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무슨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은 적은 없었다.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시인이라는 호칭이 자랑스럽기보다는 민망한 적이 더 많았다. 그저 살면서 나는 시를 만났고, 시는 나를 만났다. 우리가 언제까지 밀월을 이어갈지 아니면 체머리를 흔들며 헤어질지, 나도 시도 결말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나는 시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숙주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불행하고 가끔 행복하다. (……) 상을 받는다는 게 또 다른 업보가 될 걸 안다. 도망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