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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미로 일탈 언제 들어도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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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속편"
꿈꾸는 책들의 미로
발터 뫼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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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무척 재미난 책이었다. 온갖 신기한 생물들과 그보다 더 신기한 물건들이 끝없이 등장하고, 그 모든 소재들이 신기한 공간들 속에서 재미난 모양으로 배열되었다. 사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사물과 사건을 끊임없이 내놓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우선 신기하다고 내놓은 게 사실은 별반 신기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데다가, 한두 가지 설정이 먹힌다고 해서 나머지 설정들도 다 성공하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신기한 것들을 발견하고 묘사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말하자면 성공적인 판타지 우화 소설이란 아름다운 앤티크 상점 같은 것이다.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을 매입하는 안목과 그것들을 손님의 동선에 따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당연히 세상의 모든 앤티크 상점이 아름답지는 않다. 아름답다고 해도 등급이 있다. 그리고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최상급의 멋진 가게였다.

전작에서 온갖 난장판 끝에 불타버린 부흐하임으로 이백 년만에 돌아온 멋쟁이(?)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도시의 새로운 모습에 놀란다. 인식론적인 함정이 있는 연극, 도시 지하에 있는 책의 바다가 보여주는 또다른 생태계, 전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상한 미로... 이 새롭고 신기한 보물들을 헤치며 상자 속을 행진하는 우스꽝스러운 친구들. <꿈꾸는 책들의 미로>는 사랑스러운 속편이다. 재밌는 발상들에 비해 스토리가 허전하긴 하지만, 꼭 최고가 아니더라도 사랑스러울 수는 있는 법이다. 특히나 전작을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 소설 MD 최원호
이 책의 한 문장
우리가 어느 공간에서 보는 것은 꿈속의 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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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에서, 무한하게, 불화하는 말들"
[세트] 이성복 시론집 세트 - 전3권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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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칼은 손잡이까지도 칼날이에요. 남을 찌르려 하면 자기가 먼저 찔려야 해요" (불화하는 말들 中)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날카로움이 떠오른다. 시인들이 사랑하는 시인 이성복이 그 자신이 40여 년을 묵묵히 걸어온 '시'의 길에서 떠올린 말과 언어를 한데 모아 시론집을 엮었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학생들과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창작 수업에서 나눈 말들을 거르고 모아 산문과 대담, 시와 아포리즘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성복에게 시는 극지에 있는 것,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것(무한화서), 끝끝내 불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성복의 시 강의는 시종일관 온화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전개된다. 치열하게 시만을 생각한 어떤 시인의 사고는 이제 종교적 경지에 도달한 듯하다. 그는 극단적이지도, 흥분하지도 않은 어투로 문학을 말한다. "삶이란 속절없는 것, 그때문에 시가 속절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함께 더듬더듬 따라 읽다 보면, 이성복이라는 시인의 시론이 비단 문학에 관한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 읽고, 잘 쓰고, 잘 살고 싶은 이들이 아껴 읽기 좋은 생각들이 담겼다.
- 시 MD 김효선
책속에서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글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실험양으로 삼아야 한다는 거에요. 육조 스님이 '세간의 허물은 보지 말고, 항상 자기 허물을 보라'고 했는데, 이거 참 힘든 일이에요. 말은 쉬워도 정말 안 되는 게 이런 거에요. 문학하는 사람이 이게 된다면 성인군자일 거예요. 아니, 이게 제일 안 되는 게 문학하는 사람일 거예요. 그런데 현실에서 안 되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이 문학 아니겠어요. 문학이란 본래 안 되는 것을 해보려다 끝내 실패하는 것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카프카의 말이 있어요. "당신과 세상과의 싸움에서, 세상 편을 들어라(In the duel between you and the world, back the world)." 이 말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원칙 같아요. 어떤 일에서도 자기 편을 들지 않고 세상 편을 들 때, 인생에서나 문학에서나 진실함, 올바름, 아름다움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극지의 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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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자유의 영역을 확장시킬 역작"
일탈
게일 루빈 지음, 임옥희 외 옮김 / 현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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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게일 루빈이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듯, 페미니즘 역시 여전히 낯설다. 올해 관련 주제가 사회 문제로 제기되며 한국사회 페미니즘 원년이란 표현까지 나왔으나, 역자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지금의 페미니즘은 100년 전 근대 초기의 나혜석과 같은 신여성들이 보여주었던 성적 비전과 관점에도 훨씬 미치지 못할 정도로 이미 퇴행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는 등 여전히 어딘가에서 변화는 지속되고, 다른 어딘가에서도 변화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 책은 급진적인 성 이론 실천가로 알려진 게일 루빈의 유일한 저작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발표한 열다섯 편의 논문은 각각 젠더와 섹슈얼리티 연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논란을 일으켰는데, 첫 번째 글 '여성 거래'가 1975년에 발표된 글이고, 책에 실린 최근의 글 '섹스, 젠더, 정치'가 2011년에 쓰였으니, 현대 성 담론의 주요한 지점을 일별하며 관련 주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 살펴볼 수 있겠다. 변화의 과정을 추적하며 원인과 결과를 반추한다면, 더 큰 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보다 빠르게, 보다 전면적으로 말이다. - 사회과학 MD 박태근
이 책의 첫 문장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마음대로 만들지는 못한다.

책 속에서
계급 불평등, 인종차별, 전쟁, 질병, 기아, 생태 재앙과 같은 중대 사안에 비해 성 범주는 '하찮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근대의 발명품일 뿐만 아니라 근대사회의 핵심이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중략) '일탈적인' 성적 소수자 집단을 취업 실격자, 범죄자, 빨갱이 사냥, 마녀사냥에 동원함으로써 그들이 '지속 가능한 불평등'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든다면, 과연 그런 전략이 빈곤, 인종차별, 기아, 전쟁과 무관한 것일까? 촘촘한 성 계층화를 유지하는 데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이처럼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려면, 성의 정치경제적 접근은 필수적이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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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의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지음 / 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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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 2013년 첫 장편소설 <실내인간>, 그리고 2015년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보통의 존재> 이후 6년의 기다림 끝에 만나는 두 번째 산문집이라 더욱 반갑다. 이번 책은 인간의 내면과 일상을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전작과 많이 닮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면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여느 에세이처럼 다양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책 한 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긴 이야기를 중심으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글을 전개해나간다.

'이석원'은 아담한 전통찻집에서 '김정희'라는 한 여자를 만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둘만의 방식으로 만남을 이어가면서 여러 내면 갈등과 감정 상태를 경험한다. 작가는 허구와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보통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혀 독특하게 그려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삶에 관한 깊은 공감의 이야기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밥벌이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마음에 담아두었던 진심들을 곳곳에 토로하기도 한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한, 이석원다운 산문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 에세이 MD 송진경
이 책의 한 문장
과연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세상에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 바로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해보면 알게 될 것을 왜 물어볼까. '필사를 하면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나요?' 같은 질문에 내가 결코 대답을 해주지 않는 이유도 조금이나마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묻지 않고 바로 시작을 하기 때문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썼다. 쓸모가 있든 없든, 똑 같은 글이 되풀이되고, 한심한 글 밖엔 나오지 않았어도 종일 펜을 놀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고 그 무엇도 아닌 글이라 해도 그저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