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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백수린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2년, 대한민국 인천

직업:소설가

최근작
2024년 2월 <폴링 인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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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여기에 실린 글들 중 일부는 올여름 창비 온라인 플랫폼 ‘스위치’에 연재한 것이지만 나머지는 내가 작가가 되고 언덕 위의 집과 인연을 맺은 이후 몇년간 틈틈이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썼던 원고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세월이 흘러 변한 것들이 내게는 보인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썼던 글들을 매만지는 동안 내가 상실했다고만 생각했던 존재들이 가만히 내 곁에 다가와 함께 있어주었는데, 시간이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하더라도 내게는 글이 있어 잃었던 것과 몇번이고 다시 함께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산문집에 실을 마지막 원고를 송고하고 잠시 떠났다가 글을 다시 쓰기 위해 며칠 만에 언덕 위의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목격한 것은 힘들게 심고 길렀던 식물들이 내가 돌보지 못한 사이 시들고 죽어 있는 풍경이었다. 한동안 떠났다 돌아올 때마다 반복해서 보게 되는 풍경인데, 매번 그 자리에는 내가 심지 않은 풀과 꽃이 만발해 있다. 예전의 나라면, 죽어버린 것들에 집중했을 것이다. 애써 노력해봤자, 소중한 것은 우리가 돌보길 그치는 순간 얼마나 쉽게 상해버리고 망가지고 마는지. 없애야 할 것들은 반면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 생명력을 지녔는지. 마치 비관적인 생각이나 낙담으로 기우는 마음, 미움과 오해, 깊은 곳에 숨겨둔 열등감처럼. 하지만 이제 나는 살아 있는 것들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내 제한된 돌봄의 능력 바깥에서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본 것들. 내가 멈춘 그 순간에 뜻밖의 선물처럼 주어진 생명들. ‘내’가 전부이지 않은 세상이 좋다. 내가 심지 않은 것들이 피어날 땅을 남겨두며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이 산문집에 실린 글을 쓰고 정리했다. 나의 작고 환한 방에서 시작해 멀리, 조금 더 멀리로 나아가는 이야기들을.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소설이 아닌 형식의 글을 묶을 때면 늘 주저하는 마음이 되지만 이글들이 누군가 필요한 이들에게 잘 가닿기를 바란다. (…) 끝으로 내 마음속 움직이지 않는 별이 된 봉봉에게 무한한 애정이 담긴 감사의 입맞춤을 보낸다. 이 책에 실린 내 글에 조금이라도 사랑이 깃들어 있다면 그건 온통 봉봉이 가르쳐준 것이다. 가을 초입에 언덕 위의 집에서

2018 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한동안 소설을 거의 발표하지 못하고 지냈다. 소설 쓸 시간을 물리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내 예상보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소설 대신 청탁 반려 메일을 써야만 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메일을 전송할 때마다 이러다가 소설 쓰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나를 어김없이 엄습하곤 했다. 무언가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잃는 데는 아주 짧은 찰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의 빌라」는 내가 지난해 쓴 유일한 단편소설이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사정을 헤아려 원고를 기다려준 분들이 없었다면 내가 지난가을,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이 소설을 완성해내려고 애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름의 빌라」는 인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그와 관련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을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몰이해가 어떻게 뜻하지 않게 폭력이 되는지, 무언가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은 어째서 많은 경우,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악의가 아니라 나에게만 진실한 선의인지, 소설을 구상하던 단계의 나는 그런 것들이 궁금했던 것 같다. 소설을 거의 완성해놓고 결말을 짓지 못해 여러 날을 보냈다. 처음 내가 품고 있던 이야기 속에서 어린아이들이 만나는 장면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아이를 낯설어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레오니의 에피소드는 결말을 위한 복선처럼만 기능할 뿐이었다. 예정해두었던 결말은 말다툼이 끝난 이후, 숨겨진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된 주아가 폭풍이 휩쓸고 간 빌라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쓰면 쓸수록, 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바람에 쓰러진 파라솔과 선베드가 나뒹구는 풍경처럼 황폐해진 인물들을 그렇게 버려둔 채 이야기를 봉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이야기가 좀처럼 풀리지 않아, 마감을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사과 메일을 작성해 임시로 저장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던 어느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소설에 대해 골몰하다가 레오니가 웃는 장면을 그려보면 어떻게 될지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한 인물이 타인을 향해 그저 웃었을 뿐이었는데 소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가슴이 뛰었다. 그날 새벽, 형광등도 켜지 않고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동이 틀 때까지 글을 다시 고쳐 쓰면서 나는 내가 소설 쓰는 작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매사에 전심을 다해 투신하지 못하고 한 발만 담근 채 다른 발로는 도망칠 궁리만 하며 일생을 살아온 비겁한 나에게 소설 쓰기는 나의 모자람과 나를 압도하는 두려움마저 견디는 법을 알게 해준 거의 유일한 일이다. 등단한 이래, 친숙한 얼굴로 불쑥 찾아오는 자괴감 탓에 모든 것을 두고 달아나고픈 충동을 번번이 느껴왔지만 고비마다 지면을 주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계속 써나갈 용기를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지극한 행운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으니, 기쁘고 감사하다. 부족한 작품에 따뜻한 격려를 해주신 문학과지성사 심사위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날들 동안 쓰면서 자책하고 끊임없이 회의하겠지만 그러면서라도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러는 중에 나의 글이 죽음보다는 생(生)에 가까운 것이 되어갈 수 있기를. 이것이 지금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호사로운 바람이다. 2018년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때때로 시간은 앳된 이마에 할퀸 발톱 자국 같은 주름을 남기고, 생기 지닌 모든 것을 함부로 짓밟는 사나운 짐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린 앙리의 하루는 시간이 지나간 자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작가 특유의 아름다운 그림과 시를 닮은 문장들이 한 사람의 인생 안에 존재하는 절정과 쇠락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우리는 쇠락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쇠락이란 새벽의 푸른 안개처럼 희미하게 흩어지는 것, 안개 속의 작은 까치밥나무 열매처럼 섬세하게 흔들리는 것. 여름은 진즉 끝났고, 철새들마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는데도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는 왜 슬프지 않을까? 푸른색이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그림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눈부신 안부

