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i, 블루투스 등 현대 무선통신 기술의 근간에는 ‘주파수 도약’이라는 원천기술이 있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지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이 기술을 누가 발명했는지 알게 되면 누구나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그 주인공이 영화배우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 뛰어난 발명가를 그저 아름다운 여배우로만 남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해저 전투에서 연합군이 사용하는 주파수를 찾아내 교란하는 독일군 때문에 연합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 그녀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나의 주파수를 사용하지 않고 주파수를 끊임없이 바꾸어 교신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음악가 조지 앤타일과 함께 구체화시켰고, 마침내 적의 교란 장치로부터 어뢰를 보호하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고안해냈다.
비록 기술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헤디는 기꺼이 미국 정부를 위해 다양한 쇼에 참여해 군인들과 투자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미국은 헤디 라마를 이용해 군사자금을 벌어들이면서도 정작 특허권에 대해서는 외국인이라며 차별하는 등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헤디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것을 이유로 특허권을 빼앗았으며 ‘주파수 도약 기술’은 1급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조용히 방치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헤디 라마와 조지 앤타일의 업적은 뒤늦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이 발명한 ‘주파수 도약 기술’은 무선통신 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Wi-Fi, 블루투스, GPS 등의 원천기술이 되었다. 사장될 뻔한 그들의 기술이 근거리 통신망 구축에 도움을 주면서 무선인터넷, 휴대전화, 인공위성 등이 탄생할 수 있었다.
최근작 :<헤디 라마, 가장 경이로운 배우> 소개 :독학으로 창작을 공부한 열정적인 작가이며, 편집자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했다.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 첫 그래픽 노블 《인공수정 아빠(La Bo?te ? Bulles)》를 2014년에 발표했다. 뒤이어 작업한 《헤디 라마》는 그가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작품이다.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최근작 : … 총 3종 (모두보기) 소개 :장식 미술을 전공하고, 로베르 게디기앙 감독의 세 영화를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했어요. 음악과 영화, 그래픽 예술을 무척 좋아해요. 오디오북 『숲 속의 마르타』의 글과 음악을 공동으로 쓰고 만들었으며, ‘페스트 사운드’ 그룹에서 음악 앨범 녹음 작업을 하고, 정기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삽화도 그리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나온 책으로는 『헤디 라마, 가장 경이로운 배우』,『역사 속 진실과 거짓』이 있어요.
최근작 : … 총 65종 (모두보기) 소개 :서강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학교에서 영어교육(TESOL)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욕구』, 『나를 속이는 뇌, 뇌를 속이는 나』, 『인종차별의 역사』, 『산을 옮긴 아이』, 『이건 또 뭐지?』 등이 있다.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이로운 천재 발명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할리우드 배우가 있었다. 5:5 가르마의 흑발 미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배트맨 시리즈 <캣우먼>의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손과 델릴라>의 델릴라 역으로 유명하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건 쉬워요.
말없이 바보처럼 있으면 되니까요.”
1933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문제작 <엑스터시>를 시작으로 할리우드는 그녀를 그저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배우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굴하지 않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천재 발명가인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누구일까?
Wi-Fi, 블루투스 등 현대 무선통신 기술의 근간에는 ‘주파수 도약’이라는 원천기술이 있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지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이 기술을 누가 발명했는지 알게 되면 누구나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그 주인공이 영화배우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 뛰어난 발명가를 그저 아름다운 여배우로만 남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보석처럼 빛나는 외모로 시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배우
1914년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헤드비히 키슬러는 관련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영화사를 찾아가 일을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야무진 소녀였다. 은행장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찍부터 예술을 접하면서 영화배우를 꿈꿨다.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녀의 작품 <엑스터시(Extase)>는 1930년대 당시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능적인 묘사로 인해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논란에 휩싸이며 독일에서 상영금지처분을 받기도 했지만, 2019년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베니스 클래식 상(VENEZIA CLASSICI AWARD FOR BEST RESTORED FILM)을 수상하며 재조명 받았다.
<엑스터시>를 촬영한 해, 헤드비히는 14살 연상의 군수업체 대표 프리츠 만들과 결혼했는데 그는 결혼생활 내내 그녀의 자유를 구속했다. 그녀의 남편은 배우 활동뿐만 아니라 사생활까지 24시간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창살 없는 황금 감옥에 갇힌 헤드비히는 아버지가 죽고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지자 자유를 찾아 집에서 도망친다.
