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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
승리의 역사, 승리의 경험. 그것이 부럽다 - 허지웅 평론가
2015년에 봤기 때문에 울 수 밖에 없었다 - 변영주 감독
깊은 울림! - USA Today
승리의 이야기! - The New York Times
1965년, 그리고 현재를 대표하는 바로 그 영화! - TIME Magazine
숨막힐 정도로 놀랍다! - Seattle Times
완벽한 각본, 감각적 촬영, 촘촘한 편집, 빈틈없는 연기! - Hollywood Reporter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 때문에 <셀마>를 봐야만 한다 - Washington Post
모두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열연! - Boston Globe
마틴 루터 킹처럼, 영화는 당신의 마음과 심장을 완벽히 사로잡는다 - Miami Herald
우리 사회가 지금껏 해왔던 것뿐만 아니라 아직 하지 못했던 것까지 말해주는 영화 - Reelviews
오래도록 회자될 연기와 강렬한 장면들! - Los Angeles Times



Intro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오바마 대통령



About Movie #1

<슬럼독 밀리어네어><노예12년> 제작진! 브래드 피트X오프라 윈프리 공동제작!
전세계영화제 52개 부문 수상, 72개 부문 노미네이트! 로튼토마토지수 99%!

<슬럼독 밀리어네어><노예 12년> 제작진과 브래드 피트, 오프라 윈프리가 공동제작한 영화 <셀마>가 전세계영화제 52개 부문 수상 및 72개 부문 노미네이트, 로튼 토마토 지수 99%를 기록하며 국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셀마>는 1965년, 선거 차별 금지를 위해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을 주도하여 역사를 바꾼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이처럼 50년 전 있었던 역사 속 '셀마 행진'을 영화로 옮겨낼 수 있었던 데에는 <슬럼독 밀리어네어><노예 12년>의 제작진과 브래드 피트, 오프라 윈프리의 제작 참여가 있었다. 20세기 사상 최악의 진압이자 승리의 날을 앞당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셀마 행진'에 영감을 받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제작자 크리스찬 콜슨. 그는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회사 플랜B 엔터테인먼트 소속 <노예 12년>의 제작을 맡은 데드 가드너와 제레미 클레이너와 함께 팀을 이뤄 8년에 걸쳐 시나리오 개발 및 적절한 감독 섭외에 몰두했다. 클레이너는 "단 한 번도 영화 속에서 재현된 적 없는 이야기였기에 겸허한 마음이 들면서 묘하게 흥분이 되었다. 우리는 이 영화가 단순히 지나간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 살아있는 역사가 되길 원했다."는 말로, 이제껏 한 번도 장편극영화의 주인공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셀마 행진을 영화화하는 것에 대한 벅찬 감정과 각오를 표현했다. 여기에 오프라 윈프리의 열정적 지원은 큰 힘으로 작동했다. 그녀는 "내가 이 작품에 참여한 이유는 과거를 되짚어보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코 알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셀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들의 도움 덕분에 킹 목사의 업적도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조명한다."며 제작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또한 그녀는 투표권 보장을 위해 직접 행동했던 애니 리 쿠퍼 역으로 분해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며 찬사를 받았다.
지난 1월 미국에서 개봉해 박스오피스 2위, 로튼 토마토 지수 99%를 기록한 영화 <셀마>.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셀마>로 흑인 여성 최초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실력파 감독임을 입증했고, 영화는 전세계영화제 52개 부문 수상 및 72개 부문 노미네이트를 이뤄냈다. 더욱이 2월에 열린 2015 아카데미 시상식 기립박수의 신화를 일궈낸 아티스트 존 레전드와 커먼이 펼친 'Glory'의 공연은 수상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과 묵직한 이슈들을 전했다.


About Movie #2

"우리에겐 꿈이 있다. 당신에게도 있는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외침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5년, 우리에게 그와 같은 꿈이 있는가

"우리에겐 꿈이 있다. 당신에게도 있는가" 2015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승리의 외침을 전하는 영화 <셀마>는 1965년 마틴 루터 킹과 그와 함께한 평범한 사람들이 걸어간 자유를 위한 여정 '셀마 행진'을 그린 영화로, 현시대의 대한민국 관객들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작년 8월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관의 총격에 흑인 청년이 목숨을 잃었고, 지난 6월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21세의 백인 남성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으며, 한 인터뷰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라는 말로 노예제도 유산의 긴 그림자를 비판했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심각한 인종 차별 문제. 하지만 영화 <셀마>는 인종 차별 이슈만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에바 두버네이 감독이 말하듯, '지금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목숨 건 투쟁을 했던 지역 사회의 목소리' 그리고 '살면서 인생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그 이후 극복해낸 우리들의 보편적 이야기'까지 아우르고 있는 영화 <셀마>. 이 작품이 전하는 용기 있는 목소리와 꿈의 이야기에 대해 해외 유수 매체들은 "깊은 울림! -USA Today" "승리의 이야기! -The New York Times" "1965년, 그리고 현재를 대표하는 바로 그 영화! -TIME Magazine"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 때문에 <셀마>를 봐야만 한다 -Washington Post" "마틴 루터 킹처럼, 영화는 당신의 마음과 심장을 완벽히 사로잡는다 -Miami Herald" "우리 사회가 지금껏 해왔던 것뿐만 아니라 아직 하지 못했던 것까지 말해주는 영화 -Reelviews" "오래도록 회자될 연기와 강렬한 장면들! -Los Angeles Times" 등의 평을 내렸다. 국내에서는 CGV아트하우스 스크린문학전과 씨네21 20주년기념영화제, 제3회 무주산골영화제, 제8회 FILM LIVE: KT&G 상상마당 음악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된 이후 만족도 4.36, 추천도 94%를 기록했고, 허지웅 평론가는 "승리의 역사, 승리의 경험. 그것이 부럽다"는 평을, 변영주 감독은 "2015년에 봤기 때문에 울 수 밖에 없었다"는 평을 전하며 <셀마>가 2015년 대한민국 관객들이 꼭 봐야할 영화임을 표현했다.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셀마 행진의 기념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1965년, 마틴 루터 킹과 셀마의 사람들은 함께 꿈을 꿨고 승리를 이뤄냈다. 7월 23일, 영화 <셀마>가 우리에게 질문한다. 2015년,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꿈이 있는가.


