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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저자 > 번역

이름:오강남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직업:종교학자

기타: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에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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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오강남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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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센세이셔널한 기독교책을 낸 오강남 교수 인터뷰를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기획했다. 이메일로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되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진지해서 멋졌다. 그가 낸 책들이 '쉽게 쓰여진 것'이 아님을 절감할 수 있을 정도로. 지면 관계상 다 실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아쉬웠다. 담을 수 없는 원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힐끗거리게 만드는 힘이 그의 글에 녹아 있었다. (인터뷰 | 알라딘 편집팀 박지영
 
 
나의 종교, 나의 종교학  


알라딘 : 먼저 비교종교학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교수님께는 어떤 의미가 있는 학문인지요.

오강남 : 비교종교학은 세계의 여러가지 종교 현상들을 관찰하고 연구 분석해서 세계의 종교들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이런 종교들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종교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기본 구조가 무엇인지, 여러 종교들은 어느 면에서 비슷하고 어느 면에서 서로 다른지, 종교가 인간의 윤리적인 삶, 철학적인 사유, 사회 구조, 경제 활동, 심리 상태 등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등등을 살펴보는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교종교학자들이라고 모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종교학의 기본 요건 중 하나는 어느 한 종교의 절대적 진리성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교학의 학문적 성과에 힘입어 현재 많은 신학자들이 다른 종교들을 많이 알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종교다원주의적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 종교학은 무엇보다도 종교를 폭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 기독교를 지적으로 믿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강남 : 저는 어려서 어머님과 함께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제가 다니는 교회가 주는 설명을 덮어놓고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곤란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쯤부터 그 당시 많이 읽히던 「사상계」나 「기독교사상」 같은 잡지를 보면서 기독교 신앙을 여러가지 각도로 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쯤 류동식 교수님이 번역한 독일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신약성서와 신화>인가 하는 노랑 뚜껑의 조그만 책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신학적인 문제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금년 6월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류동식 교수님을 뵙게 되어 이런 사정을 말씀드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부터 대학에 가서 물리학을 전공하려던 생각을 접고 종교학과로 진학했지요. 한국에서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캐나다에 와서 동양 종교 사상을 공부하면서 기독교를 세계종교사적 시각에서 보기 시작하고, 그렇게 할 때 기독교의 의미가 제 나름대로 뚜렷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 출간 후 20년...


알라딘 : 교수님께서는 <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을 30대의 열정적인 종교학자가 풀어낸 반성적 성찰이라고 표현하셨었는데, 50대의 종교학자가 되신 지금에 와서 그 책을 보셔도 그 성찰이 여전히 자신 안에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오강남 : 종교에 대한 기본 입장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분명 그 때가 더 '열정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때는 글 스타일이 지금보다 더 저돌적이고 도발적이었던 데 비해 지금은 좀 부드러워지고 순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연륜에 따른 변화라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 쓰는 글을 보고도 아직 '도발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알라딘 : <예수는 없다>는 사실 제목 때문에도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가제는 <그런 예수는 없다> 였다던데...

오강남: 여러 가지 제목을 놓고 생각하다가 출판사에서 <예수는 없다>라는 제목을 제안했습니다. 제가 그 앞에 '그런'을 넣자고 하자, 편집을 맡은 분이 '그런'을 넣으면 '김이 빠져버린다'고 해서 제목에 '그런'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대신 책 뚜껑을 열면 영어로 라는 영어 제목이 들어가고, 다음 쪽에도 "그런 예수는 없다"라는 글로 "예수는 없다"라는 것이 사실은 "그런 예수는 없다"라는 뜻으로 쓰여진 것임을 밝히는 제목 해설까지 붙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목 때문에도 주목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제목을 허용한 것이 '상업주의'적 관심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구태여 돈 때문이기보다는 더욱 많은 독자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제 자신의 개인적 유익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알라딘 : <예수는 없다>에 대한 독자 피드백이 엄청났다고 들었습니다.

오강남 : 저에게 직접 이메일이나 편지를 보내신 분들이 한 5백명 정도 되고 그 외에 인터넷 서점 독자 서평란이나 신문 잡지의 서평 등이 있었지요. 알라딘에도 40개 이상이 올라와 있지요. 제게 개인적으로 보내 온 독자들의 이메일 대부분은 고맙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시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같은 데서 자기들의 속내를 그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어 혼자 고민했는데, 자기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정직하고 당당한 종교인이 될 수 있는 길이 트임을 느낀다는 거지요. 어느 독자는 이런 해방감 때문에 전철에 서서 책을 읽으며 자기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어느 독자는 그 책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물론 목사님들 중 더러는 저보고 지옥에 갈 것이라느니 하는 저주섞인 말을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보고 이야기하자고 하면 그런 책을 읽을 필요가 뭐냐고 합니다. 물론 목사님들 중에도 교인들에게 제 책을 '필독서'로 권하거나 직접 주문해서 교직들에게 돌리거나 교인들에게 사도록 했다는 분, 교회에서 몇 주간에 걸쳐 토론회를 가졌다는 분도 계십니다.

