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시인) : 이 시집은 어떤 마을을 꿈꾸게 한다. 이 마을은 세상의 아주 낮은 곳에 있으며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가까스로 살아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한때 폐허였다. 마을은 조용하고 작으며 길이 없으므로 아무 데로 걸을 수 있다. 시끄러운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 사람들은 다시 살아보고 싶어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도 상처는 발생한다.
마을 사람들은 상처에 관한 긴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만으로 밤을 새우기도 한다. 아무도 지루해하지 않아서 마을은 유지된다. 이 시집을 읽으며 나는 방심할 때의 내 표정을 본 사람을 떠올렸다. 나만 아는 내 모습을 들켰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한 번 들키자 두 번 들키는 건 쉬웠다. 그리고 자꾸자꾸 들키고 싶었다. 들킨 김에 시인에게 다 털어놓고 싶었다. 이 상상 속 마을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다 털어놓고 싶은 사람들, 안으로 상처를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이 마을에는 시끄러운 사람이 없다. 시끄러운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 못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다물어지지 않는 입’(「접시는 둥글고 저녁은 비리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지 않는 주저함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냥 바라만 봐야 하는 폐허’(「문 없는 저녁 - Angeles City 2」) 앞에서 ‘이 세계의 피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철 6」) 손을 잡는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꽤 잘 알지만 그만큼 모르며 그래서 서로를 아름답게 방목한다. 그들은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