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여행자 전창운 화백의 사유와 영감의 에피소드를 엮은 그림 인문학을 만나다!
“오늘 제주의 돌담은 인생의 오후반을 걸어가는 환쟁이를 불러 놓고 말한다. 인생은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아야 한다고. 화가는 한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나무 같아야 하고, 걸작은 만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아름다운 건 더디 이뤄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지! 힘내시게나.”
화려한 미사여구 없는 예술가의 소박한 삶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문학적 사유를 만나보자. 시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그의 그림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다 보면 맑은 울림으로 영혼이 정화되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총 13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는 없다. 작가는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손에 닿는 한 페이지를 펼쳐 음미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느냐 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행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기대에서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 전창운 화백은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이 삶의 넉넉함을 지닐 수 있도록 좋은 향기가 담긴 그릇을 만들고 있다.
최근작 :<화필잡담> ,<염생이 한 마리 놓고 술판이로군> ,<긋고 지우고 긋고 지우고> … 총 5종 (모두보기) 소개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나와 스물한 번의 개인전과 두 번의 사진전을 열었다. 동서양 실크로드를 완주하고 혜초의 길을 따라 기행했다.
저서로는 인문 화문집 『풍경 도둑놈』 수필집 『다시 풍경 도둑놈』 『애기똥풀이 똥 눈다』 『오늘은 잔칫날이었습니다』 『내 마음의 풍경』 『화가와 시인』(이경교 공저) 『긋고 지우고 긋고 지우고』 『염생이 한 마리 놓고 술판이로군』 『전창운의 허튼 강의』 화집으로 『풍경 도둑놈 전창운의 人門畵門』 등을 발간했다.
미술신문에 〈전창운의 걸으며 생각하며〉 칼럼을 연재했고, 제1회 광주비엔날레 특집 〈흙을 찾는 보헤미안, 화가 전창운〉(MBC TV), 〈그곳에 가고 싶다〉(정선, 파주, 인제 편 KBS1TV), 〈실크로드 이슬람 문화를 찾아서〉(동아방송 TV), 〈당신이 있어 좋은 세상입니다〉(KBS1TV), 〈책마을 산책〉(KBS1 라디오), 〈열려라 영상시대〉 〈TV 노인대학〉(평화방송 TV) 등을 진행했다. 상형전 회장,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는 서울예술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또 하나의 말뭉치 지구 위에 던져진다!
‘세상에 눈 없는 새가 과연 존재할는지’
영암 월출산 밑자락 무위사에 가면 많은 벽화가 그려있는데 그중 하나엔 눈 없는 새가 그려 있다는 것이다. 눈을 그리지 않은 것은 그려 넣으면 금방이라도 새가 날아가 버릴 거라니, 화가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 극락전 벽화 앞에 선 화가는 그림에 얽힌 사연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단지 눈으로 확인하고 만족하려는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나 참나를 깨닫게 해주는 깊은 뜻을 알게 하고, 눈 없는 새를 찾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눈 없는 작은 새가 되어 세상을 환히 밝히는 인간으로 살아가라는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눈 없는 새에 눈을 그려주려다 되레 자신의, 화가의 눈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차고 투명한 작가의 인생 여정에서 돈과 권력과 명예보다 다른 무언가에 가치를 두는 삶의 배움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풀벌레도 문장이라고 말하는 전창운 화백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풀잎, 흘러가는 구름, 길가의 조약돌까지도 깊이 감동하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늦깎이로 남에게 들키길 바라고, 그림 고픈 사람 배 채워 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몸의 시학, 시각을 통해 시각을 넘어서다>
전창운 화백에게 영감의 형식은 대상과 함께 호흡하는 양식으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소 그림이나 나무의 모습은 물론, 자잘한 풀꽃들 또한 화면 가득 숨 쉬고 있는 걸 본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섬 풍경이 보여주는 바다와 파도, 그리고 하늘의 표정은 강렬한 운동감으로 다가온다. 그건 밤바다와 어두운 하늘도 예외가 아니다. 그 움직임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건 화가와 오브제를 연결하는 신비로운 호흡이다.
사실 영감이란 본디 ‘들숨’을 뜻한다. 평범하던 오브제의 어떤 기운을 화가가 들이마시는 순간, 그 오브제는 화가의 내면에서 요동치고 생기를 회복하며 예상치 못한 자극과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바로 이때 창조적 충동이 여무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격렬한 한순간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많은 시인의 펜 끝에서, 작곡가의 악보 위에서, 그리고 화가들의 붓끝에서 영감은 무참히 살해되었던가.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이런 모순과 배반이야말로 예술가의 고통이며 숙명이다. 여기서 전창운이 획득한 영감의 생포방식이 바로 대상 속으로의 틈입이다.
_이경교(시인, 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