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확실하게 '현재' 속을 살고 있는 작가 무라카미 류의 지평은 팽창하는 우주처럼 넓어지기만 한다. 술, 음식, 여행, 음악, 춤, 인터넷을 섭렵한 그가 새 소설 <368야트 파4 제2타>에서는 골프에까지 손을 뻗쳤다.
하지만 단순히 소재로서의 골프를 이야기하기 위한 소설은 아니다. '희망과 재생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것은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꿈과 하루하루의 흥분을 되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설의 주인공은 힘에 버겁지만 도전할 만한 일을 맡게 된다. 온갖 것들이 앞을 가로막고, 무엇보다도 편안함에 익숙해진 자신의 타성이 자기를 가로막는다. 그를 벌떡 일으켜세우는 것은 한때 자신의 학생이었으나 지금은 프로골퍼로 나선 켄타로의 골프 샷이다.
속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올라 삶을 활기차게 만드는 '거품방울', 그것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중년의 사람들에게 류가 전하는 메세지이다.
최근작 : | … 총 9종 (모두보기) | 소개 : | 경희대학교 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여러 해 동안 일본서적 전문 기획자로 일했다. 현재는 번역문학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청춘>, <마음의 병, 그 정신병리>, <난쟁이가 하는 말>, <어처구니없는 엄마들과 한심한 남자들의 나라 일본> 등이 있다. |
무라카미 류, 그는 현재 동시대 어느 작가보다 활발하게 다양한 작품 세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창녀, 고아, 신문기자, 에이즈환자 등― 그들이 속한 다양한 세상을 독자 앞에
펼쳐내고 있는 것이지요.
류가 표현하는 세계는 "작가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기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배경에서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은 세상을 어떻게 볼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알려진
류의 소설이 주로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을 그린 작품이다 보니 그 동안 류에 대한 선입견이 형성되어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무라카미 류는, 작가 자신, 혹은 자신을 반영한 하나의 인물이 일관된 정서를 전달하며 장편 소설을 지배해나감으로서 모나지 않은, 혹은 비교적 일관된 평가를 받는 하루키와 종종 여러 면에서
비교되고는 하지요. 하루키가 여러 사람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반면, 무라카미 류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엇갈린, 혹은 극단적인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극찬과 비난 속에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무라카미 류만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368야드 파4 제2타]는 이렇듯 술, 음식, 여행, 음악, 춤 등에
이어 이제는 골프에까지 달려드는 류의 에너지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현재상황이 암울하거나 현재에 안주하며 생활하고 있다면..... 가슴속에 빛나던 어린 시절의 그 무엇을 잃어버렸다면..... 자, 이제 다시 한 번 기적의 '368야드 파4 제2타'를 날려 봅시다!
줄거리부인과 애인이 있는 나는 평범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개인경영 독립프로듀서이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시절 동네 꼬마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던 때의 학생, 켄타로로부터 미국에서 프로골퍼가 된다는 내용의 편지가
온다. 나는 해외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켄타로에게서 힘을 얻는다.
그런 나에게 브로드웨이의 거물 뮤지컬 연출가 헨리 루코너의 신작 뮤지컬 프로듀스 건의 큰 찬스가 들어온다. 나는 직원 미즈키와 함께, 대행사 없이 이 대(大) 이벤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계약을 끝내고 루코너를 만나기 위해 하와이에 가지만 미즈키가 연락처를 써준 것을 잃어버리고, 약간의 해프닝 끝에 가까스로 루코너와 접촉하게 된다. 나와 미즈키는 루코너와 함께 골프를 치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일본인론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점점 친근해져 간다.
루코너는 신작뮤지컬의 첫 공연을 일본에서 하겠다는 호의를 베푼다. 그렇지만 해외에서 공연에 성공했다는 실적이 없으면 스폰서가 붙지도 않고, 루코너의 이름으로도 돈을 대주지 않는 그런 일본의 시스템으로
인한 자금 문제로 고통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나에게 힘을 주는 유일한 것은 해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켄타로의 소식뿐이다.
그러던 중 한 거물 개발업자, 이와시타와 접촉하는 데 성공한다. 이와시타는 나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나는 마이애미에서 그를 만나 골치를 썩이던 돈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게다가 이와시타는 켄타로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어서, 얼마 안 있어 켄타로의 시합이 마이애미에서 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다.
켄타로의 시합이 열리는 곳에서, 대행사에서 일하던 사쿠라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나와 사쿠라이는 켄타로의 플레이를 관전한다. 예선통과가 다가온 어느 날, 켄타로는 기적의 제 2타를 친다. 나는 이 샷에
자신의 일의 기사회생을 오버랩한다.
