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여성.십대.몸에 관한 다섯 개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작가 김해원, 김혜정, 윤이형, 최상희, 최정화는 단순히 십대들의 성과 사랑, 호기심에 그치는 소재에 안주하지 않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간 무심히 지나쳐온 일상 곳곳의 풍경과 웅크린 내면의 못다 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펼쳐 보인다.
단순히 십대들의 성과 사랑, 호기심에 그치는 소재에 안주하지 않고, 뜨거운 공감과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린 다섯 작품을 읽으면서 ‘비밀’이라는 공통분모를 마주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이었고, 폭력적인 역사의 상처가 훑고 지나갔으며, 사회가 생산해 낸 ‘미’의 편견과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자신의 몸을 당당히 바라볼 권리를 빼앗긴 존재가 바로 십대 여성의 몸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소녀들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했던’ 모습에서 ‘외롭고 슬퍼도, 지지 않고 용기를 내 보려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눈부시다. 무작정 유쾌하고 발랄하게 지내기에는 하루하루 견뎌 내는 일상의 무게가 그 누구라도 가볍지 않은 탓이다. 숱한 차별과 혐오, 상처를 맞닥뜨리면서도 끝내 이 모든 위험을 넘어서기로 한 소녀들이 함께 천천히 걸어가며, 서로의 곁을 지켜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장면들은 읽는 이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나의_ 최상희
눈그림자_ 윤이형
안개_ 김해원
생각을 보는 소녀_ 최정화
52hz_ 김혜정
작품 해설_ 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첫문장
너는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내 사진을 찾아내고 귀엽네, 하고 웃었지. 그래 내 눈에도 좀 귀여워 보이는 것 같아.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야. 실수인지 의도인지, 사진사는 내 얼굴을 수정해 놓았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워하면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얘기를 듣는 건 아주 좋아합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거미마을 까치여관》 《고래 벽화》 《오월의 달리기》 《열일곱 살의 털》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나는 무늬》 등이 있습니다.
여수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비디오가게 남자」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레아』 『모나크 나비』 『18세를 반납합니다』 『영혼박물관』 『수상한 이웃』 『바람의 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장편소설 『라온의 아이들』 『독립명랑소녀』 『달의 문(門)』이 있다. 서라벌문학상신인상, 출판산업진흥원 우수청소년저작상, 송순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랜 시간 이야기의 그늘에서 살아왔고, 왜인지 그 그늘 밖의 삶은 그려지지 않는다.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모든 것을 제자리에》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 《날씨 통제사》, 경장편소설 《메모리 익스체인지》, 장편소설 《없는 사람》 《흰 도시 이야기》, 에세이 《책상 생활자의 요가》 《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같이의 세계》 등을 썼다. 제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최상희 (지은이)의 말
건강하게 잘 살아남아 주길.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작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다치지 않고 살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대부분의 것에 흥미가 없지만 작고 숨겨지고 사라져 가는 것에는 좀 흥미가 있다. 그런 것을 쓰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윤이형 (지은이)의 말
설영도 현진도 아니었지만, 나는 복도에 서서 내가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설영처럼 울어 본 적이 있다. 억울했지만 제대로 항의하지 못했던 나를 위해서 썼다. 누군가를 소유해 망가뜨리고 싶은 마음은 사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건 그저 못난 권력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김해원 (지은이)의 말
내 몸에 새겨져 있는 수많은 주절거림조차 귀 기울인 적이 없었다. 몸을 이야기하자니 긴 세월 끌고 온 내 몸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결국 내 이야기도 낯선 곳으로 가 버렸다. 커다란 바람개비가 부는 곳, 그 바람 속 낯선 몸을 바라본다.
최정화 (지은이)의 말
어딘가에 저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느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어 버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웃어 주느라 혼자 있을 때 웃지 못하는 사람이요. 그 시절의 저와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기 자신을, 자기 몸과 마음을 느끼고 청소년기를 즐겁고 힘차게 맞이하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보냅니다.
김혜정 (지은이)의 말
이 소설은 두 소녀가 만나고 몸의 변화를 감지하는, 자기도 몰랐던 자기와 직면하는 순간들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어떤 것이든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아직 성장하는 중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찬란한 일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