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용 시집. 72편의 시편을 4부로 나누어 구성했다. 1부 '봄날의 옥상', 2부 '괄호의 의미', 3부 '물컹한 설계도', 4부 '견고한 내막'.
1부 : 봄날의 옥상
2부 : 괄호의 의미
3부 : 물컹한 설계도
4부 : 견고한 내막
전선용 (지은이)의 말
이제야 사람 말을 한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그것들을 옮겨 적는다.
사람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사실과 또 사람
만큼 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어서 사람을 찾아
손을 내밀기도 주먹을 쥐기도 한다.
광야에서 진심을 외치기 위해 또 한 채의 집을
짓고 허름한 나를 부순다.
환승의 의미를 ‘이제야 사람 말을 한다.’라고 표현했다. 사람이었으나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하지도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보는 것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다는 것은 시인에겐 무슨 뜻일까. 삶의 변곡점에서 바라본 세상은 안개꽃처럼 은은했지만, 안개처럼 희미했다. 살아온 내력이 부끄럽고 앞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 절벽에서 만유인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었다.
암울한 시간이 동굴처럼 막막해서
시계부속이 오류를 일으키며 째깍거립니다
나는 가고 너는 오는 다리 위에서
고독이야말로 죽기 좋은 명분
가장 어둡고 밝은 교차로 0시
도시가 벚꽃처럼 집니다
밝아올 아침은 흐드러진 꽃 따위와 상관없어
어제까지 막장 드라마를 보았고
클라이맥스가 뻔해서 슬프게 웃었습니다
소주 둬 병을 들이켠 민낯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기척 없이 다가온 호명에 고개를 숙입니다
안온한 죽음을 부르는 꽃비가 계절을 덮을 때
짐승이던 내가
비로소 사람 말을 합니다
나는 이제,
순탄할 뿐입니다.
졸시「환승」전문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기독교적으로는 회개를 의미한다. 회개는 반성의 의미와 다르다. 근본이 바뀌는 획기적인 일이므로 충격적일 수도 있다. 세속에 물들어 물질의 권력을 믿었던 과시욕은 한낱 허세였다는 것을 알기까지40년을 겉돌다가 현실에 안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