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산문집. 김현은 퀴어문화축제, 공씨책방, 무명서점 304낭독회, 명절 가족들 사이, 홀로 떠난 바닷가, 여행지 짝꿍 옆, 사무실 동료 옆, 베트남의 친구 옆 등,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묘사해 새롭고 소중한 것으로 단번에 바꾸어놓는다. 여기 그 기록들이 촘촘하다.
김현을 아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놀라는 지점이 하나 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의 사무실 인간이 어떻게 그 많은 일 - 창작, 연대, 생활, 사랑 등 - 을 너끈히 해내는지를. 그래서, 누군가는 시 쓰는 김현, 산문 쓰는 김현, 소설 쓰는 김현, 아픈 몸의 김현, 슬퍼하는 김현, 분노하는 김현, 여행하는 김현, 사랑하는 김현, 노회찬을 그리워하는 김현이 따로 있지 않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 여럿의 김현이 책 곳곳에 드러나 있고, 또 숨겨져 있다.
김현은 생활, 휴식, 연대의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직간접으로 만나고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 하나하나가 김현을 만들고 자극하고 바꾸어놓은 소중한 존재들이다. 윤보라 씨, 허종윤 씨, 이지영 씨, 짝꿍, 시하 누나, 성은 누나, 백선우, 미주와 청운 부부, 김신숙, 허은실, 배철수, 최영미, 권오복 씨 가족, 재위, 조영희 씨, 조미자 씨, 지영, 은유, 허수경, 임수연, 싱어송라이터 유라 등. 그들은 글 중앙에, 또는 한쪽 모퉁이에 드러나게, 또는 살짝 적혀 있다.
: 시에 한참 빠졌던 즈음 나는 꿈꾸었다. ‘시인이 되었으면’이 아니라 ‘시인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막연히. 그 꿈을 잊고 살다가 김현을 만났다. 사람이 아닌 글부터. 우리는 한 시사주간지 같은 지면에 격주로 글을 싣는 ‘연재메이트’였다. 내 글이 머물던 자리에 그의 글이 채워졌고, 그의 글의 잔상이 아롱지는 자리에 내 글이 얹혀졌다. 그건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꾸는 천상의 일이라기보단 마을버스 기사의 교대 근무 같은 지상의 일이었다. 그나 나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상에서 글감을 실어왔으니 말이다.
김현은 백미러로 승객의 안색을 잘도 살피는 노련한 기사 같았다. 그가 모는 버스에 잠시라도 탄 사람들은 누구라도 한 편의 이야기를 선사받았다. 특히 그는 비탈길 운전에 능했다. 가파른 슬픔의 서사를 매번 안전하게 실어날랐다. 가장 부러운 점이었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은 아마 한번쯤 그의 승객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의 행로의 무심한 동행이고 싶었고 그에게 뒤지지 않는 근무자이고 싶었다. 그렇게 흉내내고 본받으며 알았다. 내가 시인 친구를 두고 싶었던 건 시인처럼 사는 게 아니라 시인처럼 쓰고 싶었던 거였구나. 시인처럼 쓴다는 건, 김현처럼 산다는 것이구나.
2009년 《작가세계》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김현시선》 《호시절》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낮의 해변에서 혼자》 《장송행진곡》, 산문집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공저)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소설집 《고스트 듀엣》이 있다. 제22회 김준성문학상,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아픈 몸을 살다> 우리는 누구나가 아프거나(아팠거나) 아픈 사람을 주변에 두고 있다. 하지만 아픈 몸을 산다는 것이, 또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잘 모른다. 그래서 뒤늦게 반성하고 또 후회한다. 이 책은 심장마비와 암을 앓았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아픈 몸과 돌보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준다. 잔잔하되, 오래가는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