알라딘 : 혹시, 라는 원제를 가진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요?

오강남 : 저는 그 원본을 보았습니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재미있습니다. 외부 압력에 의해 결국 절판조치가 내려지고 말았다고 하는 사실에 서글픔을 느낍니다. 제가 그 책에 나오는 내용에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와 상관없이 무슨 책이든 강압에 의해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요즘 같은 개명 세상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비판


알라딘 : 교수님의 비판자 중에는 서구의 유행이론을 한국에 충격적인 양 소개한다는 식의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강남 : 제 주장이 지나치게 서구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사실 저는 '유럽과 미국 중심주의'(Euro-American Centrism)를 혐오하는 입장입니다. 서양의 문화가 우월하다거나 서양 종교가 절대적이라는 등 서양을 중심으로 세계와 역사를 보는 태도는 배격합니다. 그러나 지동설 이론이나 상대성 이론이 서양에서 생겼다고 해서 그것을 배격해야 한다는 태도는 있을 수 없겠지요. 종교학이나 인류학, 심리학 등이 서양에서 생겼다고 그 이론들을 무조건 배격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알라딘 : 교수님이 캐나다에 거주하는 것이 교수님의 주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오강남 : 제가 캐나다에 거주한다는 것, 그리고 신학교가 아니라 일반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이 제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연구하게 하는데, 그리고 그 결과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발표하게 하는 데 크게 관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껏 교회의 권위라든가 어느 특정 종교나 교파의 교리 같은 학문 외적 요인에 의해 제 사고 방식이나 연구 발표에 영향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와 친한 신학자도 <예수는 없다>를 읽고 자기도 학생들에게 그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상 그걸 글로 쓰면 한국 교인들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 쓸 입장이 못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런 제약에서는 완전히 자유스럽고 이것이 물론 제 사유방식에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저는 이런 독특한 위치를 하나의 특권이요 특혜라 생각합니다.

캐나다 기독교도 여러 가지이지만 특히 '캐나다 연합교회' 같은 것은 완전히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노드럽 프라이어, 해롤드 카워드 같은 학자들도 캐나다 연합교회 교역자로 있던 분들로서 이런 분들이 말하는 기독교는 한국이나 캐나다 혹은 미국에 있는 한국 교포 사회에서 대부분이 받들고 있는 기독교와 엄청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이런 차이점을 신기해하고 이런 신기해함이 제가 일반인들을 위해 쓰는 글에 배어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알라딘 : 종교를 무턱대고 믿기 전에 제대로 믿을 생각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을 무척 비난하기도 하는데요.

오강남 : 말씀하신 것처럼 비판자들 중에는 신앙이란 '덮어놓고' 믿는 것이지 그렇게 따질 것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요. 그러나 '덮어놓고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라도 알아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는데, 신앙이라는 것은 더욱 철저히 검토되고 검증되어야 할 무엇이라 생각합니다. 잘못된 신앙은 우리의 짧은 삶을 낭비하게 하고 말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신앙이란 이성을 넘어서는 것(supra ratio)이지 이성을 거스르거나 이성에 못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거나 덮어놓고 믿으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이성이나 독립적 사고를 포기하거나 몰수당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일수록 더욱 깊이 생각을 하며 믿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종교란 자기의 삶에 한계가 있다는 것, 뭔가 모자란다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각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삶과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은 건전한 종교 생활을 위해 결코 불필요하거나 방해요소가 아니라 실로 불가결의 요소라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겠지요. 



다른 종교와 대화하는 법


알라딘 : 이윤기 씨의 책에서 오강남 씨의 책을 언급한 걸 보았습니다. 이윤기 씨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신 건지(하하핫).

오강남 : 한 20년 전 제 책이 <길벗들의 대화>(<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의 초판 제목)라는 제목으로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을 읽고 제게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 때 이후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갈 때마다 연락을 하지요. <길벗들의 대화>가 수정 증보판이 나오도록 주선해 주셨습니다.

알라딘 : 알라딘에서 오강남씨는 <도덕경>, <장자>의 주해자로 먼저 명성을 날리셨답니다(웃음). 처음 <도덕경>과 <장자>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신 계기랄까 그런 것은 무엇이었나요?

