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문/장/수/집/가/로 팟캐스트('북적북적톡설')를 운영 중인 출판기획자 윤작가의 '포충망'에 걸린 느낌 있는 문장을 찾아서 수집한 가슴을 울리는 45편의 감동 글이다.
32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 글쓰기 NIE R&E 신문반 방송반 활동을 지도하면서 또 진로진학 상담교사로 살았던 윤작가가 - 출판기획자로 제2의 인생을 찾아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 자료 가운데 수집한 1만여 편의 산문 가운데 고르고 골라 엮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에서 만나는 45편의 산문들.
여러 가지 주제로 - (문인들의)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 (신선한 주제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선명하게 그린) 느낌은 그리움처럼 - 아무튼 산문, (여행자의 기록) 길 위의 인생,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문단이면사, 우리말 바로 쓰기, 예술가의 첫사랑 -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기도 한 저자가 인터넷 오디오 방송으로 읽고 싶었던 우리 시대 작가의 문장 44편 - 그리고 '가족 문단사'를 실었다.
최근작 :<김남천 작품집> ,<불멸의 문장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D 세트 - 전12권> … 총 485종 (모두보기) 소개 :1911년 평남 성천군에서 출생하여 1929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고,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1931년에 제적되었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1931년에 제1차 카프 검거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출옥 후에 감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물」(1933)을 발표하고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 문제를 놓고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1934년 제2차 카프 검거사건에도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 임화·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장편 ≪대하≫(1939), 연작인 ≪경영≫(1940)과 ≪맥≫(1941) 등을 발표했다.
8.15 광복 직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 말 경 월북하여 해주 제일인쇄소의 편집국장으로서 남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활동을 주도하였으며, 한국 전쟁에도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했으나, 1953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로동당에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김남천도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1953년이나 1955년에 사형당했다는 설, 1977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최근작 :<중고등생 필독서 한국 소설 수필 시 국어교과서 수록 작품 읽기 4> ,<벙어리 삼룡이(외)> ,<청춘> … 총 777종 (모두보기) 소개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홍사용, 박종화 등과 문예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젊은이의 시절』등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 자식』을 『개벽(開闢)』에, 『여이발사(女理髮師)』를 『백조』에 발표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과 날카로운 필치를 바탕으로 하여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촛점을 맞춘 작품을 주로 선보이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에 대하여 김동인(金東仁)은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하였다. “젊어서 죽은 도향은 가장 촉망되는 소설가였다. 그는 사상도 미성품(未成品), 필치도 미성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열이 있었다. 예각적으로 파악된 인생이 지면 위에 약동하였다. 미숙한 기교 아래는 그래도 인생의 일면을 붙드는 긍지가 있었다. 아직 소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도향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다분의 센티멘털리즘을 발견하는 것은 아까운 가운데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 센티멘털리즘에 지배되지 않을 만한 침착도 그에게는 있었다.”
최근작 :<시를 잊은 나에게> ,<불멸의 문장들> ,<학등 세트 - 전2권> … 총 333종 (모두보기) 소개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노량진리에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해평 윤씨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다. 그의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본명은 ‘대섭(大燮)’이다. 어렸을 때 ‘삼준(三俊)’, ‘삼보(三保)’로도 불렸으며, 필명으로 ‘금강샘’, ‘백랑생(白浪生)’, ‘해풍(海風)’ 등을 썼고, 1926년 이후부터 아호로 ‘훈(熏)’을 썼다.
1915년 심훈은 서울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며, 2년 뒤인 1917년 3월에는 왕족의 누이동생 이해영과 결혼한다. 그리고 그해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재학 중 조선인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한 일본인 수학 선생에게 항의하며, 그 항의의 표시로 백지 답안을 제출해 수학 과목이 낙제되어 유급을 당한다.
1919년 3월 기미년 만세 사건 때 심훈은 남대문 앞에서 가담하며, 3월 5일 경성 헌병대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7월 형 집행을 마치고 풀려나지만 퇴학을 당한다. 심훈은 당시 졸업을 하지 못했지만 2005년 7월 경기고등학교는 심훈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1920년 심훈은 흑석동 본가와 가회동 큰형 집에 머물면서 문학 독서에 매진하며, 이희승에게 한글 맞춤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이듬해 1921년 그는 중국 항저우의 즈장대학(之江大學) 문학원에 입학해 극문학 관련 공부를 하다가 1923년 국내에 들어와 최승일, 이경손, 안석주, 이승만, 김영팔 등과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 활동도 하게 된다. 이 무렵 그는 송영, 이적효, 이호, 박세영, 김홍파 등이 주축이 된 사회주의 문화 단체인 ‘염군사’ 멤버로 동참하며, 1925년에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도 가담하여 활동하게 되는데 무산 계급의 해방 문학보다는 전방위적인 해방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926년 2월 심훈은 동아일보 학예부에서 사회부로 옮긴 후 ‘철필구락부’에 가입하며, ‘철필구락부 사건(급료 인상 투쟁 사건)’으로 해직된다. 그해 11월 그는 동아일보에 연재한 영화 소설 <탈춤>부터 “심훈(沈熏)”이란 새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1927년 2월에는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도일(渡日)하며 일본의 닛카스(日活) 회사에 입사하지만 얼마 있지 않고 5월 귀국해 경성방송국 프로듀서로 입사한다. 그러나 일본 황태자를 전하로 호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개월도 안 되어 퇴사를 당한다. 그리고 7월에는 나운규를 감독으로 <탈춤>을 영화화하며, 10월에는 원작·각색·감독한 영화 <먼동이 틀 때>(원제 <어둠에서 어둠까지>)를 완성해 상영하기도 한다.
1928년 심훈은 조선일보에 입사해 신문 기자직을 이어 가나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아 생계를 외상으로 허덕인다. 이 해 11월 ≪새벗≫에 소년 영화 소설 <기남(奇男)의 모험(冒險)>을 게재한다. 1929년에는 ≪조선일보≫에 소설 <오월비상(五月飛霜)>을 게재하며, <원단잡음(元旦雜吟)>, <거리의 봄>, <어린이날>, <야구(野球)> 등의 시도 여러 편 게재한다.
1930년 심훈은 ≪조선일보≫에 <동방의 애인>을 연재하나 10월 29일 조선총독부 검열로 중단된다. 그리고 그 해 11월 근화여학교(槿花女學校)를 수석으로 졸업한 안정옥(安貞玉)과 약혼하며, 12월 24일에는 결혼을 한다.
1931년 8월 16일부터는 ≪조선일보≫에 <불사조>를 연재하나 12월에 또다시 검열로 중단된다. 1932년에는 조선일보 기자직을 그만두고 양친이 계신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살게 되며, 그해 4월 아들 ‘재건’이 태어난다. 이해 9월 경성세광사에서 ≪심훈 시가집≫을 출판하려 했으나 일제의 검열로 출간이 미뤄진다.
1933년 7월 심훈은 ≪조선중앙일보≫에 소설 ≪영원한 미소≫를 연재하며, 8월에는 기자 생활을 못 잊어 서울로 상경해 조선중앙일보사에 들어가 학예부장을 맡지만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당진으로 다시 내려간다. 그는 1934년 3월 이혼한 부인 이(李)씨를 모델로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며, 여기서 생긴 원고료로 ‘필경사(筆耕舍)’를 짓고, 그 집에서 ≪상록수≫를 완성한다.