그즈음엔 주변에서 장편소설로 써보라며 해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어떤 이야기에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그 여름의 식탁에서 ‘파독간호사’에 대한 어떤 일화를 듣고 첫 장편소설을 마침내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예감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그날 내가 떠올렸던 이야기, 내가 쓰고 싶었고 쓸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이야기와 실제로 완성된 이야기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지만, 첫 장편을 쓸 수 있으리라는 예감으로 벅차올랐던 그 마음만큼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문맹

《문맹》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무엇이었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월경 안내인의 인도를 받으며 숲을 헤매는 부분을 고를 것이다. 작가가 그 당시 들고 있던 가방은 두 개였는데, 하나에는 갓난아기의 기저귀와 갈아입힐 옷가지가, 다른 하나에는 사전이 들어 있었다고 작가가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조국과 가족마저 등지고 떠나는 순간 여러 물건들을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하며 짐을 쌌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가방 안에 사전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전?아마도 독일어와 헝가리어로 이루어진 이중 언어 사전이었을 텐데?은 그녀에게 모국어와 외국어를 연결시켜주는 통로이며, 낯선 나라에서 그녀의 언어(정체성)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 무엇을 상징했던 게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영원히 소녀였던 할머니, 아이였다가 이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엄마 아빠,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꼬마인 동생, 가족이 되어 준 제부와 Y,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아기 강아지 봉봉, 그리고 언젠가는 어른이 되고 삶의 비밀들을 아는 할머니가 될 어린 조카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여기에 실린 글들 중 일부는 올여름 창비 온라인 플랫폼 ‘스위치’에 연재한 것이지만 나머지는 내가 작가가 되고 언덕 위의 집과 인연을 맺은 이후 몇년간 틈틈이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썼던 원고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세월이 흘러 변한 것들이 내게는 보인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썼던 글들을 매만지는 동안 내가 상실했다고만 생각했던 존재들이 가만히 내 곁에 다가와 함께 있어주었는데, 시간이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하더라도 내게는 글이 있어 잃었던 것과 몇번이고 다시 함께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산문집에 실을 마지막 원고를 송고하고 잠시 떠났다가 글을 다시 쓰기 위해 며칠 만에 언덕 위의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목격한 것은 힘들게 심고 길렀던 식물들이 내가 돌보지 못한 사이 시들고 죽어 있는 풍경이었다. 한동안 떠났다 돌아올 때마다 반복해서 보게 되는 풍경인데, 매번 그 자리에는 내가 심지 않은 풀과 꽃이 만발해 있다. 예전의 나라면, 죽어버린 것들에 집중했을 것이다. 애써 노력해봤자, 소중한 것은 우리가 돌보길 그치는 순간 얼마나 쉽게 상해버리고 망가지고 마는지. 없애야 할 것들은 반면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 생명력을 지녔는지. 마치 비관적인 생각이나 낙담으로 기우는 마음, 미움과 오해, 깊은 곳에 숨겨둔 열등감처럼. 하지만 이제 나는 살아 있는 것들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내 제한된 돌봄의 능력 바깥에서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본 것들. 내가 멈춘 그 순간에 뜻밖의 선물처럼 주어진 생명들. ‘내’가 전부이지 않은 세상이 좋다. 내가 심지 않은 것들이 피어날 땅을 남겨두며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이 산문집에 실린 글을 쓰고 정리했다. 나의 작고 환한 방에서 시작해 멀리, 조금 더 멀리로 나아가는 이야기들을.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소설이 아닌 형식의 글을 묶을 때면 늘 주저하는 마음이 되지만 이글들이 누군가 필요한 이들에게 잘 가닿기를 바란다. (…) 끝으로 내 마음속 움직이지 않는 별이 된 봉봉에게 무한한 애정이 담긴 감사의 입맞춤을 보낸다. 이 책에 실린 내 글에 조금이라도 사랑이 깃들어 있다면 그건 온통 봉봉이 가르쳐준 것이다. 가을 초입에 언덕 위의 집에서,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원고가 막히면 외투를 찾아 입고 그 집 앞으로 가 공사현장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친구들에게 취재를 핑계 삼아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소설이 막힐 때마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육아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은커녕 간접적인 경험마저도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았고,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짐작하는 일이 어김없이 두려워지곤 했다. 그렇지만 ‘나’라는 협소한 세계를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내게는 소설뿐이라, 나는 낙담하다가도 노트북 앞으로 되돌아가 소설을 썼다. (……) 수상소식을 들은 것은 공교롭게도 『현대문학상수상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학생들과 함께 읽던 날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날개에 적힌 기수상작가들의 이름을 읽어보았는데, 그 끄트머리에 내 이름이 놓인다는 사실이 쉽게 실감나지 않았다. (……) 소설 앞에선 항상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소설을 쓰며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작지만 무거운 약속을 오늘 여기에서 드린다. - 수상소감