오강남 : 캐나다에 와서 동양 종교사상에 전념하면서 <도덕경>의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사상에 매료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도덕경> 등도 가르쳤습니다. 캐나다 위니펙에 살 때 캐나다의 긴 겨울 밤 그 곳 교민들과 함께 <도덕경> 을 읽기 시작하였지요.

가르치면서, 교민들과 같이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을 적어 놓았다가 토론토에서 나오는 「한국일보」에 한 2년간 연재하고, 그것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도덕경> 풀이가 호응을 받았기에 이어서 <장자> 풀이도 계속해서 썼고요. 물론 종교학자로서 다른 종교에 대한 학문적 관심의 차원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도덕경>은 제 개인적인 삶에 여러 가지로 깊은 영향을 준 책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알라딘 : 현각 스님도 만나신 적이 있고, 불교와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교의 공(空)을 기독교의 비움(kenosis)과 상통하는 것으로 비교 연구해보는 식의 교리의 비교가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나요?

오강남 : 현각스님이 쓴 <만행>이라는 책에 제가 쓴 <도덕경> 풀이에서 한 페이지가 인용되어 있다고 해서 친구가 그 책을 제게 보내주어 그 책을 읽고 깊이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년 한국에 나간 김에 그에게 연락을 했고, 마침 안동 퇴계 탄신 500주년 학술회의에 참석했던 김에 바로 옆에 있는 영주 현정사에 들려 그를 만나 즐겁고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하루 저녁을 같이 보낸 적이 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대화를 하고 서로의 가르침을 비교 연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서로 자기의 가르침을 더욱 뚜렷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가 말한 것처럼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각 종교는 자기종교를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남의 종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종교간의 대화는 종교인들이 그들 자신의 종교를 스스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서로들 앞에 거울을 들어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sunyata)과 비움(kenosis)의 비교도 좋지만 특히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침'과 예수님이 첫 가르침에서 선포하신 '메타노이아'(의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서로 대화하면 크게 유익이 올 수 있을 것이라 보는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기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외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 원문 "메타노이아"는 "의식의 변혁"이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의식을 가지라는 것이지요. 한편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나 성불하라는 것입니다. 성불이란 "깨달음"을 이루라는 것이지요. 깨달음이란 물론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이 초일상적인 의식으로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요점은 우리의 내면 의식을 바꾸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같이 대화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이렇게 새로운 의식으로 바꾸는데 효과적인 길인가를 서로 의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의미있는 대화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알라딘 : '종교에 대한 토론이란 정말 가능한 것일까?'란 불안감이 들기도 합니다.

오강남 : 서양에서 보통 하는 말로 식탁에서는 종교, 정치, 섹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주제로 이야기하면 모두 열이 올라 먹는 것이 소화가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종교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화 상대자들이 열린 자세,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일 또한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기 혼자 다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길에서는 더더욱 독불장군이 있을 수 없습니다.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들처럼 각자 자기가 체험한 코끼리의 일부를 서로에게 말해주므로 코끼리의 실상에 더욱 가까운 코끼리를 알 수 있게 되지요. 진리의 길을 가는 길벗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서로 물어 물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이보다 더 보람되고 훌륭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알라딘 : 최근 한국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적 종교책이 꽤 팔리고 있습니다. 큰스님들의 책이라거나, 인디언들의 범신론적 세계관을 진지하게 소개한 책 등... 이 현상은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일까요?

오강남 : 서양에서는 "나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은 아니다"(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이런 제목의 책도 나왔습니다. 로버트 풀러라는 미국종교사학자가 쓴 책이지요. 서양사람들 사이에는 교회 등 제도적인 종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제도 종교 밖에서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줄 가르침이나 수행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풀러에 의하면 미국 인구의 약 20% 정도가 교회와 관계없이 이렇게 삶과 우주의 뜻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해서 미국인들의 영적 관심이 줄었다고 속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도 제도적인 종교에서 실망한 사람들의 수가 점증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의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의 경우만 보더라도 70년대 80년대 폭발적으로 늘어난 교인 숫자가 90년대에 들어와서 증가율이 둔화되고 최근에는 감소 추세라고 합니다. 현재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 둔 사람들의 숫자가 지금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도 종교에 실망 내지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연히 더욱 깊은 영적 가치나 종교적 가르침의 진수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책들이 많이 읽히게 된 이유의 일부도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이런 현상과 관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부탁할게요.

오강남 : 마커스 보그의 <새로 만난 하느님>, 폴 F. 니터의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을 추천하고요, 곧 번역되어 나올 예정인 (한국말로 근간 예정)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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