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소설집. 박지원의 글은 도발적이며 전복적이다. 그는 조선 사회의 허구성과 위선을 까발리고 고발하되 해학과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그렇게 한다. 동시에 그는 이 과정에서 참된 사회, 참된 인간존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리하여 그의 글은 단순히 기성사회를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성과 신분에 종속되지 않고 참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 사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도록 재촉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한 곳에 고정된 정주형 인간이 아니라 여러 곳을 방랑하고 여행하며 다양한 견문을 배우고 성찰하는 유목형 인간으로서 지식인의 배움의 도를 풀어내며, 각계각층의 조선인 뿐 아니라 외국인, 심지어 자연의 미물에게까지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 폭을 한껏 확장한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소설은 연암의 그러한 인품과 문제의식을 잘 드러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문학적 양식을 긴밀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사료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간호윤 박사의 밀도 높은 주해와 감칠맛 나는 언어 선택은 연암의 소설의 가치를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최근작 :<조선의 양심, 연암 박지원 소설집> ,<[큰글자책] 연암 척독> ,<연암 척독> … 총 222종 (모두보기) 소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737년 2월 5일(1세)에 반남(潘南) 박씨 아버지 사유(師愈)와 어머니 함평(咸平) 이씨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한양 서쪽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미(仲美)ㆍ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ㆍ연상(煙湘)이다. 어려서부터 글 솜씨가 뛰어났으나 17세 무렵부터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학문에 매진했으나 과거에는 뜻을 보이지 않았다.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등과 깊은 교우를 맺었고 박제가, 이서구 등을 제자로 삼아 북학론을 주장했다. 1780년 삼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북경에 다녀와서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지었다. 1786년, 50세의 나이에 친구 유언호의 천거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안의현감(安義縣監) 등을 역임했다. 1793년 정조에게 문체반정의 주동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1805년 가회방(嘉會坊) 재동(齋洞) 집의 사랑에서 사망했고 1900년 김택영(金澤榮)이 편찬한 《연암집》이 간행되었으며, 1901년에는 김택영이 편찬한 《연암속집》이 간행되었다.
최근작 :<연암소설을 독(讀)하다> ,<코끼리 코를 찾아서>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 총 49종 (모두보기) 소개 :현 인하대학교 초빙교수,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간호윤은 1961년 경기 화성, 물이 많아 이름한 ‘흥천(興泉)’생으로, 순천향대학교(국어국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국어교육학과)을 거쳐 인하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두메산골 예닐곱 때 명심보감을 끼고 논둑을 걸어 큰할아버지께 한문을 배웠다. 12살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꿈은 국어선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선생을 거쳐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는다.
저서들은 특히 고전의 현대화에 잇대고 있다. 『한국 고소설비평 연구』(2002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이후, 『기인기사』(2008),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2010),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2012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2014세종학술도서), 『연암 박지원 소설집』(2016), 그리고 『아! 나는 조선인이다-18세기 실학자들의 삶과 사상』(2017), 『욕망의 발견』(2018), 『연암 평전』(2019), 『아! 조선을 독(讀)하다-19세기 실학자들의 삶과 사상』(2020)에서 『조선 읍호가 연구』(2021),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2022), 『조선소설 탐색, 금단을 향한 매혹의 질주』(2022), 『기인기사록』(상)(2023), 『코끼리 코를 찾아서』(2023) 등 50여 권과 이 책까지 모두 직간접으로 고전을 이용하여 현대 글쓰기와 합주를 꾀한 글들이다.
‘연구실이나 논문집에만 갇혀 있는 고전(古典)은 고리삭은 고전(苦典)일 뿐이다. 연구실에 박제된 고전문학은 마땅히 소통의 장으로 나와 현대 독자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연암 선생이 그렇게 싫어한 사이비 향원(鄕愿)은 아니 되겠다는 게 소망이다.
18세기는 조선 사회가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던 시기다. 당시에는 완고한 봉건적 신분제 사회의 모순에서 비롯된 내부의 피로도가 임계점에 육박했고, 왜란과 호란을 계기로 국가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지도층의 무능력과 당파주의에 대한 의구심과 냉소가 분출되었으며, 서구의 사상과 문물을 접하게 되면서 기존의 유교 질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리하여 지식인 사회에서는 유교 경전 중심의 사유체계에 도전하고 주체적이며 자주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재해석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태동했는데 바로 그 중심에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다산과 연암은 여러 면에서 서로 비교-대조되는 존재다. 그 둘은 조선 후기의 지식인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그들의 문제의식, 글쓰기 방식과 문체적 특징, 궁극적 목적이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문제의 인물임이 분명하다. 다산 정약용이 혼란과 도탄에 빠진 조선 사회를 유교적 이상과 질서에 따라 재구성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사구시적인 논리를 펼쳤다면 연암 박지원은 조선 사회의 음습한 부분들을 해학과 풍자, 조롱과 꾸짖음 등의 양식을 통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글을 다수 남겼다. 따라서 기존의 유교 사상과 질서에 충실했던 정조가 당시 사대부들의 문풍을 어지럽힌 배후로 박지원을 지목하며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라고 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박지원의 글은 도발적이며 전복적이다. 그는 조선 사회의 허구성과 위선을 까발리고 고발하되 해학과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그렇게 한다. 동시에 그는 이 과정에서 참된 사회, 참된 인간존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리하여 그의 글은 단순히 기성사회를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성과 신분에 종속되지 않고 참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 사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도록 재촉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한 곳에 고정된 정주형 인간이 아니라 여러 곳을 방랑하고 여행하며 다양한 견문을 배우고 성찰하는 유목형 인간으로서 지식인의 배움의 도를 풀어내며, 각계각층의 조선인 뿐 아니라 외국인, 심지어 자연의 미물에게까지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 폭을 한껏 확장한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소설은 연암의 그러한 인품과 문제의식을 잘 드러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문학적 양식을 긴밀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사료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간호윤 박사의 밀도 높은 주해와 감칠맛 나는 언어 선택은 연암의 소설의 가치를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비록 18세기의 작품이지만 연암의 글은 겉모습만 21세기일 뿐 실상은 여전히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풍습에 매여 허우적거리는 오늘 한국사회의 음험한 지점들을 향해서도 상당한 적실성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자신의 작품 배면에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 땅의 지도층들이 경청하고 가슴에 되새길 내용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