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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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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어린 왕자 (빅북 에디션)>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인문학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문학으로 밥벌이를 해 살아가려고 결심한 게 20대 중반이었으니까 거의 30년이 다 되어간다. 세월이 쌓이다 보니 그간 나름대로 인문학의 여러 주제에 대해 생각해온 것도 있고 적잖이 글도 쓰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어찌된 일인지 갈데없는 고슴도치 엄마가 보기에 큰딸은 꽤 생각도 깊고, 글재주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너무나 무모하게도 딸과 함께 세상의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걸 그냥 사라지게 놓아둘 게 아니라 일부라도 모아서 책을 꾸린다면 의미있는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딸이 나중에 책을 다시 펼쳐볼 때 엄마와의 옛 기억을 아련하고 정답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사로운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딸과 세상의 여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게 낯설지 않았던 경험도 이런 생각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의미만 가지고 덤비다니 경솔하고 섣부른 판단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인문학>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허긴, 쉬운 글쓰기가 어디 있겠는가? 일단 엄마와 딸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적합한 주제를 선택하는 것부터 적지 않은 고민이 필요했다. 고백과 자기반성을 하자면 대학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나는 ‘그들만의 세상’에서만 통하는 뭔가 심오해 보이는 지식에 대한 편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작업이 진행되어 가는 동안 말로는 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이 절감되곤 했다. 정작 고등학생인 딸의 고민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적지 않은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딸과 많은 이야기를 통해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딸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내가 생각했던 틀에서 훌쩍 벗어나 있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란 것도 여러 번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관한 장이 그랬다. 요 근래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혐오 정서’의 만연 속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10대 청소년들에게도 여성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 치열하게 삶에 직면하다’, ‘이미지의 시대: 보이는 것의 중요성과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를 쓰면서 이런 놀람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특히 아이의 삶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아이의 일상이 훨씬 더 학업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이라면 나도 겪은 바 있으니까”하는 자만 속에서 경솔하게도 나는 딸이 지나고 있는 이 시기를 어쩌면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과 동급인 ‘쌍팔년도’적 일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말이다. 이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고맙고 소중한 깨우침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 노래에 열광하는 것일까?’는 나름 아이의 관심과 눈높이에 맞춰보려는 주제 선택이었다. 그러면서 생각지 못한 소득이 있었다. 문학 공부를 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현실적인 이유로 시를 거의 방치하고 있는 개인적인 상황에서 아주 오랜만에 시와 노래를 이야기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기억 저편에 있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설렜다.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대화’와 ‘톨레랑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꾸며’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바람을 담은 주제이다. 사회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은 딸의 선택이기도 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할 말이 가장 많았던 문학과 문학가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전공을 한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이 딸에게 비교적 낯설기도 했고, 한 장에 담아내기에는 이것저것 쓸데없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나 보다. 취사선택에 실패했다. 책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역시 딸과의 소통이었다. 한권의 책을 함께 엮어간 일년 반의 시간은 딸의 생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경청하려고 나름 노력한 과정이었다. 그동안 고등학생인 딸과 엄마가 흔히 겪는 마찰이나 감정 소모를 거의 겪지 않고 지난 것 같아 고맙다. 끊이지 않는 시험과 수행의 부담 속에서도 엄마와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딸에게 수고했다고 전하고 싶다. 인문학이란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정답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하다 보면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하나일 수도 셋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이다. 딸이 용감하게 세상에 직면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엄마와 나누었던 이 보잘 것 없는 대화가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아이디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책이 나오기까지 꾸준한 조언과 격려를 잊지 않은, 소중한 친구이자 학문적 동료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애경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7년 11월 김미성

