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가드너의 마음의 과학 시리즈 6권. 하워드 가드너 박사가 중국에서 예술 교육을 직접 경험하면서 중국 교육의 핵심을 집어낸다. 천자문 암송과 서예로 대표되는 중국식 교육은 반복훈련을 통해 빠르게 기초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우선한다. 창의성은 기술을 완벽하게 익힌 후에야 발휘할 수 있는 응용의 영역으로 여기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어린이 스스로가 직접 시도하는 자립성과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고 이 요소들을 창의성의 원천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술 습득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장려한다. 여기서 가드너는 ‘진보적 교육자’로서 자신이 목격한 경직된 중국 교육과 현장의 수업 방식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교육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우열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드너는 이런 미국과 중국의 차이 뒤에 영토 개척을 통해 번영을 이뤘던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미국과 유구한 역사 속에 수많은 변화를 점진적으로 이뤄냈던 중국 역사가 숨어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중국의 반복훈련 전통이 도덕적 수행과 수련의 측면이라는 점 역시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와 역사의 차이로 인해 창의성에 대한 인식과 교육 방식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첫문장
유년을 돌아보면 대개 같은 이미지와 마주치곤 한다. 이동기에 대한 말이 나오면 항상 똑같은 신경망이 먼저 작동하나 보다.
최근작 :<세계의 다중지능교육> ,<하워드 가드너 심리학 총서 6 : 중국 교육, 미국 교육> ,<하워드 가드너 심리학 총서 5 : 미래를 준비하는 5가지 마음> … 총 164종 (모두보기) 소개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이자 인지과학 및 교육심리학의 세계적 석학. 수십 년 동안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인간의 마음과 정신 능력, 학습 과정을 연구, 다중지능 이론을 창시했다. 그의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의 교육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론에 근거한 연구소와 단체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과정을 분석하는 하버드 대학의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 운영위원장으로서, 줄곧 인간의 정신 능력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온 그는 30년 가까이 연구소를 이끌면서 지능과 창조성, 리더십, 교육방법론, 두뇌 개발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존 듀이 이후 최고의 교육학 이론가로 손꼽히고 있는 그는 20여 종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1981년에 맥아더 펠로우십을, 1990년에는 미 교육 분야 최초로 그라베마이어상을, 2000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멘사 재단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좋은 일꾼과 시민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굿워크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선을 위한 지성의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그의 리더십 이론이 비즈니스 커뮤니티에서 각광받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경영사상의 구루’로 뽑히기도 했다. 저서로는 《지능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창조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마음 변화의 과학》, 《미래를 준비하는 5가지 마음》, 《중국 교육, 미국 교육》, 《다중지능》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133종 (모두보기) 소개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서울 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고, 서울 예술 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번역에 종사하며 문학과 예술의 곁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표적인 옮긴 책으로는 《미를 욕보이다》 《무엇이 예술인가》 《빈 서판》 《언어본능》 《아이작 뉴턴》 《건축의 경험》 《빈센트가 사랑한 책》 《지금 다시 계몽》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건축과 기후윤리》 등이 있다. 제45회 백상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한때는 라파엘로처럼 그렸지만,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 평생이 걸렸다.”
-파블로 피카소
창의성은 어떻게 꽃피우는가?
≪창의성의 열쇠를 찾아서≫에서 하워드 가드너는 약전(略傳)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자신의 내밀한 삶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님의 삶과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의 존재, 어린 시절 꼬마 피아니스트로 동네에서 이름을 날렸던 일화, 촌동네 취급을 받았던 스크랜턴에서의 생활 등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시작된 기나긴 학문 여정 역시 소상히 이야기한다. 대학 시절 학문 편력과 심리학을 선택하게 되기까지의 고민, 그리고 위대한 스승들과의 만남, 대학원 진학 후의 부적응 등 자신이 지나온 발자취를 간명하면서도 인상적으로 서술한다. 하워드 가드너 같은 뛰어난 학자도 건너뛸 수 없었던 방황의 흔적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게 그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것은 교육에서 창의성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이다. 하워드 가드너는 회고를 통해 무엇들이 자신의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독일 이민 가정의 전통적 교육 방식, 기존의 권위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던 주변인 의식, 꼬마 피아니스트로 동네 연주회를 돌았던 뛰어난 음악적 재능, 형의 죽음으로 인해 가문의 장손이라는 책임감 등의 요소들이 종합되어 예술가의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 주제에 평생을 천착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당시만 해도 예술은 심리학의 주제로 인정되지도 않았지만 가드너는 고집스럽게 예술가의 마음을 탐구했고, 당시 막 태동했던 인지과학 혁명의 자기장 속에서 인지 발달 연구에 뛰어들었다. 인지 발달 연구를 통해 유아기 어린이의 마음이 예술가의 마음과 매우 유사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이는 다시 창의성과 지능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면서 그의 ‘다중지능’ 이론의 배경이 된다.