About Movie #3

마틴 루터 킹을 공식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 50년 전 '셀마 행진' 완벽 재현!
감독 에바 두버네이X배우 데이빗 오예로워가 그려낸 인간적인 셀마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을 공식적으로 다룬 최초의 장편극영화 <셀마>는 주목 받는 차세대 감독 에바 두버네이와 배우 데이빗 오예로워의 환상적 호흡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는데, 그가 주인공인 장편극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안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영화가 생겨서 기쁘다."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셀마>를 통해 마틴 루터 킹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했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말콤 X>에 참여했던 훌륭한 제작진과 함께 1965년 셀마에서 있었던 그때 그 모습을 완벽히 재현해냈다.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197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나 UCLA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1999년에 회사를 설립, 영화 마케팅 및 홍보 담당자로 14년간 활동한 그녀는 2008년 다큐멘터리 <디스 이스 더 라이프>로 장편 데뷔를 치른다. 이 영화로 토론토와 로스앤젤레스, 시애틀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비평계의 찬사를 이끌어낸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2010년, 첫번째 장편극영화 <아이 윌 팔로우>의 시나리오, 제작, 연출을 맡아 평단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대한 영화 중 내가 본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14년에는 연출을 맡은 영화 <셀마>를 통해 흑인 여성 최초로 골든글로브 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그녀만의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 받는다. "<셀마>는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대한 어느 지도자의 목소리와 승리를 쟁취한 어느 지역 사회의 목소리,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어느 국가의 목소리. 나는 이 모든 목소리들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말로 영화가 지닌 진실한 의미를 전한 에바 두버네이 감독. 강도 높은 자료 조사는 영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고, 그녀는 여기에서 나아가 이 이야기에 담긴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파고 들어가기 위해 절제된 리얼리즘과 다각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준비했다. 또한, 그녀는 "서로 다른 성별과 인종, 종교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인생에 어려움을 느낀다. 영화는 이것을 극복해내는 이야기이다."라는 말로, 영화 <셀마>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극복, 희망 그리고 꿈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밝혔다. <셀마>로 전세계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그녀는 마블 스튜디오의 <블랙 팬서><캡틴 마블>의 감독직 물망에 오르는 등 할리우드를 이끌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 받고 있다.
마틴 루터 킹 역을 맡은 데이빗 오예로워는 1976년 영국 옥스포드 출생으로 City and Islington College를 다녔다. 당시 선생님에게 배우가 되는 것을 추천 받았던 그는 런던음악연극아카데미 졸업 이후 국립청소년극단을 거쳐 연극, TV,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배우로서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쳤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11) <링컨>(12) <잭 리처>(12)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13) <인터스텔라>(14) 등의 굵직한 작품에서 꾸준히 연기해온 데이빗 오예로워는 2015년 영화 <셀마>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그동안 쌓아온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 받는다. 2007년, <셀마>의 시나리오를 처음 본 그는 마틴 루터 킹 역에 사로 잡혔다. 마틴 루터 킹에 대해 하나하나 공부했고 알면 알수록 그를 연기하고 싶다 열망했다.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에 출연할 당시 오프라 윈프리에게 '마틴 루터 킹을 연기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털어놓은 것이 계기가 되어 7년의 기다림과 노력 끝에 마틴 루터 킹을 연기하게 된 데이빗 오예로워.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그는 정말 진실된 사람이다. 온 마음을 쏟아서 연기한다. 감독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였다."라는 말을 남기며 마틴 루터 킹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오예로워의 모습에 감동했음을 표현했다.


