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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어린이/유아
국내저자 > 사진/그림

이름:이태수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1년, 대한민국 서울

기타:홍익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최근작
2024년 3월 <도토리 계절 그림책 세트 - 전4권>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

2001년 봄부터 초겨울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속 생명들을 본 대로 그리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보다 더 많은 작은 생명들이 우리를 감싸 안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이 새록새록 보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을 갈아엎고, 작은 생명을 등 뒤로 한 채 도시를 만들어 갑니다. 그러고는 도시를 자연과 가깝게 만든다며 예쁜 꽃과 나무를 골라서 정원을 꾸밀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고 보잘 것 없는 풀벌레들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늘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작은 생명들이 살 수 없는 땅은 우리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

늘 가슴에 품어 둔 황조롱이 이야기를 일년 남짓한 작업과정을 거쳐 풀어냈습니다. 황조롱이 깃털을 제대로 그려 보고파 무뎌진 펜촉을 서른 번 가까이 갈아 끼우며 작업했지만 여전히 미숙함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서툴고 모자라지만, 내 속에 있는 황조롱이 몸짓들, 가슴 아프고 뭉클한 일들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튼튼하게 자라나 어미가 돼서 새끼를 키우는 황조롱이를 그려 봅니다.

숲 속 그늘 자리

이 책에 실린 생명들은 아주 귀한 것 보다는 살아가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몇몇 생명은 조금만 힘을 들이면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자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길을 걷거나, 산에 오르내리고, 바닷가를 걸으면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해와나무 아기 그림책 1

우리나라 곳곳이 점점 도시화되면서 자연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아파트 같이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자연과 멀어집니다. 시골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지역에 맞는 모양과 재료로 집을 지었는데, 이제는 도시와 똑같은 집을 짓고 똑같은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삽니다. 그래서 일까요. 점점 생명체를 가려내는 눈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들판에 나가면 그 풀이 그 풀 같다고 합니다. 아주 다른 모양을 한 풀을 보면서도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개와 늑대를 구별 못 하는 아이가 네발 달린 짐승은 모두 ‘멍멍이’라고 하듯 이요. 다른 것을 다르게 보지 못하는 것도 똑같은 모양으로 도시화 되면서 퇴화되고 있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둘레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는 이름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양새에 따라 이름이 다릅니다. 백로를 살펴볼까요. 백로는 몸 깃이 하얗고 긴 부리, 긴 목, 긴 다리를 가진 새입니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부리나 눈언저리, 다리 빛깔이 많이 바뀝니다. 여름이 되면 몸이 작은 쇠백로는, 뒷머리에 두 가닥 장식깃이 나고 발가락이 노란빛을 띠지요. 노랑부리백로는, 부리와 발가락이 노란빛을 띠면서 뒷머리에 장식깃이 많이 납니다. 몸 크기가 중간인 중백로는, 목과 등에 장식깃이 많이 나고 눈언저리와 부리 한 켠은 노란빛을 띱니다. 몸이 큰 중대백로는, 등에 장식깃이 많이 나고 눈언저리가 짙은 옥빛으로 바뀌지요. 몸집이 더 큰 대백로는, 다리 위쪽이 노란빛이나 주황빛을 띱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백로들이 무리지어 있다면 몸집 크기로도 이름을 알 수 있겠지만, 따로따로 있으면 비슷비슷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워요. 그냥 하얀 물새네, 하는 것보다는 ‘백로’라고 아는 것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내 이름이 ‘개똥이’인데 ‘가뚱이’라고 부른다면 어떻겠어요? 사람이 그렇듯이 자연도 이름을 알면 훨씬 더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앞에서 이야기 한 모양새를 자세하게 관찰하면 이름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생태세밀화는 관찰을 바탕으로 합니다. 생태세밀화를 자주 보면 관찰력도 함께 길러집니다. 관찰력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글쓰기를 하거나 일상생활을 꿰뚫어 보는 힘을 갖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살아 있는 것은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가려 낼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것은 중요한 교육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생태세밀화는 생명체를 구별하는 눈을 길러 주고 자연과 친숙해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생태세밀화가 좋은 그림일까요. 겉모습만 잘 그렸다고 좋은 그림은 아닙니다. 자연이 품은 생명체에 애정을 가지고 받아들인 느낌이 살아나야 합니다. 느낌이 살아 움직여야 비로소 보는 이에게 조그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어린 아이는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고 무엇이든 만지려고 합니다. 느낌으로 사물을 알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벼를 그리는데 낫으로 벼 포기를 베면서 벼 이파리에 손을 베어 보지 않은 사람이 벼 잎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를 알까요? 돌멩이는 무겁고 단단하지요. 작은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고 돌멩이에 맞아 보지 않고서는 돌멩이가 단단하다는 느낌을 알까요? 느낌은 눈으로 보는 관찰만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경험한 것이 느낌으로 나타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관찰과 함께 보이지 않는 뒤를 알아야 느낌은 살아납니다. 자연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러줍니다. 사람이 예술품이라고 일부러 만들어 놓지 않아도 자연은 참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겉만 치장된 그림이 아니라 자연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알맹이 느낌을 담은 생태세밀화가 자연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해와나무 아기 그림책 2

