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윤결의 아티스트 리서치 북 『낯선 환호들: 각설이 품바와 낮은 곳의 목소리』는 각설이 품바의 기층의 삶이 담겨 있다. 옛적 거리를 집 삼아 노래하고 동냥하며 천대 받던 각설이는 반은 부랑자이고 반은 예인이었다. 우리 시대와 역사에서 각설이 품바는 민중의 희로애락을 걸걸한 입담과 구성진 노랫가락, 신명 나는 연주로 풀어내고, 때로는 청중의 사연을 담은 곡조를 그 자리에서 뽑아내기도 한다. 가장 낮은 자들의 삶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목소리에 담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낮은 곳’이란 살갗에 맞닿아 있는 매일을, 기쁨과 고통을, 위로와 유희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공간이 된다. 작가는 그 어울림 속에서 환호 소리를 듣는다.
본 책은 각설이 전영선, 연극 <품바> 故김시라의 처 박정재, 연극 <품바> 김승덕, 난장 각설이 오동팔, 난장 품바 양재기, 난장 품바 아라, 난장 품바 최민, 난장 품바 설거지와의 8편의 대담을 중심으로 근접 장르로 연구된 드랙 퍼포머 아장맨, 테크노 각설이 싯시와의 대담 2편이 수록되었다. 연구글(강병우, 박예지)과 함께 윤결의 작품에 관한 소개와 비평을 담은 작가론(강정아, 정은영, 김화용, 박예지)은 뒷면에서 열리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일러두기 | 히스테리안 편집부
출판사 서문 | 김민주
낯선 환호들 | 윤결
대화록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몸으로 보여주는 거다
각설이 | 전영선
깨달을 ‘각'에 말씀 ‘설'
연극 <품바> (故김시라) | 박정재
연극 <품바> | 김승덕
오! 끈적이고 축축한 달콤한이여
난장 각설이 | 오동팔
신명과 몸짓의 전통 | 강병우
그래야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힘을 얻지
난장 품바 | 양재기
난장 품바 | 아라
편견 없이 하나의 사람으로 보일 수 있도록
난장 품바 | 최민
난장 품바 | 설거지
자기를 되돌아보기 시작하는 시점일 수도
드랙킹 아장맨 & 연구자 박예지
테크노 각설이 | 싯시
두 소수자의 세계가 ‘캠프'를 둘러싸고 스쳐 지나갈 때 | 박예지
작가론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 | 강정아
반짝이를 입은 몸, 누더기를 입은 춤 | 정은영
바닥의 노래를 들어라 | 김화용
촌스러운 세계가 미술관으로 들어왔을 때 | 박예지
각설이는 과거에 장터나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냥을 하던 사람을 일컫는다. 자연재해의 일종인 ‘서리’에서 온 말로 가난을 맞은 자를 부르던 데에서 연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각설이(singing beggar)는 거지의 모습으로 분하여 소리와 몸짓을 통해 재주를 선보이는 연행자로서 ‘각설이(패)’를 의미한다. 음악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여타 유랑패와 유사하다. 사회적으로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의 연대와 저항에 기반한다는 점에서는 구별된다. 10쪽
각설이 품바는 각설이의 모습으로 타령을 하면서 진행되는 공연의 형식, 또한 그러한 공연을 하는 행위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이 책에서 사용된다. (단, 화자가 대담에서 이를 ‘품바’ 또는 ‘각설이’로 칭하는 경우 구술된 바 그대로 기록하였다.) ‘품바’는 본래 각설이 타령에서 후렴구로 사용되는 의성어이다. 입으로 흥을 돋구는 장단이라는 의미에서 조선 말기까지 ‘입장고’로 불린 기록이 있고, 걸인으로 행세하며 부정한 자에게 욕보이는 말을 한다는 의미로 ‘입장귀를 찧는다’라고도 이야기되었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각설이패 행위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10쪽
품바라는 이름을 둘러싼 복잡한 관계성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질문은 ‘왜 각설이인가’이다. 그들은 왜 각설이로서 무대에 서는 것일까? 단순히 거지 복장의 기구한 인생사를 가진 인물로서 각설이가 소환되는 것만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각설이가 되어 공연하는 이유는 그 존재로부터 불려 오는 기록되지 않은 서사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19쪽