HISTORY NOTE: The beginning of SELMA

1965년 3월 7일,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뉘른베르크의 재판>를 보고 있던 미국인들은 참혹한 폭력의 현장을 담은 실시간 뉴스가 텔레비전 화면에 갑자기 나타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앨라배마 주 셀마 지역에서 모든 미국 국민의 투표권을 동등하게 보장할 것을 촉구하던 시위대를 지역 및 주립 경찰대가 마구 폭행하는 장면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심각한 부상이 잇따른 이 사건은 수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또 분노하게 만든 '20세기 사상 최악의 진압'으로 기록됐다. 또한 이 사건은 한 세기에 걸친 지난한 싸움을 끝내고 승리를 앞당길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1870년, 수정헌법 제 15조의 통과와 함께 미국 흑인(적어도 흑인 남성)은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권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그 후 거의 100년간, 참정권을 획득한 후 몇 십 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그들은 투표할 권리를 거절 당했다. 1960년대 초까지 미국 남부 일부 지역 특히 앨라배마 주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가 버스 안 백인 전용 좌석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한 사건 이래 시민 평등권 보장을 위한 저항 운동 세력은 나날이 거세지고 있었다. 앨라배마 주 전반에 걸쳐 흑인들은 지역 담당자들로부터 반복적으로 유권자 등록을 거부 당해온 상황이었다. 특히 말도 안되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읽기 및 쓰기 능력 검사나 시민 평등권 테스트에 포함시키는 등 애초부터 흑인의 유권자 등록을 허용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과중한 인두세는 빈곤 계층에게 커다란 부담이었고, 유권자로 겨우 등록한 이들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15,000명의 흑인 인구 중 단 130명만이 유권자로 등록된 셀마에서 시민들은 저항하기 시작했고,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가 1963년부터 시민 평등권 운동을 계획했으나 상당한 저항에 부딪혔다. 특히 인종차별주의자인 보안관 짐 클라크는 지역 패거리를 기용해 투표권 운동에 가담한 이들을 겁주고 체포하고 두들겨 패는데 앞장 섰다. 인종차별에 대항해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며 전국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장하고 있던 젊은 목사 마틴 루터 킹은 투표권 운동을 지원하고자 남부기독교연합회의(SCLC 남부의 인종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비폭력 보이콧 운동, 행진 등을 주도하는 목사들로 이루어진 단체)와 함께 1965년 1월, 셀마에 도착한다.
셀마에 오기 전 2년간 마틴 루터 킹은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일례로 워싱턴 D.C.에서는 기념비적인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를 남기게 되는데, 이 연설은 앨라배마 주 버밍햄의 한 교회에서 백인지상주의자들이 벌인 폭탄테러로 4명의 죄없는 소녀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몇 달 전 일이었다. 마틴 루터 킹은 셀마로 오기 몇 달 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미국의 간디'라 불리며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꼽히게 된다.
마틴 루터 킹이 셀마에 도착하자 긴장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거리에 나온 시위대들은 잔악한 폭력 앞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백악관의 존슨 대통령은 자신이 두려워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은 수많은 정치적 책략과 협상 속에서 수 년째 이어온 비폭력 저항 운동이 마침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저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PRODUCTION NOTE

#1. Production Starts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영국인 프로듀서 크리스찬 콜슨(<슬럼독 밀리어네어> 프로듀서)은 폴 웹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회사, 플랜B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데드 가드너와 제레미 클레이너와 함께 팀을 이뤄 8년 동안이나 시나리오 개발 및 적절한 감독 섭외에 몰두하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마틴 루터 킹이 세상에 남긴 발자취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한 남자가 이룬 업적을 치하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시민 평등권 운동이라는 시점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단 한 번도 영화 속에서 재현된 적 없는 이야기였기에 겸허한 마음이 들면서 묘하게 흥분됐다. 우리는 이 영화가 단순히 지나간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 살아있는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 되길 원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서 그동안 말로만 이야기해왔던 프로젝트는 점차 현실이 되어갔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저예산 영화 <미들 오브 노웨어>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전도유망한 에바 두버네이 감독과 자신이 마틴 루터 킹을 연기해야만 한다는 어떤 숙명적 느낌에 끌려 몇 년 동안이나 이 프로젝트를 주시해 온 데이빗 오예로워가 합류했다. 여기에 오프라 윈프리의 열정적인 지원이 더해졌다.

#2. Oprah Winfrey Joins the Film
제작팀은 오프라 윈프리가 합류한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가드너는 말한다. "직접 만나면 그녀가 얼마나 완벽한 사람인지 얼마나 협조적이고 현실적인 훌륭한 파트너인지 알 수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오디션 테이프를 검토하고 전날 촬영 분을 점검하고 컷에 대해 논의하는 제작 전 과정에 참여했다. 그녀는 이 이야기에 개인적으로 커다란 애정을 지니고 있었고 모두에게 그런 마음이 전해졌다. 거기에 애니 리 쿠퍼 역으로 분해 훌륭한 연기까지 보여주었으니 우리에겐 커다란 영광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제작에 참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작품에 참여한 이유는 과거를 되짚어보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코 알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전능한 누군가의 업적을 등에 업고 서 있다'는 표현에 언제나 동의하며 살아왔다. 소저너 트루스(여성 흑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나 패니 루 해머(민권운동가)뿐만 아니라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행진하고 기도하고 믿고 고통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업적을 따라 걸어왔다. 아마 그들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가능하리라고 그 때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셀마>가 단순히 마틴 루터 킹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 영화는 킹 목사가 셀마에서 보낸 3개월을 함께 채워나간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셀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들의 도움 덕분에 킹 목사의 업적도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조명한다. 물론 마틴 루터 킹만큼 카리스마 넘치고 영적으로 충만하며 의욕이 강한 지도자는 다시 없을 테지만, 함께 머물렀던 사람들 없이 그는 결코 운동을 성공으로 이끌 수 없었을 것이다."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오프라 윈프리가 많은 힘이 되었다고 전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언제나 진실한 사람이다. 관대하고 현명하고 재미있고 집중력이 넘치고 똑똑하고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일을 해왔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것 앞에서 눈이 반짝인다. 활기 넘치고 열성적으로 캐릭터에 다가갈 준비가 되어있는 배우이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프로듀서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다."