1935년 2월 심훈의 장편소설 ≪영원한 미소≫가 한성도서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며, 8월에는 ≪동아일보≫ 창간 15돌 기념 현상공모에 ≪상록수≫가 당선된다. 심훈은 그때 받은 상금 500원 중 일부를 야학당에 후원하며, 이 후원으로 상록학원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해 9월부터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상록수≫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1936년 8월 10일 심훈은 서울로 상경했다가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접하고는 신문 호외의 뒷면에 시 <절필-오오 조선의 남아(男兒)여!>를 써서 ≪중앙≫ 문예지 편집실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해 9월 16일 ≪상록수≫ 출판 문제를 의논하고 ≪심훈 시가집≫ 교정을 보던 중 당시 유행하던 장티푸스에 걸려 경성대학병원에서 치료하다가 36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17일에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사후 1949년 7월 생전에 출간하지 못한 그의 시가집이 중형(仲兄) 심설송(沈雪松)의 도움으로 한성도서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으로 발간된다.
최근작 :<매일, 시 한 잔> ,<[큰글자도서]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바람 세트> ,<태양의 풍속> … 총 47종 (모두보기) 소개 :1908년 5월 11일(음력 4월 12일) 함경북도 학성군(후에 성진으로 편입됨) 학중면 임명동 275번지에서 부친 김병연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의 6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아명은 인손(寅孫), 호는 편석촌(片石村)이다. 등단 초기 간간이 G. W.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바도 있다.
어린 시절 고향의 임명보통학교에 입학, 졸업하고 한동안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적이 있다. 13세에 성진의 농학교(중등과정)에 진학하였으나 1년 수학 직후 서울로 올라와 보성고보에 다니게 된다. 보성 3학년 재학 도중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고향에 내려와 요양을 하게 되는데, 건강을 회복하고 난 후 학교로 복학하지 않고 곧바로 일본 유학을 떠나 당시 도쿄 소재의 메이쿄(名敎)중학[현재는 도쿄 근처 지바(千葉) 현 우라야스(浦安) 시 소재의 도카이(東海)대학 부속 우라야스고교]에 편입, 졸업한다. 졸업 이후 1926년 봄,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문학예술과로 진학하고 1930년 봄에 동 대학을 수료한다.
대학 재학 기간 중 서구 모더니즘의 여러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귀국과 더불어 ≪조선일보≫ 사회부,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 창작과 비평 발표 등의 문필 활동에도 힘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최초의 글은 니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직후인 1930년 4월 27일에서 5월 3일까지 발표한 <오후와 무명작가들?일기첩에서>로 기록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평론으로 분류하기도 하나, 엄밀히 말한다면 문학적 감상을 섞은 단상 형태의 수필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평론은 같은 해인 1930년 7월 24일에서 30일까지 ≪조선일보≫ 지상에 편석촌이라는 필명(호)으로 총 6회에 걸쳐서 연재한 <시와 시인의 개념-근본적 의혹에 대하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후 그는 활발하게 서구 모더니즘에 영향을 입은 시작 활동과 비평 활동을 꾸준히 병행하면서 당대 문단의 중심을 향해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간다. 그런 와중에 1933년 이태준, 정지용 등과 함께 모더니즘 문인들의 친목 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하여 모더니즘문학의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 1935년은 그의 문단 활동이 정점에 이른 시기다. 대표작이기도 한 장시 <기상도>를 잡지 ≪중앙≫과 ≪삼천리≫에 연재하는 한편, 그의 초기 모더니즘시론의 핵심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오전의 시론> 시리즈를 ≪조선일보≫ 지면에 장기간에 걸쳐 의욕적으로 연달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스스로 모험을 감행한다.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학문 연구를 위해 재도일하여 도호쿠(東北)제대 영문과에 입학한 것이다. 도호쿠제대 재학 기간 동안 조선 내 그의 문단 활동은 잠시 주춤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기도 하나, 이 기간 그는 영문학의 새로운 학문적 원리와 이론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학관을 심화하는 한편, 보다 폭넓은 사회 역사적·철학적 토대 위에 종래 자신이 추구했던 모더니즘문학 운동의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1939년 동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함과 함께 조선 문단 전면에 재등장한다. 복귀 후 한동안 문단 활동에 주력하지만, 1940년대로 넘어서자 점차 조여드는 일제의 압박에 회의와 위기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절필 상태로 지내게 된다. 친일 문학인들과 단체의 끈질긴 동참 권유를 뿌리치고 긴 침묵의 기간을 보낸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다시 가족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간의 침묵을 만회라도 하듯 문단과 학계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1950년 6·25동란이 발발된 직후 서울 거리에서 북한 기관원들에게 연행당한다. 그 뒤 북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 내에서 그의 행적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시론집으로 ≪시론≫(1947)과 ≪시의 이해≫(1950)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 등이 있다.
최근작 :<계용묵 단편문학> ,<백치 아다다 (외)> ,<불멸의 문장들> … 총 746종 (모두보기) 소개 :1904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유년시절에 할아버지인 계창전 밑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한학을 배운다. 1914년 삼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19년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1년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만난 김억을 통해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조부가 신학문을 반대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하게 된다. 1922년 4월 다시 조부 몰래 상경해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6월에 강제로 낙향하게 된다.
17∼18세에 이미 ≪조선일보≫에 논문, 감상문, 시 등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욕심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으로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서 대우를 받은 것에 고무된다. 그리하여 1925년 ≪조선문단≫ 제8호에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상환>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하지만 작품 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27년 <최 서방>을 통해 ≪조선문단≫에 재당선된다. 하지만 최서해에 의해 원고가 당선된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1928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야간에는 정칙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1929년에는 장녀 정원이 출생한다. 1931년 집안이 파산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1932년 차녀 도원이 출생한다. 1935년에는 정비석, 석인해, 전몽수, 김우철, 장기제, 장환, 채정근, 허윤석 등과 함께 동인지 ≪해조(海潮)≫의 발간을 협의했으나 무산되었다. 1938년 5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했고, ≪매일신문≫에 친일 수필인 <일장기의 당당한 위풍>(1942)을 발표한다.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되었다가 10월에 석방된다. 12월에 방송국에 다시 취직했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로 사흘 만에 퇴직한다. 징용을 피해 출판 업무를 보다가 ≪조선 전설집≫을 편집해 수만 부를 판매한다.
시골로 낙향했다 해방 이후 상경해서,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종합지 ≪대조(大潮)≫를 창간한다. 1948년 4월에는 김억과 함께 ‘수선사(首善社)’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세운다. 또한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을 갔던 제주도에서 월간 ≪신문화≫를 창간해 3호까지 출간한다. 1954년 서울로 환도하고,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86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는다.
<최 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별을 헨다>(1949) 등 40여 편에 이르는 과작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민이 드러난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1935)는 벙어리 여성 ‘아다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물욕에 물든 사회의 불합리를 지적하면서, 불구적 조건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비극적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난당하는 여성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통해 삶의 비애와 질곡을 담담하게 포착하면서, 물욕에 젖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던진 휴머니스트로 평가된다.
첫 창작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3)를 일제 말기에 출간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과 겸손을 강조하며 부끄러움과 반가움을 토로한다. 해방 후 출간하는 두 번째 단편집 ≪백치 아다다≫(1946)에서는 검열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임과 동시에 38선 이북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세 번째 창작집 ≪별을 헨다≫(1949)에서는 해방 이후 창작된 작품들만을 모아 묶어 내면서 작품 창작의 배경을 토로한다. 수필집으로 ≪상아탑≫(1955)이 있으며, 세계 명작 소개집인 ≪여자의 생태≫(1958)를 출간한다.
최근작 :<한국 단편 소설 : 동백꽃> ,<잎이 푸르러 가시던 님이> ,<한국 대표 단편 소설 : 김유정 편> … 총 1257종 (모두보기) 소개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1등과 입선으로 당선,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동백꽃》.
