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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덕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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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로 제149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소설집. 올요미모노신인상을 수상한 등단작 '설충'과 표제작 '빙평선'을 비롯해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홋카이도, 그중에서도 동쪽의 해무 도시 구시로를 중심으로 겨울이면 유빙으로 뒤덮이는 오호츠크해 연안 마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젊은 시절에 꿈을 좇아 대도시로 나갔다가 빈손으로 낙향한 뒤 불륜으로 공허함을 달래는 옛 연인, 이혼 후 전통 기모노 침선장이 되어 담담하게 새 삶을 개척해가는 여자, 부당한 시집살이와 남편의 무심함을 견디며 9년간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 자신의 가게를 찾은 창녀와 사랑에 빠진 젊은 이발사, 애인과의 지지부진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시골 부임을 자처한 치과 의사, 폭압적인 아버지로부터 도피하듯 관계를 맺었던 여자와 10여 년 만에 재회한 남자……. 한겨울 홋카이도의 대지만큼이나 척박한 삶에 짓눌린 채, 주어진 운명에 순응과 저항을 거듭하면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진다. 여섯 편의 초기 걸작들을 한데 모은 이 소설집은 압도적 필력으로 생의 문제를 담아내는 사쿠라기 시노 문학의 원점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설충_雪蟲
: 단조롭지만 선명하다. 차갑지만 생생하다.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이런 감각에 사로잡힌다. 색채를 잃어버린 대지와 하늘의 표정이, 공허함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체온이 분명하게 전해져온다. 그녀의 글은 독자의 마음을 북으로 북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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