여름의 빌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이해와 사랑 말고는 달리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고, 이 소설들 역시 그런 믿음 속에서 썼을 것이다. 나에게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한 채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직시하고 찬찬히 기록하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므로. (…)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나는 당신이 안온한 혐오의 세계에 안주하고픈 유혹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랑 쪽으로 나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나는 이 여름, 그런 당신의 분투에 나의 소설들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2020년 여름의 문턱에서,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이 책에 실린 짧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마음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어 자신이 무언가를 상실하고 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상의 사람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그들을 대신해 마음의 풍경을 그리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이 지나면 사라져버릴지라도 지금은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기미와 흔적을 언어로 붙잡아두는 일. 굳은살처럼 딱딱해진 마음의 외피 아래서 벌어지는 사세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들을 기록하는 일.

작은 어부와 커다란 그물

우리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계속 부족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때로는 더, 더 많이 갖는 것만을 좋은 일처럼 생각하기도 하죠. 《작은 어부 와 커다란 그물》 속 작은 어부네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요. 주변을 한번 돌아볼까요? 사람들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생태계는 파괴되며, 지구의 한 편에서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음식 쓰레기가 쌓이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어요. 욕심의 끝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동물, 식물 이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더 많이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느껴질 때면 작은 어부 가족을 최고의 어부로 거듭나게 해 준 깨달음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존재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나 혼자만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은 결코 없을 테니까요. - 옮긴이의 글

폴링 인 폴

등단한 이래 꼭 삼 년이 지났다. 글쓰기는 내게 언제나 나의 어둠을 견디는 방편이었을 뿐이므로 지난 삼 년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내 글을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는지, 만약 이것이 소설이라면 나와 내 소설이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기는 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다. 그러나 내가 만약 매사에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참인지 거짓인지 확고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나는 결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와 깨닫는다. 머뭇거리면서, 주저하며 나아가는 날들 중 언젠가 내 글에도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그리하여 언젠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폴링 인 폴

십 년 만에 첫 소설집을 다시 묶는다. 책이 출간된 지는 십 년이 되었지만, 여기에 실린 글들은 그보다 더 오래전에 쓰였다. (…) 이번에 『폴링 인 폴』 에 실린 원고들을 다시 읽으며 내 마음속에 자주 떠오른 것은 그런 새하얀 눈의 이미지였다. 소금 결정처럼 단면이 거칠고 부서질 듯 가벼운 첫 눈송이. 시간이 흘러 봄이 오면 녹아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그래서 내가 이젠 상실했으나 한때 분명히 내 안에 존재했던, 소설을 향한 가장 깨끗하고 순정했던 마음. 그런 의미에서, 이 개정판은 이 책으로 내 글을 처음 접하게 될 새로운 독자들과 이미 나의 책들을 읽어온 오랜 독자들에게 내가 두 손 가득 귀중히 떠서 건네는 그 처음의 새하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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