죽기 열하루 전, 번역으로 “돈 100원을 만들어볼 작정”을 한 유정은 안회남에게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탐정소설 두어 권을 보내줄 것을 편지로 요청한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며. “책상 위에는 ‘겸허(謙虛)’라는 두 글자”를 커다랗게 써 붙여놓은 채. 스물아홉의 피 끓는 삶에의 몸부림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자세 사이에서.
최근작 :<중고등생 필독서 한국 소설 수필 시 국어교과서 수록 작품 읽기 4> ,<홍사용 작품집>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 총 65종 (모두보기) 소개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새별 등이 있지만 주로 ‘노작’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1900년 5월 17일(음력),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아버지 홍철유와 어머니 능성 구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적지는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 492번지다. 석우리(石隅里)는 속칭 ‘돌모루’라 불리는 곳으로, 남양 홍씨의 집성촌이며 현재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 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검거된 바 있다. 1920년 박종화, 정백 등과 순문예 동인지 『문우』를 창간하였고 1922년 문화사를 설립하여 신문학운동을 주도하던 동인지 『백조』를 발간했다.
1923년 토월회에 관여하면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토월회의 문예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신극운동에 뛰어들었다. 1927년 박진·이소연 등과 함께 극단 ‘산유화회’를 결성해 창작희곡 「향토심」을 공연했으며, 1930년 최승일·홍해성 등과 극단 ‘신흥극장’을 조직해 연극운동을 이어나갔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대표되는 신시는 물론 「저승길」, 「봉화가 켜질 때에」 등 민족의 현실에 밀착한 소설을 창작하였고, 「조선은 메나리 나라」와 같은 비평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창작예술론을 전개하며 민요시 창작에도 힘썼다. 검열로 인해 「벙어리굿」 등 일부 작품은 실전되었으나 「흰 젖」, 「출가」 등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편희곡을 창작하였고, 그 외에도 다수의 희곡작품을 창작, 번안, 각색, 연출했다. 매체를 확장해 라디오극을 발표하기도 하고 대중가요의 번역가이자 창작자로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기 말, 희곡 「김옥균전」을 집필하다 원고를 압수당한 후에는 더 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35년을 전후해 서울 자하문 밖 세검정 근처에서 흰 고무신과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다니며 한방치료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한다. 1940년 강경·전주 등지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으며, 이 시기를 전후해 사찰을 순례하고 불경을 연구하였다. 해방 후 근국청년단에 가담해 청년운동을 전개하려 하였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7년 1월 5일, 폐환으로 별세하였다.
최근작 :<불멸의 문장들> ,<[큰글씨책] 100년전의 사랑법>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 총 25종 (모두보기) 소개 :1900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고향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서울로 올라와 《장미촌》 《백조》 동인의 일원이 되었다. 시집 《처녀의 화환》 《내 혼이 불탈 때》 《백공작》, 소설집 《무한애의 금상》 《처녀의 화환》 《영원의 몽상》, 수필집 《인생안내》 등이 있다. 잡지 《조광》 《신인문학》을 편집하는 등 편집자로, 그리고 호머의 시를 비롯한 작품의 번역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수상 :2020년 유심작품상
, 2005년 김수영문학상, 2004년 애지문학상 최근작 :<너를 만나는 시 1 : 내가 네 이름을 부를 때> ,<너를 만나는 시 2 : 서로의 어깨를 빌려 주며> ,<악수> … 총 61종 (모두보기) 소개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 출생. 3남 3녀의 막내. 할아버지까지는 귀족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세기 후반, 강릉 지방의 토호였는데 어떤 변란에 연루돼 충주로 피난을 내려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농부였다.
함민복이 태어난 마을은, 시인의 마을이었다. 신경림을 비롯해, 이름을 알 수 없는 월북시인, 시운동 동인이었던 정한용 시인, 지순 시인 등이 바로 그 마을에서 태어났다.
함민복의 시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름답게 등장할 때는, 그가 유년 시절의 고향을 떠올릴 때이다. 그는 수도전기공고에 입학하면서부터 내내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전기공고에 입학할 때, 보증인을 두 명씩이나 세워, 함부로 그만둘 수도 없었다. 군대 같은 공고 생활을 마치고, 기능사 2급 자격증을 들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취직할 때에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공고에서 결정된 그의 삶은 당분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1987년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 재학 중인 1988년에 계간<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9년에는 <아동문학평론>에 ‘강’으로 동시 추천을 받았다.
1990년 첫 시집 『우울 氏의 一日』을 냈고, 그 후 <21세기-전망> 동인으로 활동할 때 썼던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시편들을 모아 『자본주의의 약속>>이란 두 번째 시집을 발간하였다. 시인 친구들과 금호동에서 함께 살며 썼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를 엮으며 서울을 떠나 강화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1996년 문화관광부 주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첫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발간하였다.
강화도 바닷가 마을에서 어부들과 함께 살며 썼던 시 편들을 정리해 10년 만에 네 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냈고 이 시집으로 제7회<박용래 문학상>, 제24회<김수영 문학상>, 제2회 <애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강화도에 살며 아직 시를 쓰고 있다.
수상 :2021년 박재삼문학상,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바다는 잘 있습니다 (리커버)> ,<꽃이 오고 사람이 온다> … 총 63종 (모두보기) SNS ://twitter.com/kooning11 소개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 「그날엔」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혼자가 혼자에게』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등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 발견문학상,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힘’ 동인이다.
수상 :2022년 유심작품상
, 2021년 정지용문학상, 2015년 박재삼문학상, 2014년 경희문학상, 2007년 노작문학상, 2002년 소월시문학상 최근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2022 제20회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혼자의 넓이> … 총 51종 (모두보기) 소개 :1959년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학과 졸업. 1982년 《시운동》 4집 통해 작품활동 시작. 《문학동네》 편집주간, 〈시사저널〉 기자, 경희사이버대 교수 등 역임.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혼자의 넓이》 《지금 여기가 맨 앞》 등과 산문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수상.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최근작 :<불멸의 문장들> ,<느낌 그게 뭔데, 문장> ,<[큰글씨책] 김교신 수필선집 > … 총 29종 (모두보기) 소개 :1901년 함남 함흥에서 아버지 김염희와 어머니 양신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은 1903년 21세로 요절해 모친의 슬하에서 자랐다. 18세에 함흥농업학교를 마치고, 19세에 도일해 도쿄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서 당시 일본의 저명한 영문학자 사이토 히사부로 밑에서 영어를 수학했다. 22세에 도쿄고등사범학교 영어과에 입학했고, 중도에 박물 지리과로 전과해 27세에 졸업하고 귀국 후 함흥 영생여고와 서울 양정, 제일(경기), 개성, 송도 등에서 1942년 ‘성서조선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15년을 청년 교육에 종사했다. 그중 양정고등보통학교에서 10년간이 가장 길었고, 1940년 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에 재직 중에 불온 인물이라는 낙인으로 6개월 만에 추방되기도 했다.
