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교수가 눌러쓴 삶과 죽음의 기록이다. 저자는 17년간 외상외과 의사로서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 고뇌와 사색, 의료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기록해왔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적어 내려간 글은 그동안 '이국종 비망록'으로 일부 언론에 알려졌다. 그 기록이 오랜 시간 갈고 다듬어져 두 권의 책(1권 2002-2013년, 2권 2013-2018)으로 출간됐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대한민국 중증외상 의료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보고서이자, 시스템이 기능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려 애써온 사람들-의료진, 소방대원, 군인 등-의 분투를 날 것 그대로 담아낸 역사적 기록이다.
1권에서는 외상외과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마주친 척박한 의료 현실에 절망하고 미국과 영국의 외상센터에 연수하면서 비로소 국제 표준의 외상센터가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 기준을 세워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생사가 갈리는 위중한 상황에 처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의 통렬한 심정, 늘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육체노동자들의 고단한 삶, 가정폭력, 조직폭력 등 우리네 세상의 다양한 면면이 펼쳐진다.
2권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저자가 몸담은 대학병원이 권역별 외상센터로 지정된 후에도 국제 표준에 훨씬 못 미치는 의료 현실 속에서 고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첫문장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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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이국종이 눌러쓴 17년간의 삶과 죽음
‘골든아워’ 60분에 생사가 달린 목숨들,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피는 도로 위에 뿌려져 스몄다. 구조구급대가 아무리 빨리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도 환자는 살지 못했다.
(……) 병원과 병원을 전전하다 중증외상센터로 오는 환자들의 평균 이송 시간은 245분,
그 사이에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죽어나갔다. 선진국 기준으로 모두 ‘예방 가능한 사망’이었다.”(1권 148쪽)
저자는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짧은 휴식 시간마다 외상외과 의사로서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 병원의 일상과 환자들의 사연, 고뇌와 사색, 의료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록해왔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적어 내려간 글은 그동안 ‘이국종 비망록’으로 일부 언론에 알려졌다. 이 글은 5년간의 집필, 2년 반의 수정과 편집 과정을 거쳐 두 권의 책(1권 2002-2013년, 2권 2013-2018)으로 출간되었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대한민국 중증외상 의료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보고서이자, 시스템이 기능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려 애써온 사람들-의료진, 소방대원, 군인 등-의 분투를 날 것 그대로 담아낸 역사적 기록이다.
외과의사 특유의 시선으로 현장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잘 벼린 칼 같은 문장은 쉽게 쓰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의사로서의 완벽주의는 글쓰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사고 현장과 의료 현장을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절절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고심했고, 한 단어 한 문장 심혈을 기울였다. 책을 출간하기까지 원고에 쓰인 모든 언어가 정말 가장 적확한 표현인지 고민하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지난한 과정이 이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중증외상센터에서 만난 환자들의 삶과 죽음, 의료진의 고된 일상은 물론 그동안 언론에 익히 알려진 석해균 선장 구출, 세월호 참사 등도 현장을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입체적인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의 비망록은 서늘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분투와 참담함이 성마르고 가파른 문장 속에 담겨 있었다. 전후 맥락이 생략된 기록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인과관계에 따라 정리하면서, 제3자는 알 수 없는 정황들을 되도록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독자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골든아워, 60분 안에 환자를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목표로 환자 구조와 이송, 응급수술이 지체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은 전반적인 의료제도, 군/관/민의 협조 체제, 소방당국의 응급구조 체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실제 사례를 통해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도록 편집하면서 꼭 필요한 경우 각주를 넣었다.
1권에서는 외상외과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마주친 척박한 의료 현실에 절망했으나 미국과 영국의 외상센터에 연수하면서 비로소 국제 표준의 외상센터를 경험하고 국내에 도입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생사가 갈리는 위중한 상황에 처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의 통렬한 심정, 늘 위험한 사고에 노출된 육체노동자들, 고단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교통사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는 가정폭력 사례들, 사회의 음지에서 벌어지는 조직폭력 등 우리네 세상의 다양한 면면이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부상당한 석 선장을 생환하고 소생시킨 석 선장 프로젝트의 전말은 물론, 전 국민적 관심 속에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도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을,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담담한 어조로 묘사한다.
