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면서,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갈 때 필요한 '인생의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다. 남자형제만 있는 집에서 자라 남중남고를 나오는 등 평생 남자들 속에서 살아온 저자는 단 한 번도 '여자의 세상'을 고민해 본 적 없는 평범한 '한국남자'였다.
그런 저자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여자와 결혼해 딸 '율교'를 낳으면서 '여자로서의 세상살이'를 고민하게 된다. "왜 여전히 여자는 핑크색, 남자는 파란색인 걸까?" "한 번도 가르친 적이 없는데, 여덟 살이 된 딸아이는 어떻게 벌써 자전거를 남자만 타는 거라고 말할까?"
아빠는 '1-결심하기' '2-자전거 구하기' '3-연습장소 물색하기' '4-안전장구 챙기기' '5-실전! 페달 밟기' '6-단독 주행 연습하기' '7-일반도로 주행 실습하기' 이렇게 7가지 매뉴얼을 통해 '자전거를 가르치는 노하우'를 공감 가는 에피소드와 함께 알려준다. 그 속에는 여성이 차별받아 온 역사적 사건, 영화 이야기, 실제 겪은 사례에서 뽑아낸 '인생의 기술' 또한 들어 있다.
이 책은 아이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줄 때 부모가 겪는 고충들을 담은 '자녀교육 에세이'면서 아빠, 엄마가 딸, 아들과 함께 '젠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을 돕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남자' 예신형이 여자들의 세상을 목격하고, 그에 대해 공부하며, 딸아이가 누릴 세상을 고민하는 '아빠 성장 에세이'이기도 하다.
첫문장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는 포악한 악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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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 한국일보 2019년 4월 25일자
“아빠가 손을 놓아도, 넌 너만의 길을 찾아낼 거야.
너의 속도대로,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게 될 거야.”
저자 예신형은 어느 주말 오후, 딸아이와 레고를 갖고 놀다가 아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레고가 잘못됐어. 여자인데 파란색 바지를 입었어. 여자는 핑크, 남자는 파랑인데!” 이제 유치원 졸업반, 막 여덟 살이 된 딸아이 율교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벌써부터 아이의 머릿속에 ‘여자다움’ ‘남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이 들어앉았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저자는 쇼핑센터로 나가 딱 붙는 핑크색 바지를 사 입는다.(18쪽)
자신의 상식과 다른 아빠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에게 저자는 어떻게 해야 ‘자신다움’을 찾게 할 수 있을지, 그것을 가장 ‘쉽게’ 설명할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심을 시작한다. 바로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혼자서 타고, 스스로 방향과 속도를 정해야 하며, 한 번 배우면 절대 잊히지 않는 ‘자전거 타기’. 아빠는 선언하듯 딸에게 “자전거를 타자!”고 외친다.
딸. 자전거를 타자. 탈 줄 모르면 어때? 일단 타 보자. 양손으로 핸들을 잡고 안장에 올라앉아 한쪽 발을 페달에 얹으렴. 그리고 나머지 발로 땅바닥을 힘껏 밀어서 자전거를 출발시킨 뒤에, 다른 발을 맞은편 페달에 얹고 마구 밟아 주면 돼. 쉬울 거 같지? 근데, 미안.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야.
아, ‘자전거 타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야. 아마도 ‘시작하는 모든 것’마다 너에게 가슴 설레면서도 고통스러운 두려움들이 다가올 거야.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야. 네가 ‘여자로서 시작하는 모든 것’은 너에게 더 큰 고통과 인내를 강요할지도 몰라.-<본문 8~9쪽>.
저자는 딸과 함께 자전거를 고르는 날부터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스스로 타게 되는 날까지, 7단계를 거치는 동안 ‘여성으로서의 세상살이’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때론 역사 속에서, 뉴스 속에서,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 속에서 길어 올린 ‘그릇된 성 역할에 대한 시선’을 쉬운 언어들로 풀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아빠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편견에 놀라기도 하고, 오히려 딸의 ‘촌철살인’에 그것을 바로잡기도 하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때문에 이 책은 누군가에겐 부녀의 좌충우돌 ‘자전거 분투기’로 읽힐 것이고, 누군가에겐 ‘젠더 교육 첫걸음’으로 읽힐 것이며, 또 다른 사람에겐 평범한 ‘한국 남자의 성장일기’로 읽힐 것이다.