우리나라 곳곳이 점점 도시화되면서 자연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아파트 같이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자연과 멀어집니다. 시골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지역에 맞는 모양과 재료로 집을 지었는데, 이제는 도시와 똑같은 집을 짓고 똑같은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삽니다. 그래서 일까요. 점점 생명체를 가려내는 눈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들판에 나가면 그 풀이 그 풀 같다고 합니다. 아주 다른 모양을 한 풀을 보면서도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개와 늑대를 구별 못 하는 아이가 네발 달린 짐승은 모두 ‘멍멍이’라고 하듯 이요. 다른 것을 다르게 보지 못하는 것도 똑같은 모양으로 도시화 되면서 퇴화되고 있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둘레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는 이름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양새에 따라 이름이 다릅니다. 백로를 살펴볼까요. 백로는 몸 깃이 하얗고 긴 부리, 긴 목, 긴 다리를 가진 새입니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부리나 눈언저리, 다리 빛깔이 많이 바뀝니다. 여름이 되면 몸이 작은 쇠백로는, 뒷머리에 두 가닥 장식깃이 나고 발가락이 노란빛을 띠지요. 노랑부리백로는, 부리와 발가락이 노란빛을 띠면서 뒷머리에 장식깃이 많이 납니다. 몸 크기가 중간인 중백로는, 목과 등에 장식깃이 많이 나고 눈언저리와 부리 한 켠은 노란빛을 띱니다. 몸이 큰 중대백로는, 등에 장식깃이 많이 나고 눈언저리가 짙은 옥빛으로 바뀌지요. 몸집이 더 큰 대백로는, 다리 위쪽이 노란빛이나 주황빛을 띱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백로들이 무리지어 있다면 몸집 크기로도 이름을 알 수 있겠지만, 따로따로 있으면 비슷비슷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워요. 그냥 하얀 물새네, 하는 것보다는 ‘백로’라고 아는 것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내 이름이 ‘개똥이’인데 ‘가뚱이’라고 부른다면 어떻겠어요? 사람이 그렇듯이 자연도 이름을 알면 훨씬 더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앞에서 이야기 한 모양새를 자세하게 관찰하면 이름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생태세밀화는 관찰을 바탕으로 합니다. 생태세밀화를 자주 보면 관찰력도 함께 길러집니다. 관찰력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글쓰기를 하거나 일상생활을 꿰뚫어 보는 힘을 갖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살아 있는 것은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가려 낼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것은 중요한 교육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생태세밀화는 생명체를 구별하는 눈을 길러 주고 자연과 친숙해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생태세밀화가 좋은 그림일까요. 겉모습만 잘 그렸다고 좋은 그림은 아닙니다. 자연이 품은 생명체에 애정을 가지고 받아들인 느낌이 살아나야 합니다. 느낌이 살아 움직여야 비로소 보는 이에게 조그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어린 아이는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고 무엇이든 만지려고 합니다. 느낌으로 사물을 알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벼를 그리는데 낫으로 벼 포기를 베면서 벼 이파리에 손을 베어 보지 않은 사람이 벼 잎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를 알까요? 돌멩이는 무겁고 단단하지요. 작은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고 돌멩이에 맞아 보지 않고서는 돌멩이가 단단하다는 느낌을 알까요? 느낌은 눈으로 보는 관찰만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경험한 것이 느낌으로 나타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관찰과 함께 보이지 않는 뒤를 알아야 느낌은 살아납니다. 자연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러줍니다. 사람이 예술품이라고 일부러 만들어 놓지 않아도 자연은 참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겉만 치장된 그림이 아니라 자연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알맹이 느낌을 담은 생태세밀화가 자연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해와나무 아기 그림책 3