프랑스 이민자 문학

필자는 원래 19세기 문학 전공자이다. 대학교를 다닌 것이 1980년대 중반이고,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1999년이니 벌써 지난 세기의 일이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무렵의 내게 프랑스의 19세기는 이제 막 지나갔으나 여전히 매력적인, 우리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역동적인 시기였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파리는 명실상부한 “19세기의 수도”였고, 19세기 프랑스 문학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믿었던 젊은 시절, 평생 노력하면 그곳에서 진리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접한 학생들에게 이미 프랑스의 19세기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이제 막 스쳐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시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멋지고 휘황찬란하지만 조금씩 굳어가고 있는 과거의 문학이 아닌, 현재의 꿈틀거리는 문학에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09년 ‘유럽사회문화연구소’에서 주최한 “유럽문학과 예술 속의 이주민”이라는 제목의 학술 심포지엄에 우연히 참가한 것이 ‘프랑스 이민자 문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국의 땅에 뿌리내려 살기 위해 치열히 노력해야 하는 이방인들의 삶은 이렇게 문득 내게 다가왔다. 2009년 이후로는 프랑스 내의 다양한 문화적 양상과 이주민 정책으로 연구 분야가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 내의 이민자 통합 문제와 마그레브계 이민자들의 자녀 세대의 문학인 뵈르 문학에 주목하게 되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선정된 것이 연구의 현실적 동인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3년에 걸친 “2005년 프랑스 ‘소요사태’ 이후 문화정책 재조명 : 다문화주의 도입의 범위와 한계”와 “뵈르문학을 통해서 본 마그레브계 프랑스인들의 자기 정체성 형성 및 문화적 통합과정 연구”의 연구 과정은 이 책을 저술하는 사전 작업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2013년부터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에서 HK연구교수로 일하며 “문자의 사회문화적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와 정체성이라는 연구주제를 중심으로 프랑스 이민자 문학을 파고들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이 책은 2016년 한국연구재단 저술출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벌써 10년 이상 심혈을 기울여 온 프랑스 이민자 문학 관련 연구를 총결산하는 나름의 결실이다. 이 책은 프랑스 이민자의 탄생을 알린 1980년대부터 시작해 2020년 현재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구성되었다. 모두 5부인데, 제1부는 들어가는 말이며, 제2부는 198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제3부는 199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제4부는 200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제5부는 나가는 말이다. 부록으로 참고문헌, 주요 작가와 작품의 목록, 색인과 약간의 도판을 실었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1부에서 5부까지의 내용을 요약하기로 한다. 제1부 들어가는 말 1부는 프랑스의 이방인들, 프랑스 이민자 문학의 탄생의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프랑스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사실을 역사적 고찰을 통해 확인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현재 프랑스를 이룬 ‘모든’ 이방인의 문학은 아니며 특히 뵈르 문학이라는 용어로도 불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에 자리 잡은 마그레브 출신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의 문학으로 범위를 축소시켜 프랑스의 이민자 문학을 다룰 것이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연구의 내용과 범위를 정한다. 2장에서는 2차대전 후 당시의 프랑스 국내와 북아프리카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동시에 맞물려 마그레브계 이민자들이 산업노동자로 대량 유입될 수밖에 없었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설명하고, 1980년대는 이렇게 프랑스에 정착하게 된 마그레브 출신 이민자들의 자녀 세대가 성년에 도달하기 시작하는 시기임을 확인할 것이다. 1980년대 초는 마그레브 출신 이민자들은 이제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토박이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땅에서 영속적으로 이들의 존재를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결정적 시기였다. 알제리 전쟁이 끝난 지 이십 년 후 이민 1.5세대와 이민 2세들은 프랑스인이 되었으며, ‘완전한’ 프랑스인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프랑스 이민자 문학은 이렇게 탄생한다. 제2부 198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1980년대에는 뵈르 문학의 탄생을 알린 시기이며, 글쓰기를 통한 정체성 탐구라는 뵈르 문학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메디 샤레프, 아주즈 베가그, 파리다 벨굴, 사키나 부크헤데나, 레일라 세바르 등이 1980년대 등단하고, 주목할 만한 작품을 발표한 프랑스 이민자 문학의 대표적 작가들이다. 이 책의 2부에서는 이들 작가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표현되는 부모들의 출신국 문화와 그들이 정착해 살아가는 프랑스 문화라는 두 문화 사이에서 번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해가는 과정을 고찰한다. 