세상엔 네가 멀리해야 할 두 부류의 남자가 있어
‘끊임없이 설명하려는 남자’와 ‘설명해도 절대 들어주지 않는 남자’
시중에 나온 수많은 자녀교육서가 증명하듯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자전거를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뒤에 첫 번째로 맞이한 난관은 “자전거는 남자애들이나 타는 거야. 싫어!”라고 외치는 딸을 설득하는 일이나, 효과적으로 가르칠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아닌 ‘훈수를 두는 남자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율교한테 자전거를 가르쳐 주기로 했거든. 그것도 두발자전거. 그러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청난 양의 ‘설명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배울 때는 욕심내지 말고 네발자전거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텐데.”
“아니야. 배울 때 어렵더라도 두 발로 배우는 게 빨라.”
“아니라니까. 요즘은 하이브리드 자전거라고 해서 네발로 조금 타다가 보조 바퀴를 올리고 탈 수 있는 게 있어.”
“무슨 소리. 우리 어릴 때 생각 안 나? 초등학생 정도면 두발자전거로 배우는 게 나아.”
이후로도 세 명의 자전거 선생님은 ‘레슨용 자전거 고르는 법’ ‘자전거 타기 레슨법’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이어 갔고, 그러한 설명의 향연은 이후 ‘성인용 고급 자전거 계보’로 흘러갔다가 ‘내가 타 본 가장 비싼 자전거’로 연결되었다.-<본문 31~32쪽>
아직 자전거를 사지도 않았는데 쏟아지는 남자들의 설명을 들으며 아빠는 ‘맨스플레인(Mansplain)’에 대해 생각한다. 왜 대체 남자들은 여자에게 쉴 새 없이 설명하려 하는 걸까? 이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설명문들에 둘러싸여 살게 될까? 자전거를 사러가는 길, 아빠는 딸에게 맨스플레인 때문에 9?11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콜린 롤리(Coleen Rowley) FBI 요원의 일화를 들려주며(33쪽),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네가 자전거를 타겠다고 말하면, 수많은 남자가 네가 ‘원하지 않을 때’ ‘궁금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설명하려고 들 거야. 그럴 땐 아주 ‘예의 바르게’ 물컵 같은 걸 확 뒤집어 버려”라고. 딸을 낳기 전에는 몰랐던 ‘가르치려드는 남자들’에 불편함을 느끼고, 어쩌면 자신도 늘어놓았을지 모를 그 말들을 되짚어보며 저자는 강력한 항의를, 진심 어린 자기반성을 되뇐다.
맨스플레인은 단순히 ‘잘난 척하는 일부 남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지적 능력이나 업무 능력에 있어 월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무형의 명백한 폭력이다. ‘우리는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하는 사이가 아니니, 너(여성)는 잠자코 들어라’는 침묵의 강요다. 그리고 불균형한 남녀 관계와 양성 간의 지위를 고착화하려는 반사회적인 노력이다.-<본문 36쪽>
딸, 타다가 넘어질 것 같을 때는
차라리 자전거를 길바닥에 던져 버려!
아이가 자전거에 취미를 붙이면서 본격적으로 자전거 타기가 시작되자 아빠는 분주해진다. 일단 회사원으로서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시간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아이가 안전하게 연습할 만한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 성인과 달리 아이들은 헬멧, 무릎 및 팔꿈치 보호대 등 챙겨야 할 게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추는 게 가능해서, 율교와 자전거를 타러 가기로 한 날에는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일주일에 몇 번 되지 않는 그 ‘빅데이’에 ‘디지털 장의사’ 사업을 하는 선배가 술을 먹자는 전화를 걸어온다. 그것도 회사 앞이라는 쐐기를 박는 문장과 함께.
