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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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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혼 여성의 일상을 그린 만화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본 독자들에게 그 원조로 불리는 만화가 있다. 바로 ‘만화가들의 만화가’ 타카노 후미코의 『빨래가 마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0, 90년대 일본의 여성 문화를 상징하는 잡지 『하나코』에 1988년 6월부터 1992년 2월까지 연재되었고,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이 만화에는 삼십대 중반인 두 여성이 등장한다. 수수하고 어딘가 여유로운 루키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로 멋 내기를 좋아하고 배려심 많은 엣짱. 두 사람 모두 미혼에 애인도 없다. 그중 주인공 루키의 일상은 인기 여성 잡지 『하나코』에 등장할 법한 ‘세련되고 근사한 삶’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만화책을 읽으며 키득거리는 나의 생활 속에 있을 듯한 루키를 만날 때마다 독자들은 빙그레 미소 짓게 된다. 특히 이 책이 여전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타카노 후미코의 높은 이해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각도의 앵글 구사, 상황에 따른 적절한 줌인과 줌아웃, 주인공 일인칭 시점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시점 전환 등, 이야기를 읽는 것 외에도 만화를 보는 행위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심지어 그녀의 유일한 올컬러 작품인 이 만화에서는 다채로운 파스텔톤의 채색과, 매회 새롭게 바뀌는 등장인물들의 패션까지 마주하게 된다.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 읽는 내내 부럽다고 생각했다. 유연함과 엉뚱함으로 사람 무장해제시키는 루키짱과, 깐깐한 듯하나 실상은 허점투성이인 엣짱의 하루하루가.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보고 ‘만화 내용을 떠올리고 있구나’ 하고 알아주는 사람이라니… 어쩜 이래… 관계에 이름 붙이지 않고, 서로를 속박할 이유도 없고, 그러므로 더더욱 나는 나로서만 존재하면 되는 것. 삼십대 싱글 여성에게 필요한 건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 속 깊은 동성 친구다. :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지금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미스 루키의 표정이 사랑스럽다. 꼼꼼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허당이고 다정하지만 직선적인, 때로는 장난꾸러기 같고 또 가끔은 엄마 같은 그녀의 여러가지 얼굴 중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나도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국일보 2019년 3월 28일자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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