실제로 자서전적 글쓰기와 이를 통한 정체성 탐색이라는 과정은 뵈르 문학의 한계를 드러내는 한편 가장 큰 특징으로서 뵈르 문학이 필연적으로 지나야만 하는 단계이기도 했다. 1980년대의 뵈르 작품에는 뵈르들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으며, 어떤 갈등을 겪었고,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가 하는 점들이 직접 투영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초기 뵈르 작품의 분석을 통해 뵈르들이 성장함에 따라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어떤 양상을 띠는지, 존재론적 갈등과 성찰을 겪으면서 그들이 어떤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려 했다. 제3부 199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1990년대 프랑스 이민자 문학은 변화와 모색의 시기이다. 1995년 작 마티유 카소비츠의 영화 ≪증오≫가 마치 현실에서 실현된 듯 보였던 2005년의 이른바 ‘프랑스 소요사태’가 증언하듯이 1990년대 이후에도 이민자들과 그들 자녀 세대의 프랑스로의 동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설사 어느 정도 동화되었다고 해도 사회적 분리와 배제로 인한 문화 간 충돌의 가능성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했다. 사회적 배제와 불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1990년대 대부분 뵈르 작가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뵈르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 소외와 배제라는 자신들의 현실을 상징하는 대도시 주변 변두리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언어, 음악, 문화를 구축하며 파리라는 장소로 상징되는 주류 프랑스 사회에 저항했고,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처절한 모색을 지속했다. 이민자의 자녀, 뵈르라는 태생적 신분을 뛰어넘어 세계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선택 역시 뵈르들에게 주어진 한 가능성이었다. 이 책의 3부에서는 페루자 케사스, 소라야 니니, 시모, 타사디 이마슈, 폴 스마일 작품의 분석을 통해 프랑스에서 살아가야 하는 뵈르들이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자아에 대해 인식해가는 과정 및 정체성 형성 과정에 대해 고찰한다. 제4부 2000년대의 프랑스 이민자 문학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민자 3세 혹은 이민자 4세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 혹은 조부모 세대와 비교해 본다면 프랑스와 마그레브, 혹은 프랑스와 아랍이라는 두 문화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혼란과 갈등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부모 혹은 조부모가 태어난 곳의 문화에 대한 동질감이 옅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민자의 자녀들은 프랑스 주류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채 대도시 주변 변두리를 방황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만의 게토 안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본격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흐메드 칼루아즈, 람단 이사드, 니나 부라위, 파이자 겐, 라쉬드 자이다니, 라크다 벨라이드의 작품들에는 분열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변두리를 방황하는 청소년이라는 범주를 벗어나는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세계인이자 성공한 지식인으로 자신을 인식하거나, 실존적 문제에 대해 성찰하거나,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분노하거나, 자랑스럽지 않은 부모님 세대의 과거를 직시하는 주인공들이다. 이 작가들의 작품 분석을 통해 2000년대 젊은이들은 분노와 증오로 무장한 채 사회에 적개심을 표출하는 대신 자신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지표”를 설정하고, 자신들이 미래의 뵈르들에게 “본보기”가 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제5부 나가는 말 1980년대 마그레브계 이민자들의 자녀 세대는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문맹이었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말과 글의 세대로 대도시 주변 임대 주택 단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존재, 현실, 고민, 절망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2000년대가 훌쩍 넘어선 지금에도 뵈르들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듯 보이고, 심지어 최근 프랑스 사회의 우경화 경향으로 인해 사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201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잔인하고 무차별적인 테러에 뵈르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이민자와 이민자의 자녀 세대를 바라보는 프랑스 사회의 시선은 급격히 냉랭해졌다. 톨레랑스의 가치를 내세우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혁명의 이념을 신뢰했던 프랑스에서 테러 이후 극우 정당이 종전의 거부감을 극복하고 ‘보통의’ 프랑스인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이민자의 아이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나름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이런저런 부족한 점이 벌써 적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능력치가 그 정도인 것을 어쩔 것인가. 프랑스 이민자 문학에 관한 연구가 한 권으로 묶여서 나온 최초의 작업이라는 사실로 위안 삼아본다. 실제로 이 책에서 분석된 작품 중에서 우리말로 번역되어 대한민국의 독자가 접할 수 있는 것이 아주즈 베가그의 <샤바의 소년>, 니나 부라위의 <나쁜 생각들> 그리고 파이자 겐의 <내일은 키프키프> 단 세 권에 불과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책의 내용에 관해서는 독자들의 질정을 기다릴 뿐이다. 2020년 여름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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