리벤지 포르노 자료의 디지털 장의를 요청한 여성이 괴로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유가족들의 요청에 의해 자살한 여성이 남긴 글과 사진을 지우는 작업까지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간혹 가다가 의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긴 유서나 지인들에게 남긴 메시지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에 가장 많이 씌어 있는 말이 뭔 줄 아니? ‘미안해’야. 낳아 준 부모에게 미안하고, 함께 자라 온 형제자매에게 미안하고, 현재의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미안하고, 본인 스스로에게까지 미안하다는… 정작 모두로부터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이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세상과 이별하는 이 기막힌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지.”-<본문 135쪽>
선배가 찾아온 그날, 신형은 이 땅의 여자들이 겪는 슬픈 현실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만취해버리고, 다음 날에서야 숙취의 몸으로 자전거를 타러 딸과 함께 반포 종합 운동장을 찾는다. 그런데 갖고 나온 헬멧, 보호대 등을 채우는 아이의 폼이 영 이상했다. 헬멧은 얼굴이 반 이상 가려지도록 쓰고, 팔꿈치 보호대는 손에, 무릎 보호대는 종아리에 끼운 게 아닌가? 고쳐 입으라고 말하려다 이유가 문득 궁금해진 저자는 딸에게 이유를 묻는다.
“아빠가 그랬잖아. 두개골은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뼈 중에 하나라고. 그런 뼈로 보호받고 있는데 굳이 헬멧을 머리에 쓸 필요가 없잖아.”
아이는 본인이 연예인을 하려면 얼굴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얼굴을 지키기 위해서 헬멧을 내려서 쓴 거라고 했다.
“그러면 팔꿈치 보호대랑 무릎 보호대는?”
“나한테 제일 중요한 곳은 손이랑 발이니까 거기를 보호해야지. 어제 아빠가 준 쇼핑 쿠폰으로 더 좋은 장갑을 사야겠어. 네일아트랑 미니어처 방과 후 수업을 받아야 하니까 나한테는 손이 제일 중요해.”-<본문 136쪽>
안전장구는 가장 중요한 부위를 보호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그런데 그 목적을 충족하려면, 자신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지키면 된다. 아직 딸이 어려서, 잘 몰라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리란 노파심에 안전장구를 착용시키고도 늘 더 입힐 게 없나 찾던 아빠 신형은 이미 자신에게 무엇이 소중한지를 깨달은,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란 딸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너를 ‘김여사’라고 불러 대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네 이름이 뭔지 똑똑하게 알려 줘야 해
넘어지고 다시 타기를 반복하기를 여러 날, 드디어 신형은 자전거 뒤 안장에서 손을 떼고, 멀찍이 들려오는 “아빠, 잘 잡고 있지?”라는 외침을 듣는다. 마침내 율교의 단독주행이 시작된 것이다. 매일같이 드나들었던 반포 종합 운동장을 벗어나 일반도로 주행을 나선 부녀는 서래마을 골목길에서 흥미로운 사건 현장을 목격한다.
“감히, 어디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가 21세기 서울 한복판, 그것도 외국인이 많이 살기로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서래마을 대로변에 울려 퍼졌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차량 두 대가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얼굴을 맞댄 채 서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가기 위해 대로에서 바로 그 좁은 도로로 접어든 검은색 국산 세단과 대로로 나가려고 골목길을 빠져 나오던 외제 SUV가 1미터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본문 217~218쪽>
서로 양보하면 1분이면 끝났을 작은 시비는 ‘젊은 여자’가 ‘감히’ ‘외제 SUV’를 몰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차까지 출동하는 커다란 사건이 되어버린다. 그 장면을 보고 갸우뚱거리는 딸을 보며, 우리가 뉴스 기사 속에서 ‘김여사’라는 타이틀로 쉽게 마주하는 이 같은 사건을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해줘야 하나 신형은 난감해진다. 여전히 여성이 전문성을 띤 직업을 갖거나,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일을 하거나, 값비싼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거나, 심지어 차를 운전하는 일까지도 쉽사리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취급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줘야 하지? 그런데 사건의 실마리는 의외의 곳에서 풀린다. 율교가 표지판을 보고 이곳이 ‘일방통행’ 골목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세단 운전자에게 딱지를 떼는 경찰 앞에서 아빠는 통쾌함과 함께 몰려오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생각한다.