본문 중에서거품방울은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갔다. 끓어넘치기 직전의 냄비 속과 같았다. 그 감각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를테면 골프만이 삶의 보람인 인간이 라운드하기 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그것과는
다르다. 골프만이 삶의 보람인 녀석이, "다음주에 당신은 세인트 앤드루스와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에서 골프 칠 수 있어요." 하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니, 골프로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일반 플레이어와 거품방울은 인연이 없을 것이리라. 선택된 아주 극소수의 프로가 메이저 토너먼트에서나 몇 번 느낄 수 있는 "내겐 신이 함께 한다."는 생각에 가까울지
모른다. 독립 프로덕션에서 엄청난 규모의 일을 처리하는 인간들은 뜻밖에도 자기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동안이 많다.
그건 그들이 아이들이나 할 법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어린 시절은 지났어도 거품방울과 함께, 거품방울을 최우선 순위로 삼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거품방울이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그건
능력의 한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를 내걸고, 자신의 능력을 최고 한도까지 힘껏 끌어올리고서야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싫고 좋고 하는 문제를 넘어 흥분과 쾌락을 선사한다. 그런 거품방울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다수 노예들은 거의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표정으로 규격 속에서 늙어 간다. 거품방울을 알고
있긴 해도 그것은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며 포기한 자들한테는 도박과 술, 마약과 여자, 거기다 어떤 종류의 종교가 남겨진다.
나는 10년 이상 그 거품방울과 단절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느낀 때가 언제였더라. 그것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히 기억나는 건, 학창 시절 악어 이빨 여자의 아버지한테 돈을 받아 로스앤젤레스에 갔던
때다. 그 이후로 나는 온몸이 전율할 듯한 흥분과 인연이 없었던 걸까? "광고 대행사라." 사과를 다 먹는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반 정도만 먹고 바구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먹다 남은 사과가 뭔가를 닮았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것이 뭔지 고민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 같군요. 전 구미가 당기는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미즈키는 돌려 말하는 법이 전혀 없다.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 싸다, 비싸다, 비교적 맞는다, 맞지 않는다, 가격, 필요, 그런 것들뿐이다.
역자 후기십 년 전 나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으리라. 물론 나이와 함께 얻어지는 많은 것들이 있어 굳이 어느 쪽이 좋으냐고 한다면, 지금이라고 하겠다. 허나, 그 시절 내가 가졌던 순수한
보석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월이 주는 선물도 동시에 누릴 순 없는 걸까.
하나를 포기하면 둘을 얻을 때도 있고, 냉소를 얻을 때도 있다. 지나고 보면 그 하나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때도 있고. 십 년 전 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호기심"이 아닐까? 어느 것 하나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고 작은 깨달음에 기뻐하던 태도. 또 다르게 열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것.
지금의 날 "호기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난 그것을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버린 것일까, 혹은 잃어버린 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류가 말하는 "거품방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거품방울은 흥분의 징후라고 말하면 될까. 예전엔 그저 들판을 뛰어다니기만 해도 그것이 몸 안을 헤집고 다녔다. 거품 방울을 생기게 하는 그것은 능력의 한계를 요구한다. 모든 존재를 내걸고, 자신의 능력을
최고 한도까지 힘껏 끌어올리고서야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무언가가 있다.
내게 그것은 무엇일까? 사춘기 때 맘에 둔 아이를 몰래 훔쳐보며 느끼던 설렘을 다시 갖게 하는 것? 류는 분명 흡인력 있는 작가였다. 번역자이기 전에 독자로서 이 책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더불어 류가
나지막이 건네는 말을 듣느라 한동안 "거품방울" 말곤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십 년 전 나는 그 "거품방울"이 무언지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나도 알고 있다. 허나 지금의 난 발걸음을 옮기기가 훨씬 더 어렵다. 그때의 나와 하나였던 호기심 혹은 열정을 포기하거나 버리거나, 잃어버린
후 난 무엇을 얻었을까? 가던 길 한켠에 서서 뒤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 소개무라카미 류본명은 무라카미 류노스케. 1952년 일본 나가사키 현 사세보 미해군 기지 주변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1976년 무사시노 미술대학 재학중에 미군 기지 동네 젊은이들의 일면을 그린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군죠 신인상 수상과 함께, 이시하라 신타로, 오에 겐자부로에 이어 현역 대학생으로 세 번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80년 [코인 로커 베이비스]로 노마 문예 신인상과 쿠바 문화 공로상,
히라바야시 다이코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대표작으로는 [교코], [69], [인 더 미소 수프], [러브&팝], [토파즈], [초전도 나이트 클럽], [이비사], [피지의 난쟁이], 음악 테마소설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낯선
나날들], 단편집으로 [백조], 음식 테마 소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첫날 밤 둘째날 밤 그리고 마지막 밤] 등이 있다. 자신이 직접 영화 감독으로 나서 [래플스 호텔(눈부시게 찬란한, 내 안의
블랙홀)]을 비롯해서 [교코], [토파즈] 등 다섯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작가와 영화 감독 외에도 사진작가, 화가, 음악 프로듀서, TV프로그램 진행자 등 다양한 경력과 직함을 갖고 있는 류는 권위와 보수에 대한
맹렬한 저항 정신으로 일본 젊은층의 상징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