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 : 교육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콩도르세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새로운 사회의 형성을 위해서는 교육을 통한 인간 형성이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교육에 대해 강한 관심을 표출했던 이유는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 형성에 대한 그들의 열망 때문이었다. 현대 공교육도 여전히 그의 시대와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다. 계몽이나 진보와 같은 용어들이 신념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해체의 대상이 되고 있고, 18세기와 같은 낙관적 논의는 기피되고 있지만, 모든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공정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인류의 염원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이상적 교육에 대한 기대도 여전히 높다. 18세기 말 콩도르세가 갈망한 모든 인간의 철저한 계몽을 통한 사회 진보(혹은 개선)는 아직도 유효한 목표일 수 있다. 국가가 인민의 교육을 책임지되 스스로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은 여전히 통찰력이 있으며, 인간 간의 ‘차이’가 사회적 불평등이 아니라 ‘해롭지 않은’ 차이로 나아가기를 기대한 콩도르세의 안목은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송기형 :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자 공공 서비스인 무상 학교 교육에 의해 경제적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는 믿음이 ‘콩도르세 공교육론’의 인식론적 뿌리이다.
공교육으로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공교육을 동시에 위협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콩도르세 공교육론’을 읽으면서 던져야 하는 고통스러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