각설이 품바와 민속 사이에 흩어진 고리는 몸을 매개로 재회한다. 각설이 품바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문화경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치되었다. 지난 시대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에 대한 비판의식을 통해 자기를 인식했다면, 후기 산업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보다 복합적인 문화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142쪽
각설이 품바는 도심 외곽, 지역 오일장이나 소도시 공연 유수지 등에서 출몰하며 신명 나는 몸짓을 흔들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각설이 품바는 특유의 성애적인 야담을 거침없이 선보인다. 이들의 끈적한 눈빛과 과감한 표현은 몇몇 관람객에게 흥분과 열기를 전달하고, 어느새 관람객을 무대 안으로 개입하게 만든다. 193쪽
각설이 품바는 남성 퍼포머가 여장을 하거나 여성 퍼포머가 남장을 하는 등 성별을 넘나드는 복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드랙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드랙(drag)은 보통 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이 남성 복장을 하거나(드랙킹) 반대로 지정성별이 남성인 사람이 여성 복장을 하고 공연하는 것(드랙퀸)을 뜻한다. 263쪽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각설이 품바의 공연장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현장인 장터이다. 김화용(미술작가)
윤결의 작업은 경계를 넘고 유랑함으로써만 성립하는 각설이 품바 연희처럼, 길 어딘가를 끝없이 떠돌며 언제든 기꺼이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다. 정은영(미술작가)
윤결의 작업은 ‘촌스러움’을 현대적인 양식으로 해석해 그것 을 둘러싸고 있는 장을 미술의 영역에서 들여다보기를 요청한다. 박예지(평론가, 문화연구자)
윤결 1985년생. 유년시절을 보냈던 ‘청량리’는 작가의 예술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용산역, 노량진, 영등포역, 인천으로 이어지는 1호선은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물결로 이뤄져 있고, 청량리는 노동 시장 흐름의 상원 같은 곳이었다. 작가는 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학기부터 노동 시장에 투입된 경험으로 고졸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차별을 체감하였다. 삶에 따른 고된 노동의 얼굴에 주목하며 표현의 욕망과 관계의 윤리 사이에서 윤결은 로컬과 미술을 상호번역하는 예술가의 과제를 수행한다. 서울시립대학교 동대학원에서 환경조각학과를 전공했으며 주요 전시로는 《무릎은 노랗고 빨갛게 시리다》 (아트플러그 연수, 인천, 2022), 기획전 《낯선 환호들》 (아트랩반, 서울, 2021)과 단체전 《따스한 재생》 (강원국제트리엔날레, 분홍공장, 강원, 2021)이 있다.
윤결은 오늘날의 예술과 각설이 품바를 함께 감각한다는 점에서 한층 특별하다. 작가는 섹슈얼리티적 혼종성으로 각설이 품바와 드랙을 연결한다. 양자는 성별 이분법을 넘나드는 의상과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가 고정한 정체성을 횡단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함께 한다. 그러나 윤결이 고백하듯, 외래의 드랙과 우리나라의 각설이 품바를 동치하는 식의 단순 번역은 개운치 않다. 특정한 실천을 목표로 공유한다고 해도, 그 수단은 진지한 비판을 통한 저항부터 우스개 섞인 농담과 위반의 역사가 다양하기 나타난다. 때로는 정체성 표현을 사이에 두고 접합할 수 없는 차이가 발생하여 공통의 목표와 갈등이 동시에 전개된다. 그 앞에서 윤결은 단어의 골짜기 사이로 흩어지는 것에 무게를 싣기 위해 윤결은 신중하게 어휘를 고르고, 물음의 자리를 벌려 둔다. 몇 가지 권위 있는 개념으로 양자가 이루는 절개부를 단정하게 봉합하는 대신, 이들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공존하는 낯선 지형을 드러낼 방법을 궁리한다.
윤결이 일관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정상성 담론에 밀려난 것에 품은 애정과 연대이다. 그는 오방색으로 빛나는 장면들에서 솟는 환호 소리와 땀 냄새를 흠뻑 맞으며 자신의 예술을 행한다. 이제 독자는 윤결과 각설이 품바의 목소리를 통해 정상성 투쟁 속에서 질문 던지기 어려웠던 시대의 바람과 마침내 터져 나오는 낯선 대답들을 듣는다. 편집자: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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