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대전에 있는 독립서점 <구구절절>이 기획하고 <월간 토마토>가 발간하는 <독립서점시인선> 시인선 첫 번째 책으로 정덕재 시인의 시집 『정류장에 두고 온 뉴욕치즈케이크』를 펴낸다. 이 시집은 그림이 있는 시집으로 정덕재 시인의 시와 중견화가 권현칠 화백의 그림이 함께 실린다.
정덕재 시인은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다. 일상의 삶을 잘 포착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유의 위트가 시 전편에 깔려있어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도 시인의 장점이다. 특히 이번에 발간하는 <독립서점시인선>은 지역의 독립서점과 지역 출판사가 함께 기획해 지역출판 생태계와 독립서점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번 시집 『정류장에 두고 온 뉴욕치즈케이크』는 일반 시집과는 다르게 등장인물이 표기되어 있으며, 산문과 시가 함께 실려 독자의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남녀 두 명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 여성이 겪는 심리적 갈등과 고용에 대한 불안을 함께 담고 있어, 젊은 세대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1부 첫눈에 반했다는 거짓말
첫 만남
냄새와 향기
커피는 갈색
숨 쉬지 못하는 진공
당신의 까망
모욕은 촉촉해지지 않아요
어금니
상처
연애의 전조증상
첫눈에 반했다는 거짓말
2부 최신식 연애
근대적 윙크
연애의 진보를 이끄는 손1
연애의 진보를 이끄는 손2
구멍
햄버거의 눈물
실용적인 포옹
야생 고양이
택시에서
신발 바꾸어 신기
유행과 날개
3부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시간
여름이라 배롱나무
가슴이 벅차오른 순간
누가 볼까 누가바
뉴욕치즈케이크
업어보고 싶었어
당근이 있는 짜장면
깊은 키스
더 깊은 키스
아직은
가끔은 행복한 서울우유
4부 노른자와 흰자가 섞이지 않는 것처럼
편식의 연애
화장지 두 뼘처럼
지울 수 없는 수정테이프
쫄면
퇴사
이별의 무게
노래를 들으며
멸종위기종
백화점 산책
삶은 달걀
<시인산문>
L과 K
당신의 까망
속눈썹이 길었다. 3월 중순에 옅은 장미향이 풍겨왔다. 가시에 물이 올라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퇴근길 로비에서 만난 L은 까만 블라우스와 까만 바지를 입었다. 책 한 권이 삐져나온 가방은 샤넬 짝퉁이다. K가 책 제목이 궁금해 가방 안을 슬쩍 보았으나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두께만 확인할 수 있었다.
검정색을 좋아하나 봐요
네
양말도 검정색이네요
네
단문을 좋아하나 봐요
네
집에 오는 골목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구두 밑창에서
단음이 들려왔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빨리 걸으면 대답이 빠르게 들려왔고
늦게 걸으면 반 박자 늦은 대답이 돌아왔다
L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빠르게 걷다가
힘차게 뛰었다
모욕은 촉촉해지지 않아요
다음 날 K는 새벽 출장을 가느라 L을 만나지 못했다. 이틀 뒤 2층 넓은 복도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세 여자 속에 L이 있었다. 그새 속눈썹이 자랐다. 복도에서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질적인 하이힐은 정규직이었고 둔탁한 발자국은 비정규직이었다. 미백이 필요한 이를 드러내며 웃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창밖 후박나무 잎새가 더 넓어지는 중이었다.
양치할 시간도 없이 일해 본 적 있나요
화장실 갈 틈내기도 쉽지 않아요
모욕이지요
이명에 시달리는 퇴직 앞둔 과장은
모욕을 목욕으로 알아듣고
목욕을 자주 하면 건강에 좋다는 말을 자주 하지요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지겨워요
짬뽕 국물 튄 셔츠를 바라보는 시선도 모욕이에요
모욕은 목욕처럼 촉촉해지지 않아요
결코
모욕은 목욕처럼 부드러워지지 않아요
당신의 까망
속눈썹이 길었다. 3월 중순에 옅은 장미향이 풍겨왔다. 가시에 물이 올라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퇴근길 로비에서 만난 L은 까만 블라우스와 까만 바지를 입었다. 책 한 권이 삐져나온 가방은 샤넬 짝퉁이다. K가 책 제목이 궁금해 가방 안을 슬쩍 보았으나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두께만 확인할 수 있었다.