이처럼 개인적 삶이 그의 학문적 대장정과 떼려야 뗄 수 없듯이 창의성의 개념과 본질 역시 개인과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가드너의 생각이다. 여기에 ‘다중지능’ 이론을 창안하고 확고한 진보적 교육자를 자처했던 가드너가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목격한 중국의 교육과 수업은 그에게 ‘창의성이 먼저냐, 반복훈련이 먼저냐?’는 물음을 던지게 했다.
교사가 열성적이고 학생이 건강하며 환경이 적절하면 교육은 사실상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진보주의자였던 가드너는 중국 여행을 통해 교육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수정한다. 다른 연구자들이 중국 교육의 외형적 모습에 집중해 서구 교육과의 차이를 강조할 때 가드너는 그 뒤에 있는 중국의 현재 교육 방식을 형성한 유구한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깨닫고 상대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이런 태도를 바탕으로 가드너는, ‘다중지능’ 이론을 통해 지능을 학자들이 설정한 자의적인 고정된 척도와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을 반대한 것처럼, 창의성이라는 개념 역시 각 문화권마다 다를 수 있으며, 창의성을 논의하는 데 개인의 자전적 요소가 빠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창의성의 본질이 개인이 아닌 사회와의 상호작용에 있다는 통찰로 이어지고 나아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지향점에 대한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해주었다.
이러한 경험과 통찰의 결과물이 교육과 창의성에 대한 비교문화연구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가 결합된 ≪창의성의 열쇠를 찾아서≫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다중지능’을 넘어 하워드 가드너의 넓은 학문 세계의 핵심을 이해하고 그가 제시하는 예술과 창의성 더 나아가 교육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더없이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창의성이 먼저인가, 반복훈련이 먼저인가?’
가드너는 미국과 중국의 교육 방식의 차이, 혹은 문화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직접 경험했던 아들 벤저민의 일화를 든다.
한 살 반이었던 벤저민이 호텔 열쇠를 반납함에 넣는 과정을 개입 없이 지켜보며 시행착오 자체를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하워드 부부와 달리, 중국인들은 벤저민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지나가던 중국인 대부분은 벤저민이 열쇠를 반납함에 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가와 벤저민의 손을 잡고 반납함 구멍으로 부드럽게 이끌어주었다. 이 대조적인 태도야말로 중국과 미국의 교육철학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행착오를 통해 겪는 경험을 중시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그런 시행착오가 불필요하고 시간 낭비이며, 실패의 경험이 아이의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과제를 완수할 수 있게 도와주고 다음 단계에 바로 도전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이 극명한 대조를 통해 가드너는 중국 교육의 핵심을 집어낸다. 천자문 암송과 서예로 대표되는 중국식 교육은 반복훈련을 통해 빠르게 기초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우선한다. 창의성은 기술을 완벽하게 익힌 후에야 발휘할 수 있는 응용의 영역으로 여기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어린이 스스로가 직접 시도하는 자립성과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고 이 요소들을 창의성의 원천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술 습득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장려한다.