1920년 4월에 길거리 전도를 받아 홀리니스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같은 해 6월에는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교회 내의 심한 부패와 알력에 회의를 품고 같은 해 11월에 우치무라 간조의 문하에 들어가 7년간 성서 강연에 참석했다. 1927년에는 김교신을 포함한 함석헌, 송두용, 양인성, 류석동, 정상훈 등 우치무라 문하의 신앙 동지 6명이 모여 ≪성서조선≫을 창간했다. 1930년부터는 김교신이 ≪성서조선≫의 주필이 되어 경제적인 면에서부터 원고 작성, 잡지 편집, 배송, 총독부 검열 등 잡지의 제작과 발간, 우편 배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했다. 그래서 김교신과 ≪성서조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가 쓴 대부분의 수필이나 산문이 모두 ≪성서조선≫에 실려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1942년 ≪성서조선≫의 권두언 <조와(弔蛙)>가 발단이 되어 김교신을 비롯한 구독자들이 검거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일로 인해 김교신은 1년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고, 1943년 불기소 처분으로 출옥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김교신은 한동안 신앙을 전수한 형제들을 방문하며 신앙생활을 독려했다. 1944년 함흥 질소 비료 공장에 입사해 3000여 조선인 노동자들의 복지와 교육, 의료, 주택 등의 개선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1945년 공장 노동자의 병을 간호하던 중에 발진티푸스에 전염되어 갑자기 사망했다.
최근작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소오문선(小梧文選)> … 총 6종 (모두보기) 소개 :일제시대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였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사건’ 당시 '동아일보'편집국장으로 재직중이었으나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를 떠나게 되었다.
최근작 :<진짜 나를 찾아라> ,<[큰글씨책] 꽃한테 들어라> ,<꽃한테 들어라> … 총 120종 (모두보기) 소개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후 인간의 선의지를 고뇌하다가 대학 3학년 1학기 때 중퇴하고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당대 고승인 효봉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같은 해 7월 사미계를 받은 뒤, 1959년 3월 통도사에서 승려 자운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어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1975년 10월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살았다. 1994년부터는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5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다가,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다. 강원도 산골의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으며,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입적했다.
수필 창작에도 힘써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담담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정갈하고 맑은 글쓰기로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문명이 높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 소리』, 『산방한담』, 『텅 빈 충만』, 『스승을 찾아서』,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홀로 사는 즐거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 『숫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 『인연 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역서를 출간했다.
최근작 :<[큰글자책]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이어령의 강의> … 총 321종 (모두보기) 소개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능소凌宵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학평론가이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이화여대 교수,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신문사 논설위원,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위원, 초대 문화부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표 저서로 논문·평론 《저항의 문학》 《공간의 기호학》 《한국인 이야기》 《생명이 자본이다》 《시 다시 읽기》,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 수십 권, 일본어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하이쿠로 일본을 읽다》 외,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를 펴냈으며, 희곡과 시나리오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등을 집필했다.
말년에 오랜 지적 탐구를 집대성한 한국문화론, ‘한국인 이야기’(전4권 완간)와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전6권)를 집필해 왔으며, 방대한 유고를 남기고 2022년 2월 26일 별세했다. 《너 어디에서 왔니》 《너 누구니》 《너 어떻게 살래》 《너 어디로 가니》(‘한국인 이야기’), 그리고 《별의 지도》 《땅속의 용이 울 때》(‘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수상 :2000년 대산문학상, 1998년 동인문학상,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큰글자도서] 진홍글씨> ,<[큰글자도서] 이윤기가 건너는 강> ,<느낌 그게 뭔데, 문장> … 총 223종 (모두보기) 소개 :1947년 경상북도 군위에서 태어났다.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로 입선해 등단, 이후 번역을 생업으로 삼았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인간과 상징』 등 25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대한민국 최고의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으로 문단에 돌아온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 장편소설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소설집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출간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또한 '이윤기체'라 칭할 만큼 개성 있고 맛깔나는 문체를 구사하는, 탁월한 문장가로서도 시대를 풍미했다.
청년 시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했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성결교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1991~2000년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종교학·문화인류학 초빙연구원과 객원교수를 지냈다. 번역과 문학에 헌신해온 이력을 인정받아 2005년 순천향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흡인하는 입담과 통섭하는 지성은 대한민국에 신화 열풍을 일으켰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되고 2010년 5권으로 완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30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윤기만의 독특한 해석과 상상력은 오래된 이야기에 의미와 생명을 불어넣고, 나아가 신화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과 저자가 직접 촬영한 유적지와 박물관 사진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이 밖에도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등 다양한 인문 교양서를 펴냈다.
동인문학상(1998, 「숨은 그림 찾기1-직선과 곡선」), 한국번역가상(2000), 대산문학상(2000, 『두물머리』)을 수상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최근작 :<어찌 세월이 가만있었겠는가> ,<부드러움의 미덕> ,<강릉방언자료사전 - 전2권> … 총 31종 (모두보기) 소개 :1938년 강릉 출생
1956~1981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63~1969년 전북대학교 조교수
1969~2003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1976~1977년 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학자
1996년 Maryland대학교 객원학자
1996~1997년 국어학회 회장
1997~1999년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2002~2004년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
2003년 제1회 一石國語學賞수상
2011~2013년 국어심의회 위원장
2014년 제33회 세종문화상 학술상 수상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저서
『嶺東 嶺西의 言語 分化』, 『國語文法論』, 『國語 語文의 諸問題』, 『方言學』, 『國語學槪說』,
『國語 表記法 硏究』, 『사회언어학』, 『한국의 언어』, 『국어문법론 강의』,
『The Korean Language』, 『국어 부사절의 성립』, 『국어 사랑은 나라 사랑: 국어학 논설집』,
『한국어 문법』, 『한국언어지도』, 『꽃길 따라 거니는 우리말 산책』.
수상 :2011년 동리문학상, 2003년 현대불교문학상, 1999년 가톨릭문학상, 1982년 이상문학상, 1972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겨울나그네 2> ,<겨울나그네 1> ,<최인호의 인생 꽃밭> … 총 224종 (모두보기) 소개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3년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청년 문학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술꾼』, 『개미의 탑』, 『견습환자』 등이 있으며, 『길 없는 길』,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상도』, 『내 마음의 풍차』, 『불새』, 『제4의 제국』,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의 인생』 등이 있다. 작고 이후 유고집 『눈물』, 1주기 추모집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세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네 번째의 유고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와 5주기 추모작 『고래사냥』이 재간행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출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아름다운 예술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최근작 :<느낌 그게 뭔데, 문장> ,<다시 읽는 우리 수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총 11종 (모두보기) 소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31세로 요절한 독문학자이자 독일문학 번역가. 1934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의 경기여중고에서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법대 재학 중 독일로 유학, 뮌헨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한 후 귀국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를 맡는 한편, 번역 작업을 했다. 헤르만 헤세, 하인리히 뵐, 에리히 케스트너, 루이제 린저 등의 탁월한 독일문학 작품들이 전혜린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되고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는 소녀 시절부터의 집념, 물질, 인간, 육체에 대한 경시와 정신, 관념, 지식에 대한 숭배, 그 뜨거운 열정과 치열함은 이후 ‘전혜린 신화’로 남게 된다. 저서로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가 있다. 역서로는 프랑소아즈 사강의 『어떤 미소』, 에른스트 슈나벨의 『한 소녀의 걸어온 길』,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파비안』,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W. 막시모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 하인리히 노바크의 『태양병病』등이 있다. 1965년 1월, 항상 인습과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너무 일찍 이 세상과 작별했다.
최근작 :<손봉호 교수의 쉽게 풀어쓴 세계관 특강>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사랑의 9가지 습관> … 총 62종 (모두보기) 소개 :1938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고신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2011년에 나눔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세계밀알연합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서울영동교회, 한영교회, 다니엘새시대교회 협동 설교자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순수하며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 윤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함을 전하는 특별한 사역자이며 윤리학자이며 철학자이며 사회운동가다.
