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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헤겔(Georg W. F. Hegel) 1770 ~1831
프리드리히 헤겔의 삶: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1770년 8월 27일 뷔르템베르크 공국(현 독일 서남부)의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1788년 남독일의 정통 루터파인 튀빙겐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고전을 공부했다. 졸업 후 베른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가정 교사 생활을 거쳐 1801년 셸링의 추천으로 예나 대학의 사강사 자리를 얻었다. 1805년 무급 비정규 교수로 승진했으나 1806년 예나가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하여 대학 폐쇄로 실직했다. 1807년 밤베르크로 이주하여 「밤베르크 신문」 편집장을 맡았다. 1808년에서 1815년까지 뉘른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18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 정교수가 되어 자신의 철학 체계를 강의했다. 1818년 베를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1830년 총장에 지명되었다. 1831년 콜레라가 베를린에 번지자 시골로 피신하였으나 너무 일찍 돌아와 감염되어 11월 14일 영면했다. 유해는 베를린 로덴 묘지의 피히테 부부 곁에 묻혀 있다.

프리드리히 헤겔의 사상:

헤겔의 철학 사상은 독일 이상주의의 완성이자 근대 철학과 현대 철학의 분수령을 이룬다. 헤겔은 인간의 사유와 자연, 사회, 역사, 예술, 종교와 관련된 삼라만상을, 세계정신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계기로 파악함으로써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비견할 만한 장대한 철학 체계를 구축했다. 헤겔 사후 한동안은 독일 대학의 철학 교수직을 거의 헤겔의 제자들이 차지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다. 헤겔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선조이지만 유물론자인 마르크스와는 달리 관념론자라는 세간의 평가는 수정되어야 한다. 헤겔을 마르크스의 선조로만 해석해서도 안 되고 헤겔 철학을 관념론으로만 이해해서도 안 된다. 헤겔의 변증법을 정립–반정립–종합의 정식으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헤겔 자신이 그러한 도식을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세계와 사유의 발전을 추동하는 것은 모순과 모순의 해소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헤겔이 프로이센 국가 체제를 인류 연사 전체의 절정으로 찬양한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유가 시민 사회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또한 헤겔은 사실과 경험에 바탕을 둔 자연 과학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거만한 사변 철학자, 절대지의 철학자도 아니다. 그는 당대 자연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자연 과학을 통합하여 하나의 체계 속에 융합하려 했을 뿐이다.

프리드리히 헤겔, 단계별 읽기:
step1,2,3 step1 step2 ste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