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던 작가의 눈에 돌담 너머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가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느 나무들과는 달리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의 무게가 느껴지는 크고 넉넉한 품을 지닌 나무였다. 나무는 하늘 높이 뻗어 있으면서도 땅 가까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에 하얀 종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었다.
작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 그 나무와 바람에 나부끼던 하얀 종이들, 그리고 그 나무가 서 있는 돌담 너머의 공간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 나무가 서 있는 공간을 오가며 드나들기를 2년여, 작가는 자신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제주 이야기를 마침내 그림책으로 담아냈다.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제주를 이야기하다
제주도는 참으로 아름다운 섬입니다.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과 곳곳에 솟아 있는 오름, 푸른 목장을 뛰노는 말들과 탱글탱글한 감귤, 돌하르방,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과 해녀… 등 아름답고 독특한 자연과 문화를 지닌 세계유산이자 신비한 볼거리, 맛있는 먹을거리가 가득한 관광지. 일 년에 몇 번씩 여행으로 찾아왔다 그 모습에 반해 중산간의 작은 마을에서 제주살이를 시작하게 된 작가가 이전에 알고 있던 제주도 ‘제주’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모습,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던 작가의 눈에 돌담 너머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가 들어왔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느 나무들과는 달리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의 무게가 느껴지는 크고 넉넉한 품을 지닌 나무였지요. 나무는 하늘 높이 뻗어 있으면서도 땅 가까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에 하얀 종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었습니다.
작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 그 나무와 바람에 나부끼던 하얀 종이들, 그리고 그 나무가 서 있는 돌담 너머의 공간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 나무가 서 있는 공간을 오가며 드나들기를 2년여, 작가는 자신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제주 이야기를 마침내 그림책으로 담아냈습니다.
[시간을 걷는 이야기] 두 번째 책, 《제주에는 소원나무가 있습니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아름다운 제주, 그러나 우리가 잘 몰랐던 제주 이야기입니다.
팽나무에 걸린 하얀 종이는 소원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경이네 집은 분주합니다. 오늘은 경이네 마을 사람들이 소원나무라고 부르는, 400살이 넘도록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귀한 나무를 만나러 가는 특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곱게 빻은 메밀로 동그랗게 떡을 빚고, 엄마는 바구니에 나물이며 과일이며 갖가지 음식들을 챙깁니다. 준비를 마친 할머니와 엄마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늘은 경이도 함께 따라 나섭니다.
나지막한 돌담 안 커다란 소원나무 아래에 마을 어른들이 한데 모여 저마다 정성스레 준비해 온 음식들을 가득 벌여 놓았습니다. 마치 즐거운 잔치를 벌이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어른은 하얀 종이를 가슴에 품고 무언가를 빌기도 하고, 경이네 할머니는 기도를 끝낸 뒤에 가슴에 안고 있던 하얀 종이를 나뭇가지에 매달았습니다.
하얀 종이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경이도 두 손을 모으고 빌었습니다. 가족과 동네 사람들 모두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몰랐다면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알게 되면 눈길을 끌게 되고, 평범하게 지나쳤을 것들도 알게 되면 특별해집니다. 작가도 그러했습니다. 동네 산책을 하던 작가의 눈에 마을의 오래된 나무와 나뭇가지에 매달린 하얀 종이가 들어왔을 때, 그리고 그 나무가 있는 돌담 너머의 공간이 궁금해졌을 때 이미 그 모든 것이 작가에게는 특별해졌습니다.
하지만 낯선 것과 가까워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제주에 살기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본향당, 본향신, 마을제… 이런 낯선 말들과 처음 보는 의식,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특별한 신앙의 현장을 작가는 돌담 밖에서 마을제를 바라보는 이야기 속 경이처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했던 독자들도 어쩌면 처음에는 돌담 밖에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돌담 밖에 있던 경이는 차츰 돌담 안으로 들어오고, 어느새 동네 어른들 옆으로 다가오더니 마침내는 동네 어른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나무 아래로 벌여 놓은 갖가지 음식들, 하얀 종이를 나뭇가지에 매다는 할머니의 간절한 얼굴, 하얀 종이와 형형색색의 천을 매달고 서 있는 팽나무, 그 나무 아래에 한데 모여서 신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흥을 나누는 제주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이 책을 쓰고 그리는 동안 작가 역시 조금씩 천천히 돌담 안으로, 새롭고 낯선 제주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언젠가는 그림 속 경이처럼 동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날도 올 것이라 믿으며, 지금도 소원나무 앞을 지날 때마다 작가는 켜켜이 쌓인 동네 사람들의 소원에 자신의 소원을 더합니다. 제주 마을 곳곳에서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주는 오래된 나무들이 더 이상 오염되고 훼손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 삶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지켜지기를.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될 또 다른 제주의 모습이 여러분에게도 조금은 특별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