서래마을 골목길에서 한판 사극 연기를 펼친 검은색 세단 운전자가 내뱉은,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감히’라는 말은 한자 ‘감敢’자에‘?히’라는 한글을 덧붙여 만든 것이다. 이 ‘감’자의 형성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맹렬하게 달려오는 멧돼지에 맞서 작은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떠 쓴 글자라고 한다. 즉, 누구나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만한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에 맞서는 모습이 바로 ‘감히’다. (...) 이제 여성들은 남성들이 ‘감히’ 또는 ‘감히 여자가’라고 수식어를 붙이는 모든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로, 그동안 여성이 드물었던 곳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남성들은 여성들이 하는 일에 대해 ‘감히’라는 말을 붙이는 혹은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본문 226쪽>
신형은 앞으로 계속 일반 도로 위에서 사람들과 함께 달려야 할 딸아이에게 당부 몇 가지를 잊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너를 보면서, 사람들은 ‘김여사’ 같은 원치 않는 이름을 붙여 댈 거야. 그때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마. 네 이름이 뭔지 큰 소리로 알려 줘. 길을 가다가 ‘여성 금지’라는 표지판이 보이면 말이지. 보이는 족족 ‘감히’ 뽑아내버려!”라고.
아빠는 너에게서 이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희망을 봐
그러니 계속해서 페달을 밟으렴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7개의 매뉴얼’ 속에서 저자 예신형이 알려주는 세상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냉혹해 보이기도 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서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전거를 타면서 성장하는 딸아이 율교의 모습, 아이의 시선 덕분이다.
“자전거는 남자애들이나 타는 거야!”라고 소리 지르며 배우길 거부했던 딸, 율교는 아빠에게 자전거를 배우는 과정에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라는 이분법을 서서히 걷어내고 ‘자신다움’을 찾기 시작한다. 연습 주행을 하러 나선 운동장에서 남자아이들이 공을 던지며 “여기는 우리 자리야. 여자는 나가!”라고 외치자, 율교는 “야, 반포 종합 운동장이 다 너네 땅이냐!” 하고 그들을 향해 공을 뻥 차버린다(85쪽). 알량한 공간지각능력을 앞세우는 남자를 비난하던 저자 본인도 길을 못 찾고 공원 지도만 보고 있을 때, 율교는 여성 특유의 ‘공감 능력’을 발휘해 길을 물어 즉시 출입구를 찾아낸다(98쪽). 아빠가 이 사회에 실망할 때마다, 노파심을 발휘할 때마다 딸아이는 오히려 세상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율교야, 앞으로 네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무렵이면 남자들이 너를 잘 안 껴 주려고 할 거야. 술자리건, 담배를 태울 때건. 그리고 목욕탕에 가서 저들끼리만 쑥덕이며 서로밀어 주고 당겨 주고 너를 따돌린 채 짬짜미를 하려 할 거야. 그럴 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딸은 모여 있는 남자친구들을 향해 뛰어가며 말했다.
“아빠, 요즘 찜질방은 남녀공용이야! 여탕, 남탕에서 몸만 씻고 한자리에 다 모여서 노는 거거든!”
순간, 나는 자전거를 붙들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깨 위로 는 계속 덜 마른 머리에서 흘러내린 물기가 방울 지어 똑똑 떨어졌다. 남자애들과 툭탁거리며 장난을 거는 아이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래, 나도 이제 달라져야겠어. 왜냐하면 지금은 2018년이니까!Because it’s 2018!’* -<본문 175쪽>
이 책에서 저자 예신형이 말하고자 하는 ‘여성으로서의 세상살이’는 그리 대단한 내용이 아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알고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딸을 가진 아빠라면, 아들을 키워내는 엄마라면 알아야 하고, 또 아이에게 설명해줘야 하는 상식들이다. 그 속에서 평생 남자들에 둘러 싸여 살던 평범한 ‘한국남자’ 예신형이 아이가 살아갈 현실을 걱정하고, 그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마음도 읽어낼 수 있다면 이 땅은 딸들이 조금 더 살만 한 곳으로 바뀌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