검정색을 좋아하나 봐요
네
양말도 검정색이네요
네
단문을 좋아하나 봐요
네
집에 오는 골목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구두 밑창에서
단음이 들려왔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네
빨리 걸으면 대답이 빠르게 들려왔고
늦게 걸으면 반 박자 늦은 대답이 돌아왔다
L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빠르게 걷다가
힘차게 뛰었다
모욕은 촉촉해지지 않아요
다음 날 K는 새벽 출장을 가느라 L을 만나지 못했다. 이틀 뒤 2층 넓은 복도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세 여자 속에 L이 있었다. 그새 속눈썹이 자랐다. 복도에서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질적인 하이힐은 정규직이었고 둔탁한 발자국은 비정규직이었다. 미백이 필요한 이를 드러내며 웃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창밖 후박나무 잎새가 더 넓어지는 중이었다.
양치할 시간도 없이 일해 본 적 있나요
화장실 갈 틈내기도 쉽지 않아요
모욕이지요
이명에 시달리는 퇴직 앞둔 과장은
모욕을 목욕으로 알아듣고
목욕을 자주 하면 건강에 좋다는 말을 자주 하지요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지겨워요
짬뽕 국물 튄 셔츠를 바라보는 시선도 모욕이에요
모욕은 목욕처럼 촉촉해지지 않아요
결코
모욕은 목욕처럼 부드러워지지 않아요
상처
L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며칠 전 이를 드러내면서 웃지 말라고 한 것은 K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그럴만한 관계도 아니었다.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느낌이 자주 들어요
여럿이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커다란 성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고립무원과 사면초가라는 말도 사치죠
차라리 섬으로 귀양을 보내졌더라면 공간과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은 분명해요
불평등이 형광등 불빛 아래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잖아요
차별만 야광처럼 더욱 빛날 뿐이죠
전등이 꺼져있는 고요한 사무실에서 자주 느껴요
움직일 때 마다 상처를 건드리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요
보일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아요
연애의 전조증상
보름 만에 문자가 왔다. 네 번의 문자에 대한 답장이었다. 저녁을 먹자고 했다. 커피를 마시러 오라는 수준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뼈다귀감자탕 가게에서 만난 시간은 6시 15분이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8시 30분이었다. L는 차별하지 않는 민주주의적인 연애를 말했다.
내가 시래기라면
당신은 돼지뼈가 되어야 한다
내가 돼지 뼈가 아니고
시래기인 이유는
채식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채식은 선택이 아니라 강압이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살아난 육식주의자 과장이
퇴원 다음날부터 급진적인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수시로 찾던 삼겹살 회식이
청국장 된장찌개 생선구이로 바뀌었다
뼈에 붙은 살을 바르다 보면 묘한 매력을 느낀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매력(魅力)의 매 자가 도깨비를 뜻한다고 말을 하자
L은 도깨비의 힘이 어디까지
뻗치는지 확인하자고 했다
뼈 하나를 앞에 놓고
원투 펀치같이 툭툭 튀어나온 말은
분명히 연애의 전조증상이었다
발골하는 저녁에
독특한 해석이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거짓말
비가 내렸다. 보도블럭을 두드리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틈새로 벌어진 블록 사이로 물길이 나 있었다. 투둑투둑 여름비 같은 봄비였다. L은 사무실 1층 현관 밖 처마에서 하늘을 쳐다봤고 곁에 다가선 K가 우산을 폈다. 연두색 우산을 펼치자 나무 그늘이 생겼다.
16부작 멜로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는 이유는
한 번만 봐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물의 감정 변화를 보지 않고
서사만 생각한다는 건조함을 지적받아도
비가 우연처럼 내린 것인지
우산을 든 남자가 우연을 가장하고 다가온 것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청문회 증언하듯 하지 않아야 한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청문회 증언하듯 해야 한다
첫눈에 어디를 본 거죠
가슴이었지만 눈이라고
종아리였지만 눈이라고
귓불이었지만 눈이라고 해야 한다
우물 같은 눈이라는 말과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달콤하게 뱉어야 한다
한일자동펌프가 어릴 적에 들어와
우물이 메워진 지
오래 전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입안에 가둬야 말이 많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눈은 첫눈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같은 성격의 문장이다
당신은 까망 @권현칠
상처 @권현칠
첫눈에 반했다는 거짓말 @권현칠
모욕은 촉촉해지지 않아요 @권현칠
연애의 전조증상 @권현칠
1) 12,600원 펀딩
<정류장에 두고 온 뉴욕치즈케이크> 도서 1부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 128*188mm / 무선제본 / 120쪽 내외 / 2024년 8월 26일 출간
※ 참여자 명단 기재 없이 진행되는 펀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