강압적인 남편의 곁을 떠나 배우로 복귀하기 위해 헤드비히는 MGM사의 영화 제작자 루이스 B. 메이어와 전속 계약을 맺었고, 요절한 할리우드 스타 ‘바버라 라 마’의 이름을 따서 지은 ‘헤디 라마’라는 새 이름으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후 그녀는 <알제(Algiers)>, <붐 타운(Boom Town)>, <미인극장(Ziegfeld Girl)>, <화이트 카고(White Cargo)> 등 많은 영화에서 당대의 슈퍼스타들과 호흡을 맞추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자유와 조국을 사랑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천재 발명가
헤디 라마가 활동하던 194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시기였다. 할리우드의 여왕이 된 헤디 라마는 오스트리아가 처한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고, 자신의 과학적 재능을 발휘해 자유를 되찾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화학수업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발명에 재능이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만을 보았을 뿐 그녀에게 뛰어난 두뇌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여배우가 무슨 발명을 하느냐고 비아냥거렸고, 심지어는 그녀가 참석한 모임에서 누군가 군사기밀을 언급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해저 전투에서 연합군이 사용하는 주파수를 찾아내 교란하는 독일군 때문에 연합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 그녀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나의 주파수를 사용하지 않고 주파수를 끊임없이 바꾸어 교신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음악가 조지 앤타일과 함께 구체화시켰고, 마침내 적의 교란 장치로부터 어뢰를 보호하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특허를 취득하고 연합군을 돕기 위해 이 기술을 미 해군에 제출했으나 정작 당시 해군은 어뢰 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채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자금이 부족하다며 전쟁채권 순회공연에 참여해 돈을 모으도록 헤디를 종용한다.
비록 기술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헤디는 기꺼이 미국 정부를 위해 다양한 쇼에 참여해 군인들과 투자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미국은 헤디 라마를 이용해 군사자금을 벌어들이면서도 정작 특허권에 대해서는 외국인이라며 차별하는 등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헤디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것을 이유로 특허권을 빼앗았으며 ‘주파수 도약 기술’은 1급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조용히 방치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헤디 라마와 조지 앤타일의 업적은 뒤늦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이 발명한 ‘주파수 도약 기술’은 무선통신 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Wi-Fi, 블루투스, GPS 등의 원천기술이 되었다. 사장될 뻔한 그들의 기술이 근거리 통신망 구축에 도움을 주면서 무선인터넷, 휴대전화, 인공위성 등이 탄생할 수 있었다. 1997년에서야 무선통신 기술을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두 사람은 미국의 ‘전자 개척자 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EFF)’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다. 우리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헤디 라마의 과학적 성과가 드디어 모두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2015년에는 구글이 헤디 라마 탄생 101주년을 기념해 헌정 영상을 제작하여 “헤디 라마가 없었다면 구글도 없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헤디 라마의 아름다운 외모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헤디 라마는 누구나 돌아볼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그녀에게는 주로 겉모습에만 치중된 배역만 주어져 대배우로 성장하기에는 아무래도 제약이 따랐다. 30대에 접어들고 배우로서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자 헤디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새로이 감독 겸 제작자로 활동한다. 그러나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었던 그녀의 도전은 현실의 벽에 막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차츰 은막에서 사라져갔다.
여성의 겉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시대에서 한평생 미모로 추앙받는 삶을 살았던 헤디 라마는 자신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항상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성형수술에 집착했고 말년에는 세상일을 피해 홀로 숨어 살았다.
헤디의 아름다운 외모는 그녀에게 축복이었을까, 아니면 저주였을까? 그녀의 미모는 배우로서의 유명세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배역의 한계로 작용했고, 발명가로서의 과학적 재능은 외모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다. 만약 그녀가 21세기 현재를 살아간다면, 그때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는 배우 헤디 라마가 아닌, 발명가 헤디 라마를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대를 앞서간 헤디 라마의 인생은 그 자체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그 아름다움을 넘어 진취적인 삶의 궤적을 남긴 경이로운 발명가 헤디 라마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