#3. Director's Story
1965년의 사건들은 앨라배마 출신이었던 두버네이 감독의 가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감독은 '내 아버지는 셀마와 몽고메리 사이에 위치한 하이엔빌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라며, 비록 자란 곳은 컴튼이지만 어린 시절 앨라배마에서 자주 여름 방학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런 기억 때문에 특히 이 이야기에 끌린 것 같다. 예전에는 유색 인종에 대한 현대적인 관점에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과거를 배경으로 한 <셀마>의 이야기가 내 삶에 들어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 사실이 너무 기쁘다."
두버네이 감독은 투표권으로 어떻게 지역 사회가 변화하고 성장했는지 강조하고 싶었다. "이 나라에서 우리가 정의라 부르는 모든 절차는 투표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종종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일례로 배심원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1960년대 앨라배마에 살고 있는 흑인이고, 유권자 등록을 못하도록 위협당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말은 곧 당신은 결코 배심원이 될 수 없고 당신이나 당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나 역시 셀마에 관한 자료 조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투표권이라는 게 어느 정도까지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강도 높은 자료 조사는 영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지만, 감독이 원한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다. 두버네이 감독은 이 이야기에 담긴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파고들어가고 싶었고, 그런 그녀의 접근 방식은 독보적이었다. 절제된 리얼리즘을 통해 사건의 이면에 담긴 숨겨진 관계와 감정에 관객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영화는 사건과 관련된 모든 남녀의 마음 속 그리고 그들이 일궈낸 지역 사회를 깊숙이 파고들어간다. 1964년 버밍햄 교회 폭발 사건부터 1965년 투표권 법안 서명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가는 영화의 시나리오는 FBI의 감시 보고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FBI는 마틴 루터 킹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사소한 순간부터 결정적인 순간까지 무려 1만 7천 장에 이르는 서류가 기록됐다.
두버네이 감독은 당시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고자 했다. "내 방식은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 어떤 만들어낸 이야기보다도 그 당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과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가상의 인물은 없다. 영화 속 모든 등장 인물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했고 투쟁했으며 실제로 이 모든 일들을 해냈다. 너무나도 매력적이라 굳이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했다. 마치 통역사처럼 말이다. 내 역할은 그 시절 사람들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것이었다". 동시에 감독은 이 이야기가 지금의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종종 역사극을 볼 때 맥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셀마>는 다르다. 매우 현대적이고 지금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성별과 인종, 종교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인생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 영화는 이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이야기이다."

#4. Martin Luther King and David Oyelowo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은 매우 복잡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위대하지만 잠재적인 위험을 동반한 정치 게임 한가운데서 많은 선택에 기로에 놓인다. 실수도 하고 투쟁에서 지치기도 하고 가족들이 고통 받는 것을 지켜보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무겁게 그를 짓누르지만, 앨라배마에서 일어난 참혹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마틴 루터 킹은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마틴 루터 킹이라는 전설적 인물을 연기하기를 꺼리는 배우도 있겠지만, 데이빗 오예로워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이 인물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수년간 이 역할을 따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오예로워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태어나 2007년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영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자랐다. 2007년, 그는 폴 웹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킹 목사를 연기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무려 7년 동안이나 함께한 인물이다. 그 오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마틴 루터 킹과 흑인 인권 운동,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다 알아봤다."
오예로워는 체중을 늘리고 머리를 삭발하는 등 친숙한 킹 목사의 이미지에 맞게 신체를 가꾸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틴 루터 킹의 표현력과 전세계에서 따를 자 없는 그만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 기술 등에 더욱 더 몰입하게 됐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내 안의 에너지나 연기력만으로는 도무지 소화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킹 목사처럼 어떤 에너지의 흐름을 타야만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이와 동시에 오예로워는 단순히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킹 목사의 목소리를 연기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음색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굉장히 지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인물을 연기할 때는 단순한 성대모사로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결국 사람들이 스크린으로 영화를 볼 때 마음이 가는 것은 사람 그 자체이지 조각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틴 루터 킹의 모진 고통과 쓰라림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의 영웅적 행보도 물로 중요하지만 약점도 알고 싶었다. 만약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마틴 루터 킹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면, 분명히 나는 내 일을 제대로 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틴 루터 킹은 젊었고 많은 고민을 갖고 있었으며 그를 짓누르는 압박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24시간 내내 FBI 감시 아래 놓여 있었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속적인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FBI는 '미국 국민들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이 악마, 이 변태 같은 짐승'이라는 문구가 쓰여진 협박 편지와 함께 섹스 음성 테이프를 보내 킹 목사에게 심리적인 해를 끼치려 했다. 비록 두려워하긴 했어도 마틴 루터 킹은 결코 단념하지 않았다. 오예로워는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진 1965년에 킹 목사는 고작 36살에 불과했다는 점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두버네이 감독은 마틴 루터 킹을 이해하기 위한 오예로워의 노력에 매우 감동받았다. "그는 정말 진실된 사람이다. 온 마음을 쏟아서 연기한다. 그에게는 깊은 감정의 우물이 있다. 가치관이 확고하지만 타인을 신뢰할 줄도 안다. 정치나 역사에도 관심 있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들이 마치 역사 속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였다." 그녀는 덧붙였다. "오예로워가 처음 연설단 위에 올랐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그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 The Way to SELMA
촬영은 주로 앨라배마 주의 실제 장소에서 이뤄졌다. 두버네이 감독은 당시 투쟁을 지켜봤던 앨라배마 주의 노인들과 함께 실제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촬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부 지역에서 촬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특히 앨라배마로 들어가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위에서 촬영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피흘리고 울부짖고 서로의 손을 꽉 붙잡았었던 그 장소에 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공간에 담긴 DNA에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정신에 보다 가까워져야만 했다." 처음에는 앨라배마 주민들의 반응이 어떨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제작진은 가는 곳마다 환영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앨라배마 주와 셀마의 주민들이 사건을 재현할 수 있도록 촬영을 허락해준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이 지역은 그들에게 소중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촬영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줬다." 프로듀서 데드 가드너는 "그곳에서 촬영할 수 있어서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 "온 동네가 이야기를 뒷받침해줄 시각적 요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위에서의 장면을 촬영할 때도, 킹 목사가 연설했던 연단 위에 데이빗이 올라 연설 장면을 찍을 때도, 랠프 애버내시 고속도로 위를 달릴 때도, 그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Cinematography
<모스트 바이어런트>에 참여한 눈에 띄는 신세대 촬영 감독 브래포드 영은 자연광을 이용해 풍부한 표현을 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셀마>에서 자연광은 이야기의 친밀함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는 마치 마틴 루터 킹과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풍부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그의 촬영은 등장인물 모두가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이었음을 강조해주는 역할을 했고 그의 감수성은 두버네이 감독의 연출 방식, 그리고 이야기의 자연스러움과 잘 맞아 떨어졌다.

