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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기간 : 2013년 4월 3일 ~ 4월 30일
 

브루노 슐츠의 단편들은 아름답고 목적이 없다. 누군가는 그를 카프카와 비교한다. 카렐 차페크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슐츠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감각적인 환상을 구축했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이 책의 해설에 나오듯 슐츠와 그의 아버지에 대한 프로이트적인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또는 작품 속에서 민간 전승이나 서구 신화들의 변형형을 목격하고 그것을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불안과 엮어 문학사의 맥락 안에서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석하기에 따라 어떤 장치로 기능할 수는 있되, 슐츠의 소설이 애당초 그것을 노렸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슐츠는 환상과 부조리의 구조에 대해 고찰하고 그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삽입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는 그냥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감을 밝혀 채집한 감각의 조각들을 묘사함으로써 신비를 통역/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빛과 소리를 통해 몸을 얻는 환상들. 그는 로르카를 떠올리게 한다. 창조하기보다는 발견하는 방랑자-시인들. 만약 이 책이 슬프게 느껴진다면 그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떠난 디아스포라여서일 것이다. 이토록 태연하고 굳건한 '존재하지 않음' 속을 거니는 여정은 지구상의 그 어떤 외진 땅보다도 좀 더 쓸쓸할 테니까.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작품 애호가 / 신세계를 탐험하려는 SF 또는 고딕 소설 팬 / 구판 사려다 놓치신 분
감각 묘사의 밀도가 대단히 높으므로 고혈압 환자는 감상에 주의를 요합니다 / 만연체는 일종의 변명이지 / 그래서 걔가 어떻게 됐다는거야
 
이 책은 예전에 <영혼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었다. 많이 팔리지 않았고 빨리 절판되었으며 뒤늦게 입소문을 전해 듣고 헌책방을 수소문하는 순례자들이 발생하는, '좋은 SF가 소비되는 전형적인 방식'을 재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스패로>는 외계 존재와의 조우를 다룬 '퍼스트 컨택트'류로 구분되며, 그 과정에서 신과 종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종교 SF라고? 너무 무겁지 않을까? 물론 <스패로>는 대체로 어둡다. 필연적으로 좌절한다. 기적이 성립하려면 먼저 서사가 붕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좌절은 어째서 이렇게 아름답고 왜 자꾸 마음을 덥힐까. 아마도 <스패로>가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은 유사-수난극이어서일 것이다. 권능을 갖추지 못한 인간은 복음에 상응하는 수난을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 "참새(스패로)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너희 아버지는 다 알고 있나니" 라는 마태복음 구절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모른다면 알게 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즉 과거도 현재도 미래조차도 깨달음에 닿을 수 없다면 수난은 어떤 이유로 주어지는가? 거대한 질문이 외계의 별과 우주선 속에서 펼쳐진다. <스패로>는 SF의 독특한 정점, 즉 다시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장렬하고 서글픈 우주 복음이다.
이번 판본 번역은 어떤가요? (좋아요!) / 저는 카톨릭을 잘 몰라요 (괜찮습니다) / 거의 모든 SF 팬 (아래 주의사항 참조)
위 도서는 다음 작가들과 같은 곳에서 제조되었습니다 : 어슐러 르 귄, 케이트 빌헬름, 聖 아서 클라크 (또는 SF 자체에 알러지가 있을 때)
 

이번 작품 선정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작품. 보는 이에 따라 장점 또는 단점으로 작용할 스타일이 워낙 강렬해서다. 매우 시적이다. 사건들은 시간순을 무시한 채 배열돼 있고 그 사건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도 순차적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병사의 기억들은 그의 머릿속에 파편처럼 박혔다가 예기치 않게 튀어오른다. 시점도 보편적이지 못하다. 이 전쟁 소설에서 아드레날린을 동반하는 전투 묘사는 없다시피 하다. 전쟁 기간의 대부분은 교전이 아니라 경계와 긴장과 권태가 뒤섞인 항구적인 심리적 압력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동료들은 총알이나 폭발이나 사고로 죽어가고, 시인의 영혼을 가진 주인공(이 소설은 자전 소설이다)은 그 와중에도 도처에서 자라나는 풀과 새들을 목격하고는 그 집요한 생명들을 자신의 전쟁 기억 속에 집어 넣는다. 정서적 괴멸 상태로 내몰린 군인-청년-시인은 이 집요한 삶과 허무한 죽음 사이를 줄타기하며 독백과도 같은 증언들을 중얼거린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전쟁을 고발하기에' 적합한 방식이었나?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시인은 시인이 본 것을 써야 한다고. 그것이 더 옳은 증언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나는 <노란 새>를 다른 무엇이 아닌 전쟁 소설로써 추천하기로 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최근 영화들을 인상깊게 보았음
한국이고 미국이고 요즘 소설 쓰는 젊은 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세계문학으로는 물론이요 온갖 버전의 괴기 단편집에도 단골 출연하는 언더그라운드 인기스타 에드거 앨런 포. 지나칠 정도로 유명한 이 작품집을 고른 이유는 역시 지나치게 유명하기 때문이다. 무슨 어마무시한 퍼펙트 전집이 나오지 않는 이상 포의 작품집이 다시 조명받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포는 위대한 작가이므로 그의 새 번역본은 그에 합당한 관심을 받아야 한다. 이번 단편집은 특히 그럴 만하다. 역자가 직접 원 텍스트의 정확성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판본(포 작품들의 일부가 그의 사후에 편집자에 의해 무단으로 수정당했고 아직도 그걸 바로잡는 중이라고 한다)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다른 몇몇 번역본들과 비교해 본 결과 단순히 번역자의 차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번역 자체도 준수하다. 만연체와 영탄법을 저글링처럼 구사하는 포의 특성과 '한글 독자'들을 위한 가독성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을 이뤄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준수한 번역을 선보이는 번역본 중에서는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이쯤 되면 여러모로 균형이 잘 잡힌 레퍼런스로 삼기에 손색이 없다. 이게 사건이 아니면 뭔가. 에드거 앨런 포의 (현재까지의) 단편 레퍼런스가 등장했다는데.
보르헤스와 보들레르가 연대보증 섰음 (누군가에게는 장점) / 중편집도 나올 거래요!
보르헤스와 보들레르가 연대보증 섰음 (누군가에게는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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