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작품을 써내고 있는 등단 십 년 이하의 작가들을 격려하고 독자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한 소설의 씨앗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기 위해 제정된 젊은작가상이 2021년에 어울리는 작가를 호명한다. 올해, 젊은작가상에 이름을 올린 수상 작가는 전하영 김멜라 김지연 김혜진 박서련 서이제 한정현이다. 일곱 명 모두 젊은작가상을 통해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 이미 도래한 시대, 이제 문학이 그 곁에 선다.
전하영
소설가인 나에게 2021년이란
‘2021년’입니다.

2021년. 어쩐지 가까운 미래처럼 여겨지는 숫자입니다. 단 한 번뿐인 오늘 그리고 내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Q.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그리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알려주세요.
A. 저는 작법서나 글쓰기에 대한 책을 좋아합니다. 눈에 띄는 대로 사 모으는 편인데요.최근에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하여』를 읽었습니다. 보통 책을 구입하면 얼마간 묵혀뒀다가 펼쳐보게 되는데, 이 책은 강의 형식을 글로 옮긴 것이라 그런지 쉽고 편하게 읽혔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글을 써온 작가의 마음과 그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유가 성실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인작가인 저로서는 이 책이 실용서적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Q. 나의 소설이 가닿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며칠 전 집으로 걸어가던 중에, 특정할 순 없지만 힘들었던 어느 한때가 떠올랐어요.진정으로 혼자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외로웠었습니다.막막하던 그때의 저에게 완전히 혼자이지만은 않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미래의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고 내게로 와주세요. 제가 그 시간을 이해할 것입니다.혼잡한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면서 그 생각들은 어디론가 흩어져버렸지만 언젠가 저의 소설 속에서 문득 나타나게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멀리서 함께할 것입니다.
김멜라
소설가인 나에게 2021년이란
선물받은 책입니다.

얼마 전 시집과 소설책을 한 상자 가득 선물받았는데요. 시집을 읽으며 그 안의 표현들에 붙들려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선물받은 책에서 읽게 된 처음 만나는 시구처럼 2021년은 저에게 선물 같은 해입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언어에 기대어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2021년을 살아갑니다.

Q.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그리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알려주세요.
A. 제가 소설에서 만나고 싶은 인물의 유형 중 하나가 ‘절대 굽히지 않는 집념의 소유자’입니다. 리타 메이 브라운이 쓴 『루비프루트 정글』 의 주인공 ‘몰리’는 저의 그런 소망을 유쾌하게 채워줍니다. 소설은 몰리의 기상천외한 어린 시절의 장난으로 시작해 온갖 고생과 역경을 지나 대학을 졸업하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한 여성의 빛나는 개성과 시련을 헤쳐 나가는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1973년에 나온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책 끝에 실린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이 지금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은 자신만의 보석을 아름답게 간직한 사람의 당당한 외침 같습니다.
“자유의 길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Q. 나의 소설이 가닿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소설 읽는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소설을 쓰고 있지만 말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못 되어 앞에서 말했던 시집 속 한 구절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하나가 둘로 쪼개져, 우리가 이파리처럼 푸른 곳에서!” (파울 첼란, 「고사리의 비밀」 중에서)
김지연
소설가인 나에게 2021년이란
시작입니다.

2018년에 데뷔한 저에게는 아직 소설가라는 이름이 낯설고 아마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우선은 올해를 잘 넘겨보려고 합니다. 사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고 그다지 잘 되지 않은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또 새로운 해를 시작하게 된 것을 보면 지난해들이 최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 닥친 일들을 할 수 있는 만큼 잘 넘기고 다음해를 또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그리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알려주세요.
A. 메리 올리버의 책 『휘파람 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은 고요하고 차분하면서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데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휘파람 부는 사람」이라는 시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사랑하고 있는 것도 재차 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쓸 수 있다고요. 그의 글을 읽으면 사는 데 무신경해진 내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다시 사랑에 빠질 기운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약을 복용하듯 꺼내 읽는 책입니다.
Q. 나의 소설이 가닿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앞으로 저는 계속 소설을 쓸 텐데 아마 늘 잘 쓰지는 못할 테지요. 그래도 잘 써보려고 무척 애쓸 것입니다. 그게 저에게는 사는 즐거움인데 독자분들도 각자의 즐거움 속에서 잘 지내다가 가끔 저의 글도 만나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혜진
소설가인 나에게 2021년이란
미지수입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 역시 지난해,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계획들을 미뤄두고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제약이 많아지다보니 소설가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생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훨씬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고요. 올해는 이전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데 아직 확신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Q.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그리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알려주세요.
A. 최근에 이주혜 작가의 『자두』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이 책은 번역가로 오래 활동해온 이주혜 작가가 처음 출간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한 여성이 겪는 현실적이고 모순적인 경험들을 알아가는 놀라움도 크지만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고, 예리하면서도 우아한 문장에서 오는 감동이 정말 컸던 작품입니다.
Q. 나의 소설이 가닿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멀리, 또 아주 가까이 계시는 독자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따뜻한 봄에는 즐겁고 기쁜 순간들을 더 많이, 더 자주,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서련
소설가인 나에게 2021년이란
20, 21입니다.

