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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김보영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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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SF는 고양이 종말에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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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집행관

죽을 운명밖에 남지 않은 사람은 무슨 수로 살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그 답이기도 했다.

다섯 번째 감각

일생 한 편만 써도 없는 것보다는 많다 이 책은 2002년에서 2009년 사이의 내 기록이다. 지금과는 결이 다른 글도 있지만 그래서 의미가 있으려니 한다. 《얼마나 닮았는가》와 달리 퇴고를 다소 했는데, 주로 오류나 모순을 고치고 문장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에 주력했다. 〈거울애〉, 〈땅 밑에〉, 〈마지막 늑대〉, 〈몽중몽〉은 내적 모순이 많다고 판단하여 여러 부분을 수정했다. (……) 간혹 말했지만, 나는 스무 살 이전까지는 소설 쓰기 외에 다른 취미가 없었고, 스무 살 이후로는 갑자기 단절된 것처럼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시간만 허비하던 나는 ‘일생 한 편만 써도 없는 것보다는 많다’는 생각으로, 10년이 걸리든 평생이 걸리든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첫 소설들은 그렇게 무식한 시간을 들여 썼다. 출간할 수 없는 글을 쓰고 있다는 확신이 워낙 컸기에 오직 나 자신만을 만족시킬 소설을 쓰고자 했고, 그 소설들은 SF의 형태로 나왔다. (……) 여전히 이 책은 내 첫 독자였던 친구 구지은과 한소영 씨께 바친다. 구지은은 십 대 시절 내 독자였고, 작가가 될 수 없다는 확신 속에서 방황하던 내게 만날 때마다 소설을 쓰라고 해주었다. 때로는 놀러 와서는 방에 죽치고 앉아 얼른 쓰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기다려주는 그 친구에게 한 편이라도 소설을 선물하겠다는 결심에서 내 집필이 새로 시작되었다. 한소영 씨는 내가 데뷔하기 전부터, 가장 처음 내 초고를 읽어주며 진심 어린 감상을 전해주셨다. 그 감상을 통해 나는 소설을 다듬고 고쳐갈 수 있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두 분께 감사한다. 두 분은 한 명의 독자가 한 명의 작가를 만들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 2020년 2월, 김보영

다행히 졸업

우리 학교는 참 평범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하는 사람을 보면서 생각한다. 누군가는 어디선가 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는’ 상태란 쉬이 얻어 낼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 이승의 선지자

『저 이승의 선지자』는 원래 『7인의 집행관』을 쓴 다음 해에 잡았던 소설이다. 『7인의 집행관』을 쓸 때 저승을 배경으로 한 제7막의 세계관은 수십 번을 다시 짰는데, 그중 파기한 설정을 기반으로 저승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하나 만들 생각을 했다. 단지 당시에는 세계관에 명확한 그림은 없었고, 이승은 배움을 위한 학교며 저승에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처럼 여러 학파가 교육방식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는 설정만 있었다. 여름에 세계관을 짜며 만약 저승에 물리적인 ‘삶’이 있고 생태계가 돌아간다면 어떤 형태일지를 고민하다가 ‘불멸의 생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쳤다. 불멸한다면 밥을 먹을 필요가 없고,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면 소화기관도 배설기관도 없을 것이다.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면 생식기관도 없을 것이고, 숨을 쉴 필요가 없다면 코나 입이나 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아메바나 암세포나 분자들처럼, 경계가 불분명하고 분열과 확장을 반복하는 비정형의 생물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저승과 이승을 포함한 우주 전체가 가이아처럼 하나의 생물이라는 세계관을 만들었다. 그 저승의 생물이 이승에 오면 어떻게 분열된 개체가 되는가 생각하다가 분열과 합일의 논쟁이 벌어지는 세계가 되었다. 2013년 웹진 ‘크로스로드’ 마감이 있었던 겨울까지 나는 그 세계관을 명확히 확립하지 못했다. 나는 분리가 좋은지 합일이 좋은지 방향을 잡지 못했고, 마지막에는 초기 의도와는 달리 분리가 나쁘다는 생각에 빠진 채 어정쩡한 결과물을 내놓았는데, 그 헷갈림 자체가 내 세계관에 대한 이해부족이었다는 생각을 이번에 한다. 그 후 오랫동안 이 작품을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정리하면서 최근에 쓰던 몇 작품이 벌써 다 잊어버렸던 이 작품의 세계관을 정교화하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 웃었다. 덕분에 당시 방향을 잡지 못했던 많은 부분을 정리했다. 이 작품은 온라인에 게재한 판본의 개정판이자 확장판으로,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은 비슷하지만 해석이 많이 다른데, 나 자신이 변화한 결과로 생각한다. 「새벽기차」는 한창 『저 이승의 선지자』를 쓰던 중 ‘과학동아’ 마감일이 다가와 잠시 집필을 중단하고 쓴 작품이다. 덕분에 자연스레 비슷한 생각이 담기게 되었다. 같은 세계는 아니지만 생각이 어울려 수록한다. 「그 하나의 생에 대하여」는 가벼운 외전이다. 외전을 쓸 생각을 했을 때 자연스레 평행세계들이 떠올랐다. 한 번 끝난 소설의 미래는 원래 이처럼 무한의 분기로 갈라지지 않겠는가. 나반은 수록한 것 이외에도 무수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종의 기원담

이것은 결국 로봇의 이야기다. 사물에 깃든 생명에 바치는 경애다. 종의 기원담 1편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00년 즈음이었다.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다. 완성한 해는 2005년이었고 서른 살이었다. 2편은 그해에 써서 완성했다. 3편은 올해 완성했고 지금 나는 마흔여덟 살이다. 그러니 이 세 편은 각기 다른 이야기다. 세 편을 쓴 사람 각각이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며 같은 주제에 대한 관점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보아주셨으면 한다 (...) 부디 이야기를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에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은유로 보며 눈에 보이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치환하려 애쓰지는 말기 바란다. 단어는 눈에 보이는 단어 그대로의 뜻이다. 이것은 결국 로봇의 이야기다. 무기생명에 대한 내 개인적인 헌사며, 곧이곧대로 기계생명을 향한 찬가다. 사물에 깃든 생명에 바치는 경애다. (...) 1편에서 원래 주석을 많이 넣으려다가, 소설에서 설명할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다 빼었는데, 3편에서는 그런 부분들도 조금은 풀어놓았다. 대부분은 로봇의 지식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1편과 2편에서 뒤늦게 발견한 모순과 오류들도 이번에 여러 군데 수정했다. 〈종의 기원〉이었던 원래 제목도 너무 많이 쓰이는 듯하여 〈종의 기원담〉으로 수정했다.

한국 SF 명예의 전당

‘기계 몸에 인간이 들어가는 대신, 인간 몸에 AI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라는 발상에서 시작한 소설이다. 우주 재난 추리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했다. 단지 AI가 인간 몸을 원할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한동안 접어두었다가 어느날 불현듯 답이 떠올라 뒤를 이었다. 초안만 써두었을 무렵 태양계 앤솔러지 기획이 들어와 맞춰 썼다.

SF는 고양이 종말에 반대합니다

여러분도 저희들처럼 이 책에 나온 주제로 여러분만의 토론을 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어떤 토론이든 양갱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 거고, 그래서 고양이들이 지구에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해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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