Production Design
마크 프라이드버그는 프로덕션 디자이너로는 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 시절 미국사를 전공했고 주 관심사는 시민 평등권 운동이다. 이러한 경력은 영화의 이미지를 그리는데 도움이 됐다. "그 시절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다른 스태프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어떤 정신을 계승하고 미래를 그리는 이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데드 가드너는 마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마크의 이력은 매우 아름답고 다채롭다. 비록 최근에는 <노아><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같은 큰 영화 작업을 주로 했지만 말이다. <셀마> 스태프를 꾸릴 당시 <노예 12년>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였던 아담 슈토크하우젠이 '마크보다 잘 해낼 사람은 없어. 해보면 알게 될거야'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마크에게도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마크는 심지어 할머니로부터 마틴 루터 킹의 싸인이 담긴 책을 받아 소장하고 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작품에 녹여낼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실제로 뛰어나게 역할을 수행해냈다."
프라이드버그는 비록 예산이 부족하더라도 영화의 정서를 디자인에 최대한 반영하고 싶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마치고 이 작품에 합류했는데 예산의 규모가 달랐다. 하지만 큼직큼직하게 가기보다 디테일에 집중할 때 좀더 깊고 풍부한 표현과 장대한 서사극의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 앨라배마에서 펜실베니아로 이동하는 등 영화에는 서로 대비되는 요소들이 참 많다. 나는 관객이 마치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움직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벽에 걸린 물건이라든지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이라든지, 서로 다른 삶의 어떤 질감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중요한 대화가 많이 오고 가는 공간의 질감을 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예를 들어 킹 목사의 자택의 경우 "그 시절의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자아내도록 했다. 그건 코레타의 스타일이기도 했다."고 프라이드버그는 설명했다. 또한 그는 설리반 잭슨 박사의 집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매우 즐거웠다고 전했다. 설리반 박사는 셀마의 치과의사로 그의 아내와 더불어 킹 목사를 비롯한 행진의 주도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임시 본부로 사용하게 한 인물이다. "이 집이야말로 모든 은밀한 논의가 오고 갔던 장소다. 에너지가 넘쳐 흐르면서도 조상들에 대한 경의를 갖게 만드는 그런 장소여야만 했다. 실제 공간은 터키색과 오렌지 같은 다채로운 색상으로 가득했다. 특별히 디자인한 것은 없지만 활기 넘치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원했다." 프라이드버그는 국기를 연상시키는 빨간, 하얀, 파란 색채를 지닌 대통령 집무실과 주지사 월러스의 몽고메리 사무실에서부터 케이저 리의 가난한 농장 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과 씨름해야 했다.

Costume Design
의상 디자이너 루스 카터 또한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차되는 순간에 집중했다. 카터는 두 편의 역사극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와 스파이크 리의 <말콤 X>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녀는 <셀마>에 강력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역사를 말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고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셀마> 같은 경우에는 정말 진실되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했다. 역사를 재현하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비록 고증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카터에게는 굉장히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시나리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버밍햄에 살고 있던 순수한 소녀들로부터 이야기가 뻗어 나온다는 점이었다. 소녀들의 이미지는 장갑을 끼고 에나멜 구두를 신고 교회로 향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직접 드레스를 제작했는데, 주말 학교에 가던 개인적인 경험에 아이들을 잃은 형용할 수 없는 슬픔까지 더해져 의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녔다. 바로 그 순간부터 관객 또한 시위 행진에 동참하게 된다." 또한 카터는 기록된 영상 속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남부 지역의 다채로운 느낌을 가미했다. 제작 기간 내내 두버네이 감독은 매우 열정이 넘치고 협조적이었다고 카터는 말한다. "에바처럼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과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녀는 항상 구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고, 자료 조사에 대해서도 매우 열성적이었다. 실제 지미 리 잭슨의 사진을 찾아내 그녀에게 보여줬는데 받자마자 그 사진을 벽에 붙이더라. 그 사진이 어떤 신호라도 보내주는 것처럼 말이다."
<셀마>에서 의상은 큰 부분이었다. 특히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위해 앨라배마에 모인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의상을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카터의 의상팀은 실제로 킹 목사가 입었던 옷을 바탕으로 데이빗 오예로워를 위한 여러 벌의 핸드메이드 수트를 제작했다. "수트의 패브릭과 디테일에 대한 많은 조사가 필요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종류의 패브릭과 재단 방식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은 이니셜을 새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도 많은 것에 이니셜을 새겼다. 킹 목사는 언제나 샤프하고 잘 차려 입는 편이었다. 클래식하고 스타일리쉬했지만 과하지 않았다. 항상 반짝반짝 빛났던 그의 구두만 봐도 알 수 있다." 카터는 코레타 스콧 킹의 의상에도 신경을 썼다. "새로운 모습의 코레타를 구현하고 싶었고 시대의 아이콘이 아닌 실제 모습에 가까운 여성스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카르멘 에조고 역시 코레타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코레타의 사진을 살펴보면 대부분 그녀는 환하게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유머감각을 의상에도 담아내려 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움과 리더로서의 모습도 담고 싶었다. 시민 평등권 운동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샤넬 수트를 입은 코레타의 모습뿐만 아니라 집에서 편하게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까지 재현했다."

