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단편소설 「골목에 관한 어떤 오마주」로 현진건문학상을, 2017년 장편소설 『칼과 혀』로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권정현 작가의 신작 소설. 어느 날 갑자기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남자가 실연 후에 보이는 기이한 열정과 환상을 다룬 작품이다.
화자가 헤어진 여자 친구의 집 근처에서 우연히 해골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으로 데려가 함께 지내다 처음 자리로 돌려놓기까지가 이야기의 큰 줄기이며, 그 과정에서 사랑과 죽음, 기억과 소멸에 관한 관념과 환상이 경계 없이 펼쳐진다. 때로 아찔할 만큼 냉철하고 때로는 시적인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 인간 존재에 대한 작가의 탐색과 사유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그 흡인력에 한번 빠져들면 쉽사리 책장을 놓지 못한다.
작가는 상원사에서 <십우도>를 보고 이를 소설로 풀어보리라 생각하고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화자가 자신에게 닥친 이별이라는 사태를 통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흡사 구도의 과정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화자는 해골과 함께하며 지난한 이별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 비로소 존재의 소멸을 받아들이고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다. ‘미미상(美味傷)’은 캄캄한 밤 골목에서 마치 조어등처럼 불빛을 반짝이며 손님을 끌어당기는 주점으로, 집착에서 놓여난 화자에게 열린 새로운 시공이자 구원처럼 다가오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