손봉호 교수는 시민운동의 물길을 연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기독교인만이라도 선거 부정을 막아보자는 뜻에서 공명선거기독교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만들었고,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발족에 참여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연합을 출범시켜 군 부재자 투표를 영외에서 하도록 했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중 유세 대신 TV토론을 도입하는 등 선거법 개정에 크게 기여했다. 밀알선교단, 샘물호스피스, 국제기아대책 등의 이사장으로 복지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 유학 온 외국학생들을 돌보는 국제기독학생회(ISF) 이사장을 역임했고 몽골과 미얀마에서 나무심기 운동을 하는 푸른아시아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한국 교회가 해외에 세운 기독교 대학 연합회인 PAUA, 장기려 기념사업회,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회 등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CUP), 《고통받는 인간》(서울대 출판부), 《나는 누구인가》(샘터), 《잠깐 쉬었다가》, 《답 없는 너에게》(홍성사), 《약자 중심의 윤리》(세창출판사), 《어떻게 살 것인가》(공저, 21세기북스),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 9인》(IVP) 등이 있다.
최근작 :<허황옥루트> ,<느낌 그게 뭔데, 문장> ,<금관의 비밀> … 총 10종 (모두보기) 소개 :고고학자.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함. 한국고고학회회장,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종신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1993~1995년 한국고고학회 회장으로 재임시 고속전철 경주시 통과계획 반대운동을 이끌었음.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음. 지은 책으로 『한국인의 발자취』(1985), 『몽골: 바람의 고향, 초원의 말발굽』(공저)(1993), 『김수로왕비 허황옥: 쌍어의 비밀』(1994), 『금관의 비밀: 한국 고대사와 김씨의 원류를 찾아서』(1998), 『Megalithic Cultures in Asia』(1998), 『김수로왕비의 혼인길』(1999),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1-2』(2006) 등과 에세이집 『옥스포드에서 온 편지』(1990) 등이 있음. 백남 학술상,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황조근정훈장을 수상함.
수상 :2019년 심훈문학대상, 2015년 동인문학상, 2012년 이효석문학상, 201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2008년 김유정문학상 최근작 :<돈과 나와 일>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 ,<[큰글자도서] 스마일> … 총 98종 (모두보기) 인터뷰 :<뭐라도 되겠지> 김중혁 인터뷰 - 2011.10.26 소개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다. 소설집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1F/B1 일층, 지하 일층』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장편소설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농담이다』 『딜리터』, 시리즈 소설 『내일은 초인간』,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 『모든 게 노래』 『메이드 인 공장』 『바디무빙』 『무엇이든 쓰게 된다』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 볼까?』 등이 있다.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심훈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2011년 구상문학상, 2002년 미당문학상, 1995년 대산문학상, 1991년 이산문학상, 1968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큰글자도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오늘 하루만이라도> … 총 71종 (모두보기) 소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에서 시 「시월」, 「즐거운 편지」 등으로 등단했으며,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등의 시집을 펴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작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매거진 G 3호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느낌 그게 뭔데, 문장> … 총 38종 (모두보기) 소개 :작가이자 사진가로 미술, 음악과 공연, 건축과 디자인 등 경계를 넘나들며 향유하는 전방위 예술 애호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진 안목과 직접 사용해 본 경험으로 찾은 일상의 유용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생활명품’이라 정의하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을 2002년부터 해 왔다. 「윤광준의 생활명품」 칼럼은 『중앙선데이』에 세 번이나 연재되었고, 열독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소리의 황홀』, 『잘 찍은 사진 한 장』, 『윤광준의 생활명품』, 『심미안 수업』, 『내가 사랑한 공간들』 등이 있다.
수상 :2019년 조정래문학상, 2015년 채만식문학상, 2015년 요산김정한문학상, 2014년 요산김정한문학상, 2012년 무영문학상, 2005년 오영수문학상, 2004년 현대문학상, 2002년 동인문학상, 2001년 이효석문학상, 2000년 동서문학상, 1997년 한국일보문학상 최근작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소설의 첫 만남 1~10 세트 - 전10권> ,<느낌 그게 뭔데, 문장> … 총 147종 (모두보기) 인터뷰 :"기억" 말로, 언어로 기록하고, 붙잡아야 할 <이 인간이 정말> 성석제 인터뷰 - 2013.11.14 소개 :1995년 『문학동네』에 단편소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첫사랑』 『호랑이를 봤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참말로 좋은 날』 『이 인간이 정말』 『ㅤㅁㅢㅤ리도 괴리도 업시』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위풍당당』 『투명인간』 『왕은 안녕하시다』(전2권), 산문집 『소풍』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등이 있다.
최근작 :<느낌 그게 뭔데, 문장> ,<구름에 인생을 그려 본다> ,<우리 시대 대표시 50선 평설> … 총 31종 (모두보기) 소개 :193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현대문학』 추천(1961년)을 받아 평론가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 『옥산봉에 걸린 조각달』 『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 등, 평론집으로 『반세기 한국문학의 조망』 『변화하는 시대 우리 문학 엿보기』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배화여대와 덕성여대 교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문학비평가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고문을 맡고 있다.
[저서]
수필집 : 《내 마지막 노을빛 사랑》, 《노래》, 《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 《옥산봉에 걸린 조각달》, 《남자 뺨을 때리는 여자들》, 《이유식의 문단수첩 엿보기》 등 10여 권
평론집 : 《반세기 한국문학의 조망》, 《한국소설의 위상》, 《흘겨보기와 예쁘게 보기》, 《한국문학의 전망과 새로운 세기》, 《변화하는 시대 우리문학 엿보기》, 《새 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 등 10여 권
기타 저서 등 도합 30여 권
[수상]
현대문학상/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예총예술문화대상/한국문학상
예술평론공헌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등 다수
수상 :2007년 채만식문학상, 2004년 한국문학상, 1989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폭풍의 기억> ,<온조 : 백제를 세우다> ,<할아버지는 네 편이란다> … 총 30종 (모두보기) 소개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1982년 경향신문 장편소설 당선
1999년 현대문학상 수상
2004년 한국문학상 수상
2007년 채만식문학상 수상
2019년 계간문예문학상 당선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이사장직무대행(역임)
한국문인협회 이사^문협60년사편찬위원장(역임)
수상 :2002년 한무숙문학상, 1995년 대산문학상 최근작 :<느낌 그게 뭔데, 문장> ,<문자공화국의 꿈>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세트 110-9 : 아방가르드 - 전5권> … 총 45종 (모두보기) 소개 :1953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1979년 〈연극평론〉에 희곡 〈내가 읽어버린 당나귀〉를 발표하면서 희곡 작가로 등단하여 대한민국문학상, 백상예술상, 영희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1986년 〈소설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구렁이들의 집》, 《목숨의 기억》 등이 있고, 장편소설 《새떼》,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그대를 잃은 날부터》, 《연애, ... 1953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1979년 〈연극평론〉에 희곡 〈내가 읽어버린 당나귀〉를 발표하면서 희곡 작가로 등단하여 대한민국문학상, 백상예술상, 영희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1986년 〈소설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구렁이들의 집》, 《목숨의 기억》 등이 있고, 장편소설 《새떼》,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그대를 잃은 날부터》, 《연애, 하는 날》, 《투기꾼들을 위한 멤버십 트레이닝》 등이 있다.
