 맛볼 수 있다면 어떨까. <올해의 SF 걸작선(The Year's Best Science Fiction)>의 한국어판 출간으로 우리는 새로운 매체를 얻게 되었다. 한 작가가 발표하는 단편이 모여 단행본으로 묶일 정도의 분량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따끈따끈한 작품들을 독자와 바로 만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다.
SF는 사람들이 '현실'이라 말하며 순응하는 모든 것 너머의 세상을 제시하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SFnal>이라는 제목은 'SF'와 '-nal(-적인)'의 단어 조합으로 이뤄져, 'SF적인 것'에 대한 작가들의 질문 혹은 정의을 담아내고자 했다. 가장 빠르게 한 권의 책으로 우리의 손에 도달하는 <SFnal>과의 만남이 독자의 일상을 제약하는 크고 작은 단단한 틀을 부수고 이제껏 닿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이끌 것을 기대한다.- 편집 주간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