Edmund Pettus Bridge
영화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공간인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를 1965년 모습대로 구현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셀마에서 뻗어나와 앨라배마 강 위에 세워진 이 아치 모양의 대교는 1940년에 만들어졌으며, 남북전쟁 때 연합의 편에 써서 싸웠던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 에드먼드 페투스의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 그 누구도 이곳이 훗날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상징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거의 50년이 지난 2013년에 이르러 투표권을 전 국가적 문제로 승화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이 다리는 역사적 랜드마크로 지정됐다.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을 했던,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이 공간에서의 작업은 긴장되는 일이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프라이드버그는 말한다.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에서 일을 한다는 게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고 매우 신성한 작업처럼 느껴졌다. 첫 촬영 날, 지역 주민들과 보조출연자들이 눈물을 훔치는 것을 봤다. 그들은 1965년에 실제로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순간처럼 느껴졌다." 다리에서의 시퀀스는 모든 이들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우와, 50년 전에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에 셀마 행진 시위대가 서 있었지, 바로 이곳에서 경찰대에게 진압 당했었지, 영적으로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닦아준 이들의 발자취가 다리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오프라 윈프리는 회상한다.
의상 디자이너 카터는 각각의 행진이 점차적으로 밝고 담대해지는 듯한 분위기를 내길 원했다. "미국 국기를 떠올리며 몽고메리에 입성하게 되는 마지막 행진까지 붉은 계열의 의상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3차 행진에 이르러 갑자기 붉은 의상들이 등장하면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제작진이나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카터 역시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위에서의 촬영에 매우 감동받았다. "실제로 시위대가 있다고 상상하며 해낸 세 번의 행진 촬영 모두 엄청난 경험이었지만, '턴 어라운드 화요일'로 알려지는 2차 행진이 특히 그랬다. 너무 더운 날이었지만 그들 모두 몽둥이로 맞아야 했기 때문에 두꺼운 외투를 입었다. 2차 행진에서는 마터 루터 킹과 함께 사람들이 무릎을 꿇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갑자기 사람들에게 달려가 부드러운 것을 깔고 앉을 수 있도록 도왔고 '<셀마>가 정말 특별한 영화구나'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다. 내가 단순히 사람들에게 옷을 입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내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던 것이다."



Character & Cast

마틴 루터 킹
역 데이빗 오예로워
"우리는 진실을 압니다. 자유라는 진실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먼저 간 이들이 말합니다. 더는 안돼! 더는 안돼!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데이빗 오예로워는 1976년 영국 출생으로, 고전적인 무대 연기 공부를 마친 후 영화와 TV, 연극 무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런던음악연극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연극 '더 서플먼트'에서 팔라스구스 왕 역으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영국의 왕을 연기한 최초의 흑인 배우로 기록됐다. 연극 이외에도 그는 2012년 선댄스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영화 <미들 오브 노웨어>,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출연한 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카데미시상식 후보작 <링컨> 등에 꾸준히 출연, 인상적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2015년, 데이빗 오예로워는 영화 <셀마>에서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인 투표권 보장을 용기 있게 외치고 '셀마 행진'을 주도한 마틴 루터 킹의 모습을 완벽 재현한다.

Filmography
<엔드 오브 더 라인>(04) <타임코드>(05) <더 베스트 맨>(05) <디레일드>(05) <아메리칸 블렌드>(06) <라스트 킹>(06) <본 이퀄>(06) <후 두유 러브>(08) <레이지>(09) <스몰 아일랜드>(09)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11) <헬프>(11) <96 미니츠>(11) <레드 테일스>(12) <미들 오브 노웨어>(12)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12) <링컨>(12) <잭 리처>(12)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13) <인터스텔라>(14) <모스트 바이어런트>(14) <셀마>(14) 외

Awards
2015 블랙릴어워즈 최고배우상 <셀마>
2015 센트럴오하이오비평가협회 최고배우상 <셀마>
2015 조지아필름비평가협회 신인상 <셀마>
2015 크리틱스 초이스 텔레비전 어워드 최고배우상 <나이팅게일>
2015 이미지어워즈 영화부문 최고배우상 <셀마>
2014 흑인영화비평가협회 AAFCA 최고배우상 <셀마>
2014 블랙필름크리틱스써클어워즈 최고배우상 <셀마>
2014 이미지어워즈 영화부문 최우수 조연배우상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13 햄튼국제영화제 신인배우상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13 할리우드필름어워즈 스포트라이트상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10 로열텔레비젼소사이어티 <스몰 아일랜드> 외


코레타 스콧 킹 역 카르멘 에조고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건 죽음이야. 나한테는 짙은 안개 같아.
하나만 물어볼게. 날 사랑해?"