수상 :2020년 육사시문학상, 2019년 유심작품상
, 2015년 풀꽃문학상, 2012년 소월시문학상, 2002년 김삿갓문학상 최근작 :<고독의 능력> ,<꿈속의 꿈> ,<한 사람이 있었다> … 총 57종 (모두보기) 소개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3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벌초』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섣달 그믐』 『푸른 고집』 『저녁 6시』 『경쾌한 유랑』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슬픔은 어깨로 운다』 『데스밸리에서 죽다』 『즐거운 소란』, 시선집 『오래된 농담』 『길 위의 식사』 『얼굴』, 시평집 『대표 시 대표 평론 1, 2』(공저) 『긍정적인 밥』(공저)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 산문집 『생의 변방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집착으로부터의 도피』 『쉼표처럼 살고 싶다』 『괜히 열심히 살았다』, 작가론 『우리 시대의 시인 신경림을 찾아서』(공저) 등을 출간했다. 윤동주문학대상, 소월시문학상,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풀꽃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유심작품상, 이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수상 :2020년 전미번역상, 2020년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최근작 :<베를린, 달렘의 노래> ,<투명한 것과 없는 것>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 총 47종 (모두보기) 소개 :2001년 『포에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22세기시인작품상, 2014올해의좋은시상, 김춘수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
수상 :2017년 박재삼문학상, 2001년 김수영문학상 최근작 :<주리 작가 그림책 세트 - 전6권> ,<2024 누리과정 의사소통 필독서 세트 - 전4권> ,<이정록 시인 동시 그림책 세트 - 전3권> … 총 96종 (모두보기) 소개 :1964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했습니다.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습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했습니다.
동화책 《노는 물을 바꿔라》, 《아들과 아버지》, 《대단한 단추들》, 《미술왕》, 《십 원짜리 똥탑》과 동시집 《아홉 살은 힘들다》, 《지구의 맛》, 《저 많이 컸죠》, 《콧구멍만 바쁘다》와 그림책 《오리 왕자》, 《나무의 마음》, 《어서 오세요 만리장성입니다》, 《아니야!》, 《황소바람》, 《달팽이 학교》, 《똥방패》가 있습니다. 시집 《그럴 때가 있다》, ... 1964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했습니다.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습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했습니다.
동화책 《노는 물을 바꿔라》, 《아들과 아버지》, 《대단한 단추들》, 《미술왕》, 《십 원짜리 똥탑》과 동시집 《아홉 살은 힘들다》, 《지구의 맛》, 《저 많이 컸죠》, 《콧구멍만 바쁘다》와 그림책 《오리 왕자》, 《나무의 마음》, 《어서 오세요 만리장성입니다》, 《아니야!》, 《황소바람》, 《달팽이 학교》, 《똥방패》가 있습니다. 시집 《그럴 때가 있다》, 《동심언어사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어머니 학교》, 《정말》 등이 있고, 청소년 시집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까짓것》과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인의 서랍》이 있습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한성기문학상, 천상병동심문학상, 풀꽃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최근작 :<불멸의 문장들> ,<느낌 그게 뭔데, 문장>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팟캐스트ㆍ출판기획자ㆍ문장수집자ㆍ음악순례자ㆍ활자중독자
32년간 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진로교사로 살다가 명예퇴직하고 작은 출판사를 내어 책을 만들고, 문장 팟캐스트 【북적북적톡설】 에서 마이크와 함께 놀고 있음. 『느낌 그게 뭔데, 문장』과 『걷다가 떠난 여행』 그리고 『불멸의 문장들』을 펴냈고 <한국 가족 문단사>를 썼음.
[세밀하게] https://blog.naver.com/usimobooks/222253110510
문/장/수/집/가/ 팟캐스터 포충망에 걸린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 앤솔로지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우시모북스 간)이 나왔다.문/장/수/집/가/로 팟캐스트(‘북적북적톡설’)를 운영 중인 출판기획자 윤작가의 ‘포충망’에 걸린 느낌 있는 문장을 찾아서 수집한 가슴을 울리는 45편의 감동 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이 그것이다.
6가지 주제로 묶은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느낌 있는 아름다운 산문 44편과 ‘가족 문단사’.
32년간 중 ․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 글쓰기 NIE R&E 신문반 방송반 활동을 지도하면서 또 진로진학 상담교사로 살았던 윤작가가 – 출판기획자로 제2의 인생을 찾아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 자료 가운데 수집한 1만여 편의 산문 가운데 고르고 골라 엮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에서 만나는 45편의 산문들.
여러 가지 주제로 - (문인들의)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 (신선한 주제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선명하게 그린) 느낌은 그리움처럼 - 아무튼 산문, (여행자의 기록) 길 위의 인생,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문단이면사, 우리말 바로 쓰기, 예술가의 첫사랑 -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기도 한 저자가 인터넷 오디오 방송으로 읽고 싶었던 우리 시대 작가의 문장 44편 – 그리고 ‘가족 문단사’를 실었다.
강경애(소설가) 계용묵(소설가) 고유섭(미술사학자) 기형도(시인) 김교신(교육자․종교인․독립유공자) 김기림(시인) 김남천(소설가․문학비평가) 김병모(고고학자) 김유정(소설가) 김이듬(시인․소설가) 김중혁(소설가) 나도향(소설가) 노자영(시인) 도종환(시인) 백신애(소설가) 법정(수필가․스님) 서명숙(언론인) 설의식(언론인) 성석제(시인․소설가) 손봉호(기독교철학자) 손영목(소설가) 심훈(시인․소설가․영화인․독립운동가) 윤광준(사진작가) 윤작가(출판기획자) 이동순(시인) 이문재(시인) 이병률(시인) 이상(시인․소설가) 이어령(소설가․언론인․문학평론가) 이유식(문학평론가) 이육사(시인․소설가․독립운동가) 이윤기(소설가․번역가) 이익섭(국문학자) 이재무(시인) 이정록(시인) 이태준(소설가) 전혜린(번역가․수필가) 정지용(시인) 최서해(소설가) 최인석(소설가․희곡작가) 최인호(소설가) 하종강(노동운동가) 함민복(시인) 홍사용(시인․희곡작가) 황동규(시인․영문학자)
♯ 1장 : 시처럼 산문
‘책은 빌리는 사람도 빌려 가는 사람도 모두 도적’이라는 금언을 재삼 확인시켜주는 책에 관한 빼어난 글인 이태준 소설가의 <책>,
32세로 너무 빨리 떠났지만 짧은 생애 속에서도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백신애 소설가의 <자수>,
평양냉면에 대하여 이토록 맛있게 쓸 수 있는 있단 말인가! 새삼 감탄하며 입맛을 다시며 읽게 만드는 소설가 김남천의 맛있는 글 <냉면>,
30년대 문단에서 필명 때문에 한때 여류작가 특집판에 이름을 올린 진기한 삽화도 갖고 있는 나도향 시인의 필명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 <별호(別號)>,
시인 소설가 영화배우 영화감독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 심훈이 작고 1년 전에 쓴 서정적인 산문 <7월의 바다>,
《청록파》 시인을 배출한 《문장》지 시 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정지용 시인의 아름다운 글 <산문>,
30년대 《구인회》 멤버이자 모더니즘 문예 이론가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문학평론가 김기림 시인의 산문 <가을의 누이>,
