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 만만한 게 ‘58 개띠’였다. 지방 소도시의 중고등학생 시절, 또래 친구들끼리 짐짓 허세를 부릴 때면 약속이나 한 듯 서너 살 위인 58 개띠를 참칭하곤 했다. 발에 차이는 게 58 개띠였다. 문학 담당 기자가 되어 문인들을 접하다 보니 도무지 58 개띠를 피해 가기 어려웠다. 이재무 형은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가장 자주 어울린 58 개띠였다. 「밤밭골」 「기차」 같은 시의 무대인 수원 밤밭골〔栗田〕 형의 집에서 당시 내가 살던 정자동 집이 멀지 않았다. 자신이 개띠라서일까. 밥벌이를 위해 오가다 마주친 신도림역의 살찐 쥐며 한강 철새들로부터 서울 살이의 요령을 배우기도 하지만, 재무 형이 특히 마음을 주는 존재는 역시 개다. 광화문 새문안교회 앞 인도에서 떠돌이 개를 목격한 형은 “어쩌면 나도 그처럼 이방의 나라에 강제/ 전입된 신민의 하나”일 것이라며 남루하고 늙은 개의 “노여운 슬픔”(「푸른 개」)에 공감한다. 60년 전 부여 증각골에서 출발해 마포에 번듯한 자가 아파트를 마련하고 느긋하게 한강변을 산책하기까지 재무 형은 얼마나 자주 분노와 슬픔을 삼켜야 했을 것인가. “누추한 가장 신고// 세상 바다에 나가// 위태롭게 출렁, 출렁대면서// 비린 양식 싣고 와 어린 자식들 허기진 배 채워주었”(「폐선들」)던 신발장 속 해진 신발들은 광화문의 떠돌이 개이자 바로 형 자신의 초상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분노와 슬픔에 먹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소화시켜 시의 자양분이자 삶의 활력으로 삼는 재무 형의 태도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돌이켜 보면 형과 교분을 나누기도 어언 사반세기가 넘었다. 갑년을 맞은 형의 시선집 발간이 내 일처럼 설레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