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삼일 운동이 있었던 1919년 3월에 처음 한국을 방문해 1940년까지 여러 차례 다시 찾으며 한국을 그림에 담았다. <초정리 편지>의 작가 배유안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그림 60점에 담긴 한국의 다양한 풍습과 문화와 사람을 읽어 냈다. 어린이와 함께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듯 편안한 문체와 그림 구석구석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직조, 풍성한 이야기로 만드는 솜씨가 돋보인다.
키스가 그린 한국 사람은 왜소하고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다. 식민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당당하게 현실을 이겨내고 전통을 지켜나간다. 평생 집안일에 시달리면서도 허리를 쉽게 굽히지 않는 아주머니들과 눈빛이 맑고 주저함이 없는 조선의 여인들은 특히 인상 깊다.
광화문, 흥인지문, 수원 화홍문 등 문화 유적이 훼손되기 전의 원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낸 그림들은 훌륭한 고증 자료이기도 하다. 평양, 원산, 함흥 등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림을 통해 보는 것도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고 살아있는 역사 공부가 될 것이다.
한편, 이 책에 실린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들을 모아 공개한 사람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송영달 명예교수다. 송영달 교수는 엘리자베스 키스와 그 언니가 1946년에 펴낸 <올드 코리아 Old Korea>를 번역해 2006년 도서출판 책과함께에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를 펴낸 바 있다.
머리말 - 내가 만난 엘리자베스 키스와 일제 시대 사람들
화가 소개 - 영국에서 온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1. 정겨운 사람들
다정한 오누이|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엄마 손|세 남매|꼬마 도령|장옷을 입은 여인|독립운동가의 아내|바느질하는 여인|맷돌로 곡식 갈기|빨래하고 오는 새댁|한 땀 한 땀 수놓기|아주머니들의 아침 수다|스님이었던 할머니|필동이 아저씨|검정 고무신 신고 담배 한 모금|원산에서 만난 농부|우산 모자를 쓴 할아버지
2. 마음에 남는 풍속들
연날리기|장기 두기|널뛰기|설날 나들이|고운 새색시|결혼 잔치|결혼식에 온 손님|가마 타고 시댁으로 가는 새색시|어느 여름날 대청마루|골목길 풍경|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돗자리 가게|나막신 만드는 사람들|국수를 파는 주막|비나이다 비나이다|서당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들|칼을 차고 있는 교사
3. 아름다운 사람들
명성 황후 집안의 딸|궁중 옷차림을 한 여인|왜 나라를 뺏기고 말았을까|한일 병합을 도왔던 할아버지|어머니의 부채 바람에 잠든 아기|순이는 당차다|대한 제국 말기의 내시|조선의 마지막 군인|관리가 되지 못한 청년|홍포를 입은 청년|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할아버지|소리의 세계를 만드는 대금 연주자|세상이 바뀌는 걸 무슨 수로 막나|인자한 선비|거문고와 피리 연주
4.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
달빛 아래 서울 흥인지문|해 뜰 무렵의 서울 흥인지문|일곱 개의 물길, 화홍문|소를 탄 아버지와 아들|별이 내리는 저녁 바다|선생님과 제자들의 나들이|평양 대동문|대동강 풍경|아홉 마리 용들이 노니는 금강산 구룡폭포|구름을 타고 신선이 내려온 금강산|저녁밥 짓기|하얀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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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유안 (지은이)의 말
내가 엘리자베스 키스를 만난 것은 그림을 통해서였어. 언덕에서 연 날리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 아기 업은 엄마의 뒤로 돌려 잡은 손, 빨래하는 아낙의 방망이질... 처음 그 그림들을 보았을 때 가슴에 차오르던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 오래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모습과 풍경은 아름다웠고 또 슬펐어.
... 엘리자베스의 그림과 언니 제시의 글은 마치 오래된 다락방에서 발견한 할머니의 젊은 날 일기처럼 아리고 아픈 증언이었어. 그때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욕되고 힘들었을 때야.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일본에 주권을 빼앗겨 황제가 쫓겨나고, 칼 찬 일본 순경들이 우리나라를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던 일제 시대였거든. 서양 문물이 들어와서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젊은이와 학생들이 목숨 걸고 싸우던 때였지. 그때 그 시절을 살던 사람들과 마을의 모습이 그림에 가득 들어 있었어.
그림과 글을 보면서 나는 백 년 전의 서울과 평양, 함흥, 원산 거리에 서 있는 것 같았어. 설렘과 떨림을 안고, 엘리자베스가 보여주는 그림을 그이와 함께 짚어 나갔어. 머나먼 영국에서 온 화가가 우리들의 옛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 주었어. 나는 어느새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옛 시절을 만나고 있었던 거야. 엘리자베스와 나눈, 낮지만 크게 울리는 이야기들을 지금 이 땅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 그래서 쓴 이야기가 이 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