여기서 가드너는 ‘진보적 교육자’로서 자신이 목격한 경직된 중국 교육과 현장의 수업 방식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교육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우열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드너는 이런 미국과 중국의 차이 뒤에 영토 개척을 통해 번영을 이뤘던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미국과 유구한 역사 속에 수많은 변화를 점진적으로 이뤄냈던 중국 역사가 숨어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중국의 반복훈련 전통이 도덕적 수행과 수련의 측면이라는 점 역시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와 역사의 차이로 인해 창의성에 대한 인식과 교육 방식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쪽 교육의 타당성을 인정한 후 가드너는 전통의 강조에서 발생하는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중국 교육의 특징 중 하나인 ‘능력별 학급 편성’의 경우 가족과 학교, 국가의 야망을 위해 아이의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 희생될 뿐만 아니라 출발은 느리지만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대로 미국의 교육 현장에서는 기초 기술 습득을 소홀히 해서 일정한 성과를 이룩한 학생들의 숫자가 중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가드너는 미국의 교육이 옳고 중국의 수업이 잘못되었다고 결론 내리는 쉬운 선택 대신 실제 현장에서 두 가지 관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창의성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세계와의 소통에서 탄생한다
가드너는 자신의 어린이 인지 발달 연구를 통해 그 접점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아기 어린이들은 뛰어난 창의성을 보여주는 예술가의 마음과 비슷하기 때문에 유아기 시절(가드너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7세)에는 반복훈련을 통한 기술 습득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통한 독창성을 북돋아주는 것이 적절하며, 최대한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부여받아야 한다. 이후 아동 중기(~14세)에는 기술 연마가 중요해진다. 기술 습득이 부족할 경우 좌절감을 느끼거나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청소년기에는 새로운 시도와 독창적 관점 그리고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사회와 소통하며 자신이 가진 재능과 마음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가드너는 이 책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지점에 다다른다. 우리는 보통 창의성을 당연히 개인의 산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가드너는 창의성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좁은 정의를 넘어 타인과 자신이 속한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재정의한다. 다시 말해 가드너에게 창의성은 개인과 작품에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창의성의 분출은 관계성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유행하는 ‘벽돌의 쓰임새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라’류의 창의성 테스트는 결국 창의성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런 식의 창의성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다빈치가 일궈낸 최고의 창의적 성취와 관계가 없고, 우리 시대를 이끄는 예술가나 과학자들의 뛰어난 성취와도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 가드너의 진단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교육을 통해 유아기의 풍부한 상상력과 아동기의 기술 습득을 격려하고, 청소년기에 이 두 가지를 통합시켜 세계와 소통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결과물을 교사와 친구들과 공유하고 비평하면서 사회의 전통과 관습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를 혁신할 수 있는 창의성이라는 꽃을 피운다는 주장이다. 가드너는 “창의성은 무엇인가”라는 익숙한 질문 대신 “창의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며 창의성 교육의 사고 전환을 촉구한다.
가드너가 제시하는 교육은 개인 중심형 교육이다. 모든 학생은 자신이 어떤 지능에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재능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진로 탐색의 기회를 충분히 얻고,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가드너가 제시하는 개인 중심형 교육이 비용 효율이 떨어지고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가드너는 중요한 것은 재원이 아니라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커리큘럼과 준비를 하는 사회의 의지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워드 가드너의 교육에 대한 이런 신념은 한국의 교육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국의 교육 정책과 입시 제도가 끊임없이 바뀌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은 가드너가 80년대 중국에서 목격한 것처럼 학생들을 일렬로 세워 순위를 매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공정하게 순위를 매기는지만 논란이 됐지, 가드너가 제시하는 것처럼 사회가 공유하는 교육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정책의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고, 정권에 따라 교육 수장에 따라 교육 방향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수능으로 대표되는 표준화된 평가에 대해서도 가드너는 매우 부정적이다. 가드너 스스로가 시험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데 최적화된 논리-수학/언어 지능에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표준화된 평가가 놓치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드너는 이런 시험 중심의 단일 평가가 오직 논리-수학/언어 지능에 뛰어난 학생에게만 유리하며 다른 다양한 지능에 재능을 가지고 있는 더 많은 학생들이 받아야 하는 정당한 기회와 평가를 박탈시키고 있다고 본다.
이처럼 가드너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설명하고 나아가 교육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