2021이라는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20, 21이라는 연속된 숫자로 보여서 말장난을 조금 쳐봤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는 작년과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해서, 21년도가 20년도의 연장 또는 되풀이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20과 21이, 하물며 0.2와 0.21조차 같은 숫자가 아닌 것처럼, 우리 모두 눈곱만큼이나마 성장하고 변화했을지도 모른다는 낙관을 가져봅니다.

Q.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그리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알려주세요.
A.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추천합니다. 사실은 국내 소설가 이유리 작가의 책을 추천하고 싶었는데 (이 작가의 감각적이고 탄력 있는 서사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소설집이 아직 없어요. 대신 이유리 작가가 최근 저에게 추천해준 책을 떠올려봤습니다. 어떤 책을 만나야 할 적기에 그 책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에 대한 감동적인 추천을 듣고 저도 읽어보았는데 세상에, 정말 놀라운 소설이었어요. 그건 그렇고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은 올해 하반기에 나온다고 합니다.
Q. 나의 소설이 가닿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저는 생활은커녕 생존에도 소질이 없는 사람이어서, 제가 소설가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종종 경이를 느낍니다.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안도하기도 하고 ‘소설가로’에 방점을 찍으며 긴장하기도 하지요. 아무려나 그건 매번 독자님들이 계셔서 제가 살아 있다는 깨달음으로 연결됩니다. 저를 살려주신, 앞으로도 살게 해주실 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이상하게 거창한 말이지만 실로 그러하니 어쩔 수 없네요. 저의 감사를 받아주세요.
서이제
소설가인 나에게 2021년이란
제 이름이 새겨진 첫 소설집이 출간되는 해입니다.

제 이름이 새겨진 첫 소설집이 출간되는 해입니다. 저는 책이 가지는 물성을 참 좋아하는데, 올해는 저도 제 소설의 무게를 몸소 느낄 수 있게 되겠죠. 제가 쓴 문장들이 이 세계를 이루는 무게가 된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그리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알려주세요.
A. 신종원 작가의 소설을 흥미롭게 따라 읽고 있습니다. 풍성한 어휘와 문장의 리듬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소설을 지탱해주는 복잡하면서도 견고한 질서가 저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작가의 소설은 언어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안전한 지대처럼 느껴지고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멜로디 웹 텍스처」인데, 저는 이 소설을 통해 보는 방식으로 듣는 법을, 듣는 방식으로 보는 법을 알게 되었어요. 목소리의 현전을 믿게 되었습니다.
Q. 나의 소설이 가닿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각자의 읽기 속도와 방식을 가진 독자분들을 어렴풋이 그려봅니다. 모조리 읽거나, 읽다가 멈추거나, 멈췄다가 다시 읽거나. 제멋대로 자유롭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별로 없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아 더 좋은 날들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한정현
소설가인 나에게 2021년이란
복수입니다.

복수입니다. 폭력과 혐오에 사랑으로 복수하는 2021년. 폭력과 혐오에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

Q.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가, 그리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을 알려주세요.
A. 배수아의 『독학자』와 바를람 샬라모프의 『콜리마 이야기』입니다. 배수아의 『독학자』는 세상이 원하는 방식의 삶과 앎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삶과 앎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외향이 세상의 기준엔 엉뚱하고 누추해 보일지라도 그 자신은 누구보다 충만할 거라고 느꼈습니다.바를람 샬라모프의 『콜리마 이야기』는 수용소에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책을 추천드리는 이유는 단지 거대한 역사 속의 인간의 삶이라는 것뿐 아닌, 그러한 폭력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때로는 유머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Q. 나의 소설이 가닿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다 같이,낙관해요.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야. 우리가
겪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거야.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
김멜라
나뭇잎이 마르고
체가 직접 말한 적도 있었다. 자기는 이미 여섯 살 때부터 알았다고. 그런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언젠가 자신이 신을 찾게 될 거라는 믿음이나 언젠가 예술을 하게 될 거라는 예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하게 되는, 영혼에 새겨진 주름 같은 것이라고.
김지연
사랑하는 일
나는 거짓말 안 하고 사는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진실되게 사는 대가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부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김혜진
목화맨션
그러니까 지난 시간 동안 저 낡은 집이 자신에게 선사한 좋은 일이란 고작 이런 것이고, 이제 이것마저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이 집을 팔면서 자신이 각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 셈이었다.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운전 못하는 사람한테 김여사라고 하잖아요. 혜지도 그런 말이에요. 게임 못하는 사람한테 너 여자냐?라고 묻는 대신에 그냥 여자라고 단정하고 흔한 여자 이름으로 부르는 거죠. 여자는 게임을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상대방이 남자여도 상관없어요. 여자처럼 못한다는 말이니까 모욕감이 배가되죠.
서이제
0%를 향하여
그애가 봤을, 텅 빈 극장. 역시나 영화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이유를 알아도 계속 영화를 하게 되었다. 그 형이랑 연락 계속 하니? 너 대학 가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잖아. 이것저것 알려주고. 내가 물었더니, 그애는 고개를 저었다. 연락 안 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 형, 그래도 어디선가 잘 해내고 있겠죠?
한정현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사랑 때문에 망하는 게 뭐 어때요?"
탐정소설을 쓰는 남자들은 연애소설을 읽는 여학생들을 무시했지만 경준은 그렇게 말했다. 돈과 권력 때문에 망하는 사내보다 낫지 않나요. 라는 말과 함께. 안나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는 채 그저 앞으로 걷기만 하는 경준의 손을 꽉 쥐었다.
"그이도 너도 모두 강한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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