영국 런던 출생의 카르멘 에조고는 영화와 텔레비전 양쪽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 2000년 CBS 미니시리즈 <샐리 헤밍즈: 아메리칸 스캔들>에서 주연 샐리 헤밍즈 역을 맡아 인상적 연기를 펼치며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TV시리즈 <보이콧>에서 마틴 루터 킹의 부인 코레타 스콧 킹 역을 맡았던 그녀는 영화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코레타 스콧 킹을 다시 한 번 연기한다. "젊은 시절의 코레타를 연기하고, 10년이 흐른 뒤 더 막중한 책임을 지니게 된 그녀를 연기한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셀마>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라며, 카르멘 에조고는 마틴 루터 킹에게 큰 힘이 되어준 코레타 킹을 연기한 것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Filmography
<메트로>(97) <광끼>(98) <어벤저>(98) <튜브 테일>(99) <샐리 헤밍즈: 아메리칸 스캔들>(00) <사랑의 고통이 사라지다>(00) <보이콧>(01) <마음대로 훔쳐라>(01) <라카와나 블루스>(05) <프라이드 앤 글로리>(08) <어웨이 위 고>(09) <스파클>(12) <알렉스 크로스>(12) <더 퍼지: 거리의 반란>(14) <셀마>(14) 외

Awards
2015 블랙릴어워즈 최고조연배우상 <셀마>
2015 이미지어워즈 최우수조연배우상 <셀마>
2006 블랙릴어워즈 최고조연배우상 <라카와나 블루스> 외


존슨 대통령 역 톰 윌킨슨
"1965년을 생각할 게 아니라 1985년을 생각하란 말이오.
그때가 되면 우린 죽었겠지만 어떻게 기억되고 싶소?"

1948년 영국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톰 윌킨슨은 노팅험 극단, 로열 내셔널 극단,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등에서 연기하며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온 노력파 배우이다. 1970년대부터 TV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그는 1997년 <풀 몬티>에 출연, 영국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01년 영화 <침대에서>에서 선보인 인상적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톰 윌킨슨은 이 역할로 뉴욕비평가협회상 남우주연상 및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다. 이후, <마이클 클레이튼>(07)으로 런던비평가협회상 영국남우조연상을, <존 아담스>(08)로 에미상 남우조연상,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중년의 연기파 배우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Filmography
<웨더비>(85) <페이퍼 마스크>(90) <아버지의 이름으로>(93) <비즈니스 어페어>(94) <프리스트>(94) <센스 앤 센서빌러티>(95) <고스트 앤 다크니스>(96) <풀 몬티>(97) <와일드>(97) <오스카와 루신다>(97) <러시 아워>(98) <셰익스피어 인 러브>(98)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99) <더 갱스터>(00) <침실에서>(01) <이모턴스 오브 비잉 어니스트>(02)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03) <이터널 선샤인>(04) <이프 온리>(04) <배트맨 비긴즈>(05) <라스트 키스>(06) <마이클 클레이튼>(07) <존 아담스>(08) <언피니시드>(10) <음모자>(10) <케네디스>(11)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11)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12) <론 레인저>(13)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14) <셀마>(14) 외

Awards
2009 골든글로브 TV 미니시리즈 부문 최고배우상 <존 아담스>
2007 새틀라이트어워즈 최고조연배우상 <마이클 클레이튼>
2002 인디펜던트스피릿어워즈 최고배우상 <마이클 클레이튼>
2002 런던비평가협회상 최고조연배우상 <마이클 클레이튼>
2001 뉴욕영화비평가협회상 최고배우상 <침실에서>
2001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침실에서>
1998 영국아카데미시상식 최고조연배우상 <풀 몬티> 외



Director

에바 두버네이

"<셀마>는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대한 어느 지도자의 목소리와 승리를 쟁취한 어느 지역 사회의 목소리,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고자 하는 고군분투하는 어느 국가의 목소리. 나는 이 모든 목소리들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한다."

2012년 <미들 오브 노웨어>로 선댄스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은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197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UCLA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1999년, 회사를 설립해 영화 마케팅 및 홍보 담당자로 14년간 활동했다. 이후,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 이스 더 라이프>로 장편 데뷔를 치른 그녀는 토론토와 로스앤젤레스, 시애틀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비평계의 찬사를 받았다. 2010년 시나리오, 제작 그리고 연출을 맡은 첫 장편극영화 <아이 윌 팔로우>에 대해 평단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대한 영화 중 내가 본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내렸다. 2014년,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영화 <셀마>의 연출을 맡아 50년 전 있었던 실제 셀마 행진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내 방식은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 어떤 만들어낸 이야기보다도 실제 일어났던 일들과 실제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역할은 마치 통역사처럼 이야기를 전달하고, 사람들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것이었다." 영화 <셀마>를 통해 흑인 여성 최초로 골든글로브 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전세계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그녀는 마블 스튜디오의 <블랙 팬서><캡틴 마블>의 감독직 물망에 오르며 할리우드를 이끌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 받고 있다.

