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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희곡

이름:몰리에르 (Molière)

본명:장 바티스트 포클랭 (Jean-Baptiste Poquelin)

성별:남성

국적:유럽 > 중유럽 > 프랑스

출생:1622년, 프랑스 파리

사망:1673년

최근작
2024년 4월 <동 쥐앙>

몰리에르(Molière)

1622년 1월 15일 파리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장 바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이다. 대표적인 몰리에르 전기 작가 그리마레에 따르면 소년기의 장 바티스트는 당시 파리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클레르몽 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으며 에피쿠로스 철학에 동조하는 가상디(Gassendi)의 영향을 받았다. 20대에 접어든 장 바티스트는 여배우 마들렌 베자르(Madeleine Bejart)와 더불어 유명 극단(Illustre Theatre)의 창단에 참여했다. 몰리에르라는 예명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1643년부터다. 하지만 유명 극단은 이내 파산했고, 파리를 떠난 몰리에르 일행은 에페르농 공작의 후원을 받고 있던 뒤프렌(Dufresne)의 극단과 합류한다. 1653년부터 1657년 사이에 몰리에르의 극단은 콩티 공(公)의 후원을 받는다. 몰리에르의 극단은 왕제 오를레앙 공의 주선으로 1658년 10월, 최초의 왕실 공연에 성공하여, 이듬해 <우스꽝스러운 재녀들>의 공연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1622년 2월, 몰리에르는 스무 살 연하의 여배우 아르망드 베자르(Armande Bejart)와 결혼하여 사회적 파장을 야기한다. 같은 해 12월에 공연된 <아내들의 학교>는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의 <르 시드> 논쟁 이후 가장 심각한 연극 논쟁에 휘말린다. <아내들의 학교 비판>과 <베르사유 즉흥극> 등으로 자신의 연극관을 변호하던 몰리에르는 문제작 <타르튀프>로 다시 한 번 격한 논쟁을 야기하며 급기야 공연 금지 처분을 받는다. 1666년 몰리에르는 악화된 건강에도 불구하고 <인간 혐오자>를 무대에 올려 <타르튀프>, <동 쥐앙>과 더불어 성격희극의 3대 걸작을 완성한다. 1668년에는 <앙피트리용>을 필두로 <조르주 당댕>, <수전노>를 연속으로 무대에 올리는 역량을 과시한다. 1673년 2월 17일, 발레희극 <상상으로 앓는 환자>의 네 번째 공연 후에 쓰러진 몰리에르는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영면한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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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타르튀프. 서민귀족> - 2000년 4월  더보기

극장보다 드나들면 훨씬 좋을 장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한다. 하느님과 우리의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비난하려 든다면, 희극도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는 게 분명하다. 나 또한 희극이 나머지 것들과 함께 규탄받는 것에는 조금도 나쁘게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듯이 신앙의 실천에도 일정한 뜸이 있는 법이고, 인간은 오락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가정한다면, 희극보다 더 순수한 오락을 찾을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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