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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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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문단 안팎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권혁웅의 산문집. 책에 붙은 시리즈 이름이 '시인의 감성사전'인 데서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듯 이 기획은 사전의 방대함과 감성의 세세함과 그림의 상징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다시 말해 책을 읽는 맛과 책을 쓰는 맛과 책을 보는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쓰이고 그려지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세번째 주제를 '사물'로 삼아 여기 460페이지의 두툼한 사전 형식의 책 한 권으로 빚어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계간 「풋,」, 월간 「문장 웹진」과 「현대시」 연재되었던 원고에 보태기를 하여 '사물'에 관한 그의 사유들을 완성해낸 것이다. 단추, 빵, 클립, 하나(1), 그릇, 시소, 등, 숟가락, 뚜껑&마개, 도넛, 연필, 꼬리, 글자, 지도, 거울, 가면, 이불, 정원, 무덤, 그물, 인형, 이렇게 총 21개의 사물들이 지극히 건강하게 수다스러운 저자 권혁웅의 입을 빌려 챕터마다 자유자재로 '놀고' 있는데, 그 가짓수가 386개에 이른다. 각 사물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이야기들에 있어 묘한 지점이라고 하면 글마다 그 스타일이라는 게 무대 뒤에서 디자이너의 스케치에 따라 훌렁훌렁 옷을 잘도 갈아입는 모델처럼 변신을 잘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서노트였다가 일기였다가 시작메모였다가 산문시였다가 글의 섭동에서 오는 스타일의 자유로움을 자랑하며 우리 몸에 대한 다각도의 이해를 구하는 이 책은 그러므로 전방위 글쓰기 교본이라 해도 무리이지는 않을 것만 같다. : 이것은 뜻밖의 사전이다! 독법의 방향에 따라 지극한 사랑 사전이 되기도 하며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21세기 사전’이 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읽는 사람이 완성해갈 수 있도록 다양한 맵을 내장한 능동형·개방형 사물 사전이라는 사실.
단추에서 인형까지, ‘21개의 사물’은 힘이 센데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트랜스포머’들이다. 하나만 살짝 공개하면, ‘시소’는, 프로이트의 사유로, 카메론의 영화로, 경상도식 사투리로, 생명을 마주한 시소인 심전도로, 단칸방으로, 난독증으로, 태백선으로, 개복치로, 그네를 밀어주는 이는 나를 날게 해주는 사람(조력자)이지만 “시소에서 만나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놀이터에서 발견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탈주하는 식. 이 책을 읽고 내가 알게 된 것. 우리가 “생각하는 연필”이라는 것. “지우개 매단 연필이 인간의 자화상이란 뜻이에요.” “클립의 바깥 부분을 60도 각도로 접으면 하트 모양”이 된다는 것. 슬하에서 돌봐주었는데 엄마의 아픈 무릎을 잘 보고 있지 않다는 것. “등잔 밑이 어둡다”고요! 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긴 자신감. “어서어서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바다가 보이지않는”다는 펭귄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뜻밖의 펭귄 손을 잡고 ‘어서어서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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