Filmography
<디스 이스 더 라이프>(08) <아이 윌 팔로우>(10) <미들 오브 노웨어>(12) <셀마>(14) 외

Awards
2015 센트럴오하이오비평가협회 최고감독상, 신인영화아티스트상 <셀마>
2014 블랙릴어워즈 최우수감독상 <셀마>
2014 흑인영화비평가협회 AAFCA 최고감독상 <셀마>
2014 블랙필름크리틱써클어워즈 pioneer award
2014 블랙필름크리틱써클어워즈 최고감독상 <셀마>
2013 블랙릴어워즈 최우수감독상 <미들 오브 노웨어>
2012 블랙필름크리틱써클어워즈 특별언급상 <미들 오브 노웨어>
2012 흑인영화비평가협회 AAFCA best screenplay <미들 오브 노웨어>
2011 흑인영화비평가협회 AAFCA best screenplay <아이 윌 팔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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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행진' 시간순 총정리 (Timeline: The Selma Marches)

1965년 1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과 남부기독교연합회의(SCLC: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는 앨라배마 주, 셀마(Selma, Alabama)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흑인의 유권자 등록을 방해한 결과 오직 2%의 흑인 인구만이 선거 명부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다.

2월 2일: 마틴 루터 킹은 셀마(Selma)에서 참정권 운동을 벌이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체포된다.

2월 5일: 조지 월러스 주지사(Governor George Wallace)는 셀마와 매리언(Marion) 지역에서의 야간집회금지 명령을 내린다.

2월 18일: 주립 경찰대가 앨라배마 주, 매리언에서 시위대를 급습한다. 당시, 비무장 시위 중이었던 26살 교회 집사 지미 리 잭슨(Jimmie Lee Jackson)이 어머니 비올라 잭슨(Viola Jackson)과 할아버지 캐이저 리(Cager Lee)를 보호하려다 총에 맞아 사망한다.

3월 7일: 존 루이스(John Lewis)와 호시아 윌리엄스(Hosea Williams)의 주도로 이루어진 셀마에서 몽고메리(Montgomery)까지의 1차 행진은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Edmund Pettus Bridge) 위에서 주립 경찰대 및 지역 보안관들에 의해 저지 당한다. 이들은 600여 명의 시위대를 최루가스로 공격했으며, 많은 이들이 곤봉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훗날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 불리게 되는 사건이다.

3월 8일: 마틴 루터 킹은 셀마 행진에 종교 지도자들의 참여를 촉구한다.

3월 9일: 마틴 루터 킹이 2차 행진을 주도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위대는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주립 경찰대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스스로 물러서게 된다. 훗날 '턴 어라운드 화요일(Turn Around Tuesday)'이라 불리게 되는 사건이다.

3월 9일: 보스턴에서 활동 중인 제임스 리브(James Reeb) 목사는 행진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곤봉으로 무장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끔찍한 테러를 당한다. 리브 목사는 심각한 두부 손상으로 이틀 후 숨을 거둔다.

3월 15일: 존슨 대통령은 의회 및 미국 시민을 향해 "이 나라에서 동료 미국인들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행동(It is wrong, deadly wrong, to deny any of your fellow Americans the right to vote in this country)"이라며, 즉시 투표권 법안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이 날 존슨 대통령의 연설은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 연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3월 17일: 프랭크 M. 존슨 연방 판사(Federal District Judge Frank M. Johnson)가 셀마 시위대에게 불공정에 항의해 시위할 권리가 있음을 승인하면서, 셀마 시위대는 주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정 소송에서 승리한다.

3월 18일: 앨라배마 법안 통과에 앞서, 조지 월러스 주지사는 이 같은 판결에 반발한다.

3월 20일: 존슨 대통령은 앨라배마 주 방위군을 연방정부 지휘권 하에 놓을 것을 명령한다.

3월 21일: 연방 정부군의 보호 하에 약 4천명의 시위대가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50 마일에 이르는 3차 행진에 가담한다.

3월 25일: 시위대가 몽고메리에 다다랐을 때 그 수는 무려 2만 5천 명에 달했다. 행진을 마친 후 마틴 루터 킹은 앨라배마 주 의회 의사당 계단에서 또 하나의 명연설을 남긴다.

8월 6일: 존슨 대통령이 투표권 법안에 서명한다.


Outro

1965년을 생각할 게 아니라
1985년을 생각하란 말이오.
그때가 되면 우린 죽었겠지만,
어떻게 기억되고 싶소?
Disc - 1 장

상영시간 - 총 146분(본편 128분, 부가영상 18분)
자막 - 한국어
화면비율 - 2.35:1 ANAMORPHIC WIDESCREEN
오디오 - 영어 Dolby Digital 5.1
지역코드 - 3
"우리에겐 꿈이 있다. 당신에게도 있는가?"
1965년, 투표권 투쟁을 위해 셀마 행진을 계획한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


1964년, 노벨위원회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 한편 앨라배마 주 셀마에서는 흑인 투표권에 대한 방해가 극심해져 가고 마틴 루터 킹은 존슨 대통령을 찾아가 자유로운 투표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한다.
1965년, 마틴 루터 킹은 투표권 운동의 도화선이 될 셀마로 찾아가 행진을 계획하지만 경찰의 탄압으로 감옥에 수감되고 마는데…

“먼저 간 이들이 말합니다. 더는 안 돼!”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역사를 바꾼 위대한 행진이 이제 곧 시작된다.
☞ 글로리 뮤직비디오 (4분 41초)
☞ 마팅 루터 킹 연설 영상 (3분 24초)
☞ 글로리 비하인드 뮤비영상 (6분 45초)
☞ 제작진,배우인터뷰 (1분 34초)
☞ 예고편 (1분 2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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