우리나라 곳곳이 점점 도시화되면서 자연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아파트 같이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자연과 멀어집니다. 시골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지역에 맞는 모양과 재료로 집을 지었는데, 이제는 도시와 똑같은 집을 짓고 똑같은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삽니다. 그래서 일까요. 점점 생명체를 가려내는 눈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들판에 나가면 그 풀이 그 풀 같다고 합니다. 아주 다른 모양을 한 풀을 보면서도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개와 늑대를 구별 못 하는 아이가 네발 달린 짐승은 모두 ‘멍멍이’라고 하듯 이요. 다른 것을 다르게 보지 못하는 것도 똑같은 모양으로 도시화 되면서 퇴화되고 있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둘레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는 이름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양새에 따라 이름이 다릅니다. 백로를 살펴볼까요. 백로는 몸 깃이 하얗고 긴 부리, 긴 목, 긴 다리를 가진 새입니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부리나 눈언저리, 다리 빛깔이 많이 바뀝니다. 여름이 되면 몸이 작은 쇠백로는, 뒷머리에 두 가닥 장식깃이 나고 발가락이 노란빛을 띠지요. 노랑부리백로는, 부리와 발가락이 노란빛을 띠면서 뒷머리에 장식깃이 많이 납니다. 몸 크기가 중간인 중백로는, 목과 등에 장식깃이 많이 나고 눈언저리와 부리 한 켠은 노란빛을 띱니다. 몸이 큰 중대백로는, 등에 장식깃이 많이 나고 눈언저리가 짙은 옥빛으로 바뀌지요. 몸집이 더 큰 대백로는, 다리 위쪽이 노란빛이나 주황빛을 띱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백로들이 무리지어 있다면 몸집 크기로도 이름을 알 수 있겠지만, 따로따로 있으면 비슷비슷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워요. 그냥 하얀 물새네, 하는 것보다는 ‘백로’라고 아는 것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내 이름이 ‘개똥이’인데 ‘가뚱이’라고 부른다면 어떻겠어요? 사람이 그렇듯이 자연도 이름을 알면 훨씬 더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앞에서 이야기 한 모양새를 자세하게 관찰하면 이름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생태세밀화는 관찰을 바탕으로 합니다. 생태세밀화를 자주 보면 관찰력도 함께 길러집니다. 관찰력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글쓰기를 하거나 일상생활을 꿰뚫어 보는 힘을 갖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살아 있는 것은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가려 낼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것은 중요한 교육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생태세밀화는 생명체를 구별하는 눈을 길러 주고 자연과 친숙해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생태세밀화가 좋은 그림일까요. 겉모습만 잘 그렸다고 좋은 그림은 아닙니다. 자연이 품은 생명체에 애정을 가지고 받아들인 느낌이 살아나야 합니다. 느낌이 살아 움직여야 비로소 보는 이에게 조그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낌이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어린 아이는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고 무엇이든 만지려고 합니다. 느낌으로 사물을 알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벼를 그리는데 낫으로 벼 포기를 베면서 벼 이파리에 손을 베어 보지 않은 사람이 벼 잎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를 알까요? 돌멩이는 무겁고 단단하지요. 작은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고 돌멩이에 맞아 보지 않고서는 돌멩이가 단단하다는 느낌을 알까요? 느낌은 눈으로 보는 관찰만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경험한 것이 느낌으로 나타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관찰과 함께 보이지 않는 뒤를 알아야 느낌은 살아납니다. 자연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러줍니다. 사람이 예술품이라고 일부러 만들어 놓지 않아도 자연은 참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겉만 치장된 그림이 아니라 자연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알맹이 느낌을 담은 생태세밀화가 자연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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