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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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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번역’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영화관이다. 도서에도 번역은 존재하지만, 표기는 대체로 ‘옮김’이고 저자 이름의 옆 또는 하단에 적혀 있어 부러 찾아야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만나는 ‘번역’ 글자는 엔딩크레디트 중에서도 맨 마지막, 그것도 크레디트와 다른 위치에 대체로 큰 글자로 튀어나온다. 우리가 찾지 않아도 저절로 눈앞에 나타나는 거다. 물론 상영관 불이 켜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면 말이다.
스크린 속 ‘번역’이란 글자 옆에 자연스럽게 떠올릴 이름 석 자가 있다면 ‘황석희’일 것이다. 그 이름이 뜨는 순간 좌석 곳곳에서 “역시 황석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번역가로서 잘 알려진 황석희가 이번엔 ‘작가 황석희’로, 관객이 아닌 독자를 찾아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구인 ‘번역 황석희’라는 제목의 책으로. 5 추천사 : 언어란 실로 복어에 가깝다.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지만, 작은 무지나 실수로 인해 치명적인 독을 품기도 하는 복어. 잘 다루면 대단한 풍미를 내지만, 잘못 다루면 매우 해롭다. 황석희는 언어를 복어처럼 다룬다.
번역을 ‘외국어 해석을 잘하는 일’이라 여기는 것만큼 큰 오해는 없다. 번역은 우리가 체험해보지 못한 문화권의 시대적 특성, 유머와 온도 그리고 뉘앙스를 그대로 가져다 느낄 수 있게 옮기는 작업이기에 창작에 가깝다. 감독도, 배우도 아닌 어느 번역가의 참여만으로 영화에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가 해체해 다시 우리 언어로 빚어낸 대사 덕분에 영화와 관객 사이에 미묘하게 띄어져 있던 빈칸이 채워진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영화에서 더 나아가, 언어화되지 못해 일상 속을 희뿌옇게 떠다니던 상념과 감정을 명료하게 정리해준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조선일보 2023년 12월 2일자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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