경춘선 청춘열차에 ‘김유정역’이라는 고유명사를 심은 단편소설의 대가 김유정 소설가의 애교 넘치는 글 <길>,
단편 〈부자>, <지하촌>, 장편 『인간문제』 등을 발표하여 30년대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고히 다진 강경애 소설가의 서정적인 산문 <내가 좋아하는 솔>,
본명은 최학송, 아호는 서해 - 제도권 교육 졸업장 학력 없이 독학으로 한국 문학사에 자기 이름을 새긴 카프파 경향문학의 대가 최서해의 애절한 가족 체험 산문 <담요>,
《백조》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고 극단 ‘토월회'에 참여하며 창작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연극 활동에 정열을 바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도 한 전천후 작가 홍사용 시인이 망자가 된 친구 어머님의 장례를 다녀와서 인생무상에 대하여 쓴 성찰의 글 <궂은비>,
문예지 《장미촌》, 《백조》 창간 동인 출신으로 문단에 나와 시인으로 소설가로, 30년대 출판 시장을 말 그대로 쥐고 흔들었던 서정적 서간체 수필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노자영 시인의 <계변정화>,
요즘에는 정치가로 신념을 펼치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책에 대한 오랜 마음의 빚짐을 그리고 있는 <헌책방 순례>,
제2의 고향 강화도에서 글쓰기와 삶을 작품으로 잘 그리고 있는 함민복 시인의 아름다운 산문 <그냥 내버려 둬 옥수수들이 다 알아서 일어나>,
분명 헤어진 것 같았는데 (확실히 정리되었다고 믿었는데, 단지) 그녀의 글씨체 같은 간판을 보자 가슴이 뛰어 허둥대는 영원한 청춘 이병률 시인의 가슴 서늘한 산문 <오늘 비행기는 전면 결항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라면으로 느림을 서술하는 유쾌한 필체, 라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산문 - 이문재 시인의 <누가 라면을 함부로 말하는가>,
당혹스러움을 당당히 느끼게 하는 시와 소설을 남긴 이상의 또 다른 매력은 권태로운(?) 산문 스타일인데 역시나 읽을수록 당기는 맛은 /강/추/! 이상의 <조춘점묘(早春點描),
♯ 2장 : 느낌은 그리움처럼, 아무튼 산문
서슬 퍼런 1942년 일제 강점기 《성서조선》 잡지 권두언에 실어 잡지 폐간 파동을 겪은 김교신의 <조와(弔蛙)>,
올림픽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 기사를 실어 무기 정간을 당한 《D일보》, 쫓겨난 기자들 – 당시 편집국장이던 언론인 설의식이 1926년 일제에 의해 헐리게 된 광화문을 위한 애절한 세레나데. 현대사 100년 100대 명문장으로 뽑혔던 <헐려 짓는 광화문>,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 일파에게 피살되어 전설이 된 ‘선죽교’는 그 사건 5년 전에 이미 ‘선죽교’로 불리고 있었다는 역사적 고증을 살핀 미술사학자 고유섭의 <선죽교 변>,
중국 상해에서 공부할 때나 독립운동을 할 때도 한시도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애장품 – 비취 인장을 독립운동 거사로 떠나는 독립운동사관학교인 조선혁명군 군사정치 간부학교 제1기 동창 윤세주(1901~1942)에게 이별의 정표로 건네고 건넨 후 친구와 분신 같은 도장을 못 잊어하는 이육사 시인의 <연인기(戀印記)>,
제주 올레길을 만든 이야기 - 언론인 서명숙의 <행복한 걷기>,
세상에서 활자로 된 책 2권만을 꼽으라면 불경 『화엄경』과 『어린 왕자』를 꼽으리라는 법정 스님의 <영혼의 모음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 1971년에 발표한 이 아름다운 글이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 ‘어린 왕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어린 왕자’ 감상문의 전설(傳說) - 신호탄이라는 사실을 세상은 아는지 …….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인 이어령 석좌교수의 혜안 깊은 직관적인 안목으로 성찰한 글은 보는(?) 순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산문 <괜찮다 : 관계의 문화>,
번역가로 대한민국 독서계에 두꺼운 팬층을 갖고 있던 이윤기 소설가의 번역하는 자세의 글 <잘 익은말을 찾아서>,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언어 6,000여 개 가운데 대한민국 한글이 당당하게 12위이고 우리나라는 언어 강국이라는 확실한 자부심을 불러주는 국문학자 이익섭 교수의 <한국어의 멸종위기설>
대중소설로 쌓은 인기를 한민족의 진취성과 능동적인 삶을 그린 역사소설 작가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최인호 소설가의 매력적인 산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 3장 : 길 위의 인생, 여행자의 기록
29년의 짧은 시절을 시인으로 살다가 떠난 기형도(1960~1989)시인이 남긴 매력적인 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 : 제3 묘원에서 만난 사람>은, 1988년 8월 2일 홀로 여행을 떠나 대구에서 부산으로 광주로 해서 5.18 민주화 묘지로 발길을 돌려 만난 - 뜨겁게 살다 민주 열사로 역사에 이름을 새긴 박관현(1953~1982) 열사의 묘지를 순례하다가 우연히 만난 이한열 (1966~1987) 열사의 어머니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눈 체험은 애틋한 마음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1960~80년대 문자 해독한 수준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통과의례 같았던 뮌헨 슈바빙 거리를 살았던 수필가 전혜린과 독일어로 발표한 명작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추억담 <이미륵 씨의 무덤을 찾아서>,
1965년 네덜란드로 유학 중에 다닌 유럽 배낭여행에서 동방의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고 설움 받았던 체험을 그린 여행기 손봉호 교수의 <약소국민의 여권>,
1974년 영국 유학 중 음악의 고장 비엔나로 친구와 떠난 김병모 고고학자의 유쾌한 여행기 <비엔나로 가는 밤기차>.
요리사 2명과 이탈리아로 떠난 김중혁 소설가의 맛이(?) 부러운 여행기 <여행의 무게>.
♯ 4장 :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음악에 대해 남다른 안목과 명성을 가진 영문학자 황동규 시인의 음악사랑 <음악이 있는 삶>,
자신만의 귀에 맞는 음악을 찾아 방랑하는 오디오 기기 순례자의 여정을 그린 글 쓰는 사진작가 윤광준의 <오디오에 미친 사람들, 오디오 파일>,
중학생 록밴드 기타리스트 아들과 의기투합하여 떠난 송도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발 체험과 노이즈 풍성한 ‘백 판’ 세대 회고담 하종강 교수의 <딥 퍼플을 만나다>.
1979년 여름 대구의 다운타운가 음악다방 풍경과 영화 《스팅》의 폴 뉴먼을 닮은 친구 DJ의 서울 구로공단 음악 박스 접수기, 성석제 소설가의 <그 음악을 제발 부탁해요, DJ>.
♯ 5장 : 문단 이면사
한국 문단 이면사의 다양한 기록을 풍부하게 창고에 적재했다가 흥미 있는 필체로 그리고 있는 이유식 문학평론가의 <일찍 데뷔한 조숙한 문인들>,
제자 사랑 이야기 많기로 소문난 스승 김동리 소설가에게 추운 정초 날 세배드리러 가려다가 꾀가 나 벌어진 에피소드를 한 폭의 그림처럼 훈훈하고 정감 있게 그리고 있는 손영목 소설가의 <세배객 인명록>,
꼭 그 소설처럼 … 잔잔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때 온몸에 덮여오는 소름과 함께 둔중하게 머리를 압박하여 오는 깨달음, 그런 것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고3 여름방학에 강원도 봉평을 찾아 떠난 최인석 소설가의 <메밀꽃과 A.T.T.>
현대문학사 100년 동안 문인 가운데 ‘모든 장르(?) 노래 부르기’ 최고의 가객(歌客)(?) 겨루기 노래 부르기 내기 – 중앙(?)에서 가왕 J(?)를 물리친 여세로 1980년대 청주로 쳐들어가 대격돌을 벌이는 1박 2일 대회를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는 이동순 시인의 <김지하 시인과의 노래 시합>.
한국 문학사의 저력은 ‘가족’이라는 든든한 ‘언덕’ 덕분이 아닐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통계로 보여주는 – 부부 문인 63팀, 부자(父子) 문인 17팀, 부녀 문인 16팀, 모자 문인 2팀, 모녀 문인 6팀, 형제자매 문인 32팀, 남매 문인 6팀, 장인 장모 사위 6팀, 시아버지 며느리 3팀, 조손(祖孫) 문인 3팀, 동서지간 2팀, 사돈 관계 3팀 – 이들의 명단과 활동 장르 연관성을 찾아 기록한 윤작가의 <가족 문단사>.
