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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승희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2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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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태양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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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195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림 속의 물」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가 있으며,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과 산문집 『33세의 팡세』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등을 썼다. 소월시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출간도서모두보기

<33세의 팡세> - 2020년 11월  더보기

나의 문학, 나의 자살미수 언제부터인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같은 책을 써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누구든지 ‘홀로 가는 한 사람’이며 그러나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하도록 고독한 일’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 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란 숙명적으로 ‘홀로 가는 한 사람’이면서도, 또한 그 한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일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숙명의 시련과 세속적인 박해와 자기 자신의 파괴를 견뎌야 하는지요. 이 책은 여성판 『데미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미안처럼 통과의례로서의 절망과 우울을 이기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자아 형성 과정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여성적 자아라고 해야겠지요. 연속성을 가진 스토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퀼트를 얼기설기 깁듯 조각조각을 단편斷片적으로 얽어놓은 책입니다. 냉혈적 비인간의 시대에 시인으로 산다는 건 황당무계한 이방인 같은 길 ‘태초에 꿈이 있었다. 모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나는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꾸었고 시를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시인이 되었는가?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은 물신物神의 시대, 철면피하도록 냉혈적인 비인간의 시대에 한 사람의 예술가가 된다는 것,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프고 황당무계한 일일까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시인 또는 예술가는 이단자나 이방인 같은 존재였겠지만, 오늘 우리의 이곳은 온통 예술의 황혼으로 저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시인으로 살고 있으며 시인이 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이 시인이 되는 것일까요? 원죄인가, 업보인가-이런 숙명적인 말밖에는 물을 수 없다는 것일까요? 자전적 사실fact을 기록한 상상적 이야기fiction로 읽어주길 조금 더 자라서 예술가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독사와 같은 절대적인 광기의 덩어리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시인이란 황폐한 정원에 자기만의 공작새를 기르는 어느 절름발이 여성시인과 같은 황폐하고도 퇴폐적인 이미지, 광기와 오만으로 점철된 ‘악마적인 천재성’ 같은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이해란 결국 오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제 시인이란 ‘큰 바위 얼굴’처럼 현실 지배적인 인물도 아니며 ‘공작새를 기르는 절름발이 시인’처럼 현실도피적인 환각의 불구자만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이란 결국 숙명적인 한 사람이며 우리가 자궁을 선택할 수 없듯이 업보를 선택할 수도 없기에 시인이 될 업보를 타고난 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나의 문학은 나의 자살미수’라는 말을 쓴 적이 있는데, 결국 자살미수라는 것은 우리가 타고난 개인적 업보(이 시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숙명)를 끊고 싶고 그에 저항하고 싶다는 또 다른 고백이 아니었을까요. 자살미수-그것이 내 문학의 의지였고 그것은 결국 모든 업보를 넘어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는 끝없는 부활 미수의 의지였을 것입니다. 이 책은 하나의 팩션faction입니다. 자전적인 사실fact을 가공한 상상적 이야기fiction로 읽어주십시오. 어둠이라는 같은 태胎에서 태어나 빛을 찾는 혈연 같은 분들께 감사 “우리는 노래에 얽매인 죄수. 우리는 떠날 수가 없구나. 우리의 노래를……”(존 키츠)-바로 이런 예술가의 숙명적인 율법을 지칠 줄 모르는 예술의 강신적降神的인 아름다움을 통해 보여주신 이어령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의 애정과 배려가 없었다면 아마 이 책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뜨거운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를 숙여 감사합니다.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나 편지를 읽을 때, 우리는 어쩌면 어둠이라는 같은 태胎에서 태어나 빛을 찾는 같은 혈연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애정과 지속적인 격려가 없었다면 이 어둡고 부끄러운 책은 아마 일찍이 지속을 포기해버린 채 미완성의 거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엄마, 엄마가 나를 낳았던 것처럼 나도 나를 낳았어요” 이 책을 나의 슬픈 어머니께 바칩니다. ‘세상에서 가장 푸르고도 오욕스러운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신 엄마-슬픔 때문에 거룩하시며 절망 때문에 성스러우신 늙은 엄마의 무릎에 나는 여섯 살 때 국화를 치마폭 위에 놓아드렸던 것처럼 이 책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못난 딸은 조용히 말하겠어요. “보세요 엄마. 언젠가 엄마가 나를 낳았던 것처럼 나도 나를 낳았어요! 문학이라는 기적을 통해서요!” 가을이 옵니다. 천재 이상李箱은 말했습니다. “삶이여! 발달도 아니고 발전도 아니고 이것은 분노이다!”라고요. 분노일지라도 꽃은 또 향기롭고 우리는 또 살아야 합니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될 수 있도록 숙명적으로 나는 삶을, 시를 지순하게 믿어보고 싶습니다. 만일 내 삶에 자살미수가 없다면 삶이란 기계적 반복에 불과할 것이며, 만일 그 자살미수에서 반야의 꽃과 같은 시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삶이란 단지 혼돈한 테러리즘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해보고 싶군요. “보다 찬란한 절정의 목숨을 위하여 나는 목매달아 죽을 밧줄을 매달 큰 못이 필요하였네. 그리고 그 못〔釘〕의 이름이 시라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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