2권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저자가 몸담은 대학병원이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후에도 여전히 열악한 현실에서 국제 표준에 맞는 시스템을 안착시키고자 고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중증외상센터 사업이 시간이 흐를수록 원칙과 본질에서 벗어나 복잡한 이해관계에 휘둘리며 표류하는 동안 시스템의 미비를 몸으로 때우던 동료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부상으로 쓰러졌다. 켜켜이 쌓여가던 모순과 부조리는 결국 전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대참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월호, 귀순한 북한군 병사 등 대한민국 중증외상 치료의 현장을 증언하며 저자는 이제 동료들의 희생과 땀과 눈물을 돌아본다. 낙관 없이 여기까지 왔고 희망 없이 나아가고 있지만, 전우처럼 지금껏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기록하고자 밤새워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부상을 감수하며 헬리콥터에 오른 조종사들과 의료진들, 사고 현장에서 죽음과 싸우는 소방대원들, 목숨을 각오하고 국민을 지키는 군인과 경찰들…. 이 책은 바로 그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단 한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분투
“중증외상 환자들이 겪는 처참한 고통과, 죽어가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집중하는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등의 의료인들 및 소방대원들의 분투를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현란한 수사도 생사의 경계를 헤매는 이들의 사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다.”(1권 11쪽)
2002년 이국종은 지도교수의 권유로 외상외과에 발을 내딛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원칙대로라면 환자는 골든아워 60분 안에 중증외상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도착해야 하고, 수술방과 중환자실, 마취과, 혈액은행, 곧바로 수술에 투입할 수 있는 의료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의료 자원이 신속히 투입되어야만 하지만 현실은 원칙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에 국제 표준의 중증외상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한 그의 지난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2003년 미국 UC 샌디에이고 외상센터에서, 2007년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연수하는 한편, 중증외상 치료에 대해 자료를 찾고 연구하면서 선진국의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였다. 2005년 발표한 논문 <중증외상센터 설립 방안>은 국내 중증외상센터 건립안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 2009년 보건복지부는 아주대학교병원을 포함한 수도권 9개 병원을 외상특성화센터로 지정했다. 이국종 교수는 비로소 혼자가 아닌 팀으로 일하게 되었으나 인력과 자원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된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그 사업은 정부 당국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때 외교부 사무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여섯 발의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리기 위해 현지에 가달라는 것이었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1권 222쪽)
그러나 이국종은 선원들을 살리고 자신은 치명상을 입은 석 선장을 타지에서 죽어가게 둘 수 없었다. “해군 출신의 선장이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죽든 살든 그는 고국으로 와야 했다.” 그는 어차피 이대로는 외상센터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자”고 팀원들을 설득했다. 생명을 살려내는 건 의사의 몫이 아니다. 천만다행으로 석 선장이 소생하면서 고사 위기에 처했던 중증외상센터 사업도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2012년 전국 거점 지역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행정적, 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하는가?
우여곡절 끝에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출범했으나 지역 균형을 명분으로 인구수와 의료 역량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센터들에 예산이 쪼개짐으로써 많은 환자를 감당하는 병원이 역차별을 받았고, 예산 지원은 받으면서 막상 환자가 오면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행태도 나타났다.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일을 하면서 늘 적자와 과다 비용으로 지적받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았다. 무조건 환자를 살려야 하는 중증외상 치료에서 비용의 효율성을 따지는 조직과 정부 당국의 추궁에 외상센터 식구들은 자주 움츠러들곤 했다.
대형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은 물론이고 도시에서도 교통 체증 때문에 중증외상 환자가 골든아워 60분 내에 병원에 도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이나 영국처럼 헬리콥터로 환자를 이송하면서 동시에 응급시술을 하는 닥터헬기 도입은 필수적이었다. 소방방재청과의 양해각서로 헬리콥터로 환자를 이송하게 되었으나 관의 내부 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고, 닥터헬기가 정식으로 도입된 이후에도 저자가 속한 병원은 지원 대상이 아니라서 오랫동안 소방헬기를 타야 했다. 환자 구조가 최우선인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헬리콥터 소음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을 더 염려하는 분위기도 그를 탄식하게 했다.
“시스템의 부재와 근거 없는 소문들, 부조리가 난무하는 환경에 맞서 팀원들이 힘겹게 버텨내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본격적인 지원을 끌어들여 우리가 가까스로 만들어온 선진국형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여태껏 해온 일들이
‘똥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도, 까치발로 서서 손으로는 끝까지 하늘을 가리킨 것’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모든 것은 잠겨버릴 것이고, 누가 무엇을 가리켰는지는 알 수 없게 될 것이다.”(1권 9쪽)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그 일이 터졌다. 이국종의 의료팀이 헬리콥터로 출동했지만, 사고 해역에서 나가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는 수많은 헬리콥터들이 비행하지 않고 육상에 착륙해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기름이 떨어져 급유하려고 했으나 ‘행정 절차’가 처리되지 않아 내륙 깊숙이 날아가 급유한다. 하릴없이 병원으로 돌아온 의료팀은 그제야 그 많던 구조헬기들이 육상에서 대기하던 바로 그 때 수백 명이 배를 탈출하지 못한 상태였음을 알게 된다.
이후에도 생사를 넘나드는 외상센터의 일상은 지속되었다. 헬기를 타다 어깨뼈가 부러지고 과로로 한쪽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귀순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북한군 병사를 수술했고, 국민적 관심 속에 중증외상센터 추가 지원이 공론화되었다. 저자가 속한 병원도 닥터헬기를 지원받게 되었고, 정부 당국에서는 여러 지원책을 내놓았다. 굴곡진 우리나라의 역사처럼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도 일 보 전진하는가 싶으면 일 보 후퇴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한 걸음 나아갔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앞이 캄캄해진다. 낙관도 희망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지금의 이 발걸음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앞길을 인도해 주리라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본다.
“그럼에도 우리 팀이 만든 의무기록은 남는다. 우리가 더 이상이 일을 해나가지 못해도,
최근 3년 동안 시행했던 중증외상 환자들에 대한 선진국 수준의 치료는
의무기록으로 화석같이 명징하게 남을 것이다. 이 기록은 열악한 한국 의료계 현실에 굴하지 않고,
순전히 우리 팀원들과 현장의 소방대원들의 피와 땀을 짜내 만들어온 것이다.
이 책은 그 기록의 일환이다. 냉혹한 한국 사회 현실에서 업(業)의 본질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각자가 선 자리를 어떻게든 개선해보려 발버둥 치다 깨져나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흔적이다.”(1권 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