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로점] 서가 단면도
|
전방위 인문학자이자 비평가 겸 소설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리 허스트베트의 작품들 중, 국내에 소개되는 세 번째 책이다.
1975년 영문학자인 에리카와 결혼한 미술사학자 레오 허츠버그는 소호의 한 갤러리에서 무명 화가의 구상회화 한 점을 보고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느껴 그 그림을 사게 된다. 티셔츠 한 장을 몸에 걸치고 손에 장난감 택시를 든 반라의 여인에게 드리워진 관객, 또는 화자의 그림자, 그림의 구도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로퍼를 신은 발목을 그린 이 그림은 빌 웩슬러라는 젊은 화가의 작품으로 '자화상'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그림의 구매로 인해 화가를 만나게 된 레오는 이후 평생에 걸친 우정을 맺게 되고 그림 속의 두 여인과 복잡하게 얽힌 생의 여정을 함께 하며 서로의 삶의 희비극을 나누게 된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과 죽음 그리고 슬픔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시리 허스트베트만의 세련된 언어로 그려낸 <내가 사랑했던 것>은 예술과 사랑에 대한 지적이고 통렬한 고찰인 동시에, 비극이 지나간 후 자기내면을 오래 응시한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 위대한 책이다. 서사적 쾌감이 엄정한 지성과 맞물리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다. 사실, <모던 라이브러리> 문고를 뒤지며 이미 정전이 되어 공고한 명성을 갖게 된 고전들을 읽는다면 찾기 쉽다. 그러나 동시대의 작가와 그런 관계에 빠져든다는 건... 아찔한 느낌이다. 새로운 픽션을 읽는 우리들은 바로 그런 책을 찾는 걸 꿈꾸지 않는가. : 이 책을 진짜 기념비적인 소설로 만든 허스트베트의 특별한 기술은 그녀가 들고 있는 ‘지성’이란 고리를 실제 사람들이 뛰어들어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그녀는 많은 현대 소설가들과 전혀 다른 묘기를 선보인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흥분시키는 작품을 창조했다. : 사상들, 감정들로 충만한 소설을 창작하는 데 있어 그 어떤 이미지도 낭비되지 않고 그 어떤 잉여의 문장도 덧붙여지지 않았다... 허스트베트의 소설은 범주화를 거부하는 소리 없이 경이로운 픽션의 역작이다. : 뉘앙스를 놓치지 않고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에 주목하는 시리 허스트베트의 산문이 성취한 출중한 성과는, 우정이 지성의 강고한 형식이라는 걸 보여준 데 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들은 거의 압도적인 상실감을 인정하지만, 독자의 이해가 이토록 심도 깊기에 그들의 슬픔이 거의 환희처럼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