문인 5인 대가족은 소설가 박화성, 소설가 안수길, 소설가 김동리, 시인 송동균 집안이 첫 손에 꼽혔고, 문인 4인 가족은 시인 김동환, 소설가 주요섭, 시인 서정주, 시인 박주일, 소설가 한승원, 시인 김종해, 시인 장지홍, 시인 김성수, 시인 윤석산 집안이다.
문인 3인 가족은 시인 조종현 시인 이설주, 소설가 장덕조, 소설가 황순원, 시인 윤동주, 소설가 박경리, 시인 신동엽, 시인 김대규, 소설가 홍성원 가족이다.
가족 안에 ‘한국 문단사’에 기록될 문인이 1인이라도 기쁨인데 그 이상 ‘문인 대가족’ 통계는 작가 본인이나 바라보는 독자에게 모두 영광이고 감탄이다.
- 윤작가 <가족 문단사> 중 -
♯ 6장 : 예술가의 첫사랑
학창 시절 국어 시간, 언제 들어도 귀가 솔깃하던 소설가의 사랑과 시인의 사랑 이야기 - 사랑도 역시 우리 일반(?) 사람 사는 세상처럼 가슴 저리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술가의 첫사랑’ 코너의 절실한 사랑 노래, 시인 이재무의 <혼자서만 꺼내 보는 내 마음 벽장 속의 이야기>,
지나간 인연을 슬프지만 발랄한 언어로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읽고 난 뒤 (추억 같은 사랑이 마음에 밟혀) 며칠 동안 내내 김광석의 동명 노래를 무한 반복 듣게 만들고야 마는 김이듬 시인의 느낌 서늘한 발라드 <잊어야 한다는 이름으로>.
그래도 이 책의 대미는 성공한 사랑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어 이정록 시인의 이쁜 사랑 이야기를 골랐는데,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일 년 전보다 나는 깨끗해져 있었다. 시간과 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자목련을 바라보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입영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입대까지는 석 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 하얀 목련이 피고 짐을 몰랐겠는가. 너와 함께 이 세상을 건너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디밀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목련이 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 이정록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 -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은 외로운 이 시대에 따뜻한 느낌과 가슴 서늘한 감동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밑∣줄∣치∣기∣ 문장수집가의 산문 읽기
문/장/수/집/가/ 윤PD 포충망에 걸린 / 걷다가 멈추게 하는 문장들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 그가 나에게 속삭여 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가기 때문이다. (13쪽)
- 이태준 <책> 중 -
모든 자유를 잃고 그러므로 음식물의 선택의 자유까지를 잃었을 경우에 항상 애끊는 향수 같이 엄습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식욕의 대상은 위선 냉면이다. (19~20쪽)
- 김남천 <냉면> 중 -
남들이 나를 부르기를 순수 시인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스스로 순수시인이라고 의식하고 표명한 적이 없다. …… 그런 것이 지금 와서 순수시인 소리를 듣게 된 내력이다. (35쪽)
- 정지용 <산문> 중 -
문득 내 어머님께서 뚝 꺾어주시던 그 솔가지, 달콤한 물이 쪼르르 흐르던 그 가지가 이것이 아니었던가 싶어지면서 내 입속이 환해진다. (56쪽)
- 강경애 <내가 좋아하는 솔> 중 -
세상에 죽음을 제도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삶을 인도하는 종교가 될 것이다. (65쪽)
- 홍사용 <궂은비> 중 -
먹을 것이 없어 수제비 한 그릇에 눈물겹던 시절을 생각하면 냉장고 안에서 묵을 대로 묵었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음식에 대해 죄스럽기 그지없듯,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한 책들에게도 어딘지 모르게 죄스럽다. (74쪽)
- 도종환 <헌책방 순례> 중 -
봄이 왔다. 가난한 방 안에 왜꼬아리 분(盆) 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튼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 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盆) 안에 놓인 땅 한군데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105쪽)
- 이상 <조춘점묘> 중 -
나는 얼마나 그것이 사랑스럽던지 밤에 잘 때도 그것을 손에 들고 자기도 했고, 그 뒤 어느 지방을 여행할 때도 꼭 그것만은 몸에 지니고 다녔다. (129쪽)
- 이육사 <연인기> 중 -
모든 욕망 버리고 눈 쌓인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수도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그런 은수자(隱修子)가 되고 싶다. (165쪽)
- 최인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중 -
그곳에 배치된 관리관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한국인은 비자 없이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 한참 후에야 겨우 한국인은 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관리관이 “네가 북한(Corée du Nord)에서 왔는지 남한(Corée du Sud)에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고 늘어졌다. (183쪽)
- 손봉호 <약소국민의 여권> 중 -
여행의 무게를 재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온 우리에서 처음 출발할 때의 우리를 빼면 되는 것일까? 여행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난 여행이 무엇인지를 너무 모른다. (200쪽)
- 김중혁 <여행의 무게> 중 -
프랑스 시인 하나가 물었다. 왜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 예컨대 미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시(詩)가 국민한테서 사랑받고 있는가, 소위‘베스트셀러’ 시인이 아니고도 어째서 시집이 많이 팔리고 있는가. (202~203쪽)
- 황동규 <음악이 있는 삶> 중-
“희귀병으로 전염성이 있으며, 드물게 2세에 유전되는 수도 있음으로 죽어도 낫지 않을 병이다. 자각 증상은 발병 후 장시간 경과해야 나타나는데 마이다스마저도 치료비를 감당키 어려운 난치의 고급병이다.” (209쪽)
- 윤광준 <오디오에 미친 사람들, 오디오파일> 중 -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기타의 플랫을 계속 수건으로 닦아가며 연주했고, 드러머가 심벌을 때릴 때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물방울이 마치 폭발하듯 휘날렸다. 그 장관이 펼쳐질 때마다 관객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216쪽)
- 하종강 <딥 퍼플을 만나다> 중 -
다방 전면에 유리로 만들어진 음악 박스가 있고 수천 장의 음반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으며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은 음반을 플레이어에 얹는 DJ가 내 친구였다. 흰 피부에 곱슬머리, 훤칠한 키에 잘생긴 그는 영화 《스팅》의 폴 뉴먼을 빼닮았다. (219쪽)
- 성석제 <제발 부탁해요 DJ> 중 -
그건 그렇다 치고, 공책은 또 뭔가. 설날 저녁에 그날 하루 종일 찾아온 세배객을 차례대로 한 사람 한 사람 기억에서 떠올려 이름을 적었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권해 올리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고 다 드시고서. (234쪽)
- 손영목 <세배객 인명록> 중 -
교문 앞을 통과하는데 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한 여학생이 교문에서 막 한 발을 빼고 있었다. …… 나의 가슴은 금강 상류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소 내가 그토록 흠모해 마지않던 소녀이었기 때문이었다. (265쪽)
- 이재무 <혼자서만 꺼내 보던 내 마음 벽장 속의 이야기> 중 -
다시 누군가를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무치어 뼈가 비칠 것 같은 그 마음의 물결이 일렁일 수 있을는지, 그와 헤어져 미술관 계단에 앉아 쓴 시를 덧붙인다. (270쪽)
- 김이듬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중 -
일 년 전보다 나는 깨끗해져 있었다. 시간과 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자목련을 바라보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입영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입대까지는 석 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 하얀 목련이 피고 짐을 몰랐겠는가. 너와 함께 이 세상을 건너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디밀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목련이 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273쪽)
- 이정록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