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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존 드라이든 (John Dryden)

출생:1631년

최근작
2021년 9월 <[큰글씨책] 드라이든 시선>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년 노샘프턴셔 주 올드윙클에서 이래즈머스 드라이든과 메리 피커링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가문은 모두 청교도 가문이었고, 왕에 반대하는 의회파였다. 학생 때인 1649년에 자신의 첫 번째 시 <헤이스팅스 경의 죽음>을 발표했다. 이 시는 형이상학파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그다음 해인 1650년에 그는 당시 새로운 과학의 중심지였던 트리니티대학에 들어갔고, 시인으로서 필요한 전반적인 지식과 고전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을 배웠다. 1658년 크롬웰이 죽자, 크롬웰의 영광스러운 기억에 바치는 <영웅시>를 썼다.
1660년 왕정복고와 함께, 의회주의자였던 드라이든은 왕당파와 영국국교도가 되었다. 드라이든은 <정의의 여신의 귀환>이라는 시를 써서 찰스 2세의 왕정복고를 축하하는데, 이 시에서 드라이든은 영국과 로마를 비교하고, 찰스를 아우구스투스에 비유했다.
드라이든의 천재성은 늦게 만개했다. 드라이든은 런던에서 쾌활하고 완고한 왕당파인 로버트 하워드 경을 만나 교류했다. 1664년 로버트와 함께 비극 <인도 여왕>을 지었다. 마침내 드라이든은 1668년 윌리엄 대버넌트의 뒤를 이어 계관시인이 되었다.
47세 때인 1678년, 그는 풍자시를 쓰게 되었다. 드라이든의 문학적 능력은 풍자시에서 가장 잘 발휘되었다. 그는 의사 영웅체 풍자시(mock-heroic satire)인 <맥플레크노>에서 삼류 극작가를 주로 공격하지만, 여기에는 정치적인 풍자가 함축되어 있다. 휘그파와 토리파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던 1681년 <압살롬과 아히도벨>을 썼다. 이 풍자시로 그는 왕과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인 휘그당을 공격했다.
오렌지 공 윌리엄이 영국 왕으로 즉위하면서 드라이든은 계관시인과 왕실 사료 편찬자의 자리를 잃게 되었다. 드라이든은 새로운 군주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하고, 명예혁명 뒤 확고한 가톨릭교도이자 제임스주의자로서 인생의 나머지 12년을 보냈다. 1689년 이후 드라이든은 글로써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극작품과 번역에 매진해야 했다. 그는 다섯 개의 극작품을 썼고, 유베날리스와 페르시우스의 작품을 번역했다. 1700년 사망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드라이든은 영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풍자시인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라나다의 정복>으로 대표되는 영웅 희극이라는 드라마 장르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다. 비평사에서도 그의 이름을 길이 남긴 비평인 <극시론> 등을 썼다. 그 결과 그는 “영국 비평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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