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낚시통신>,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의 작가 윤대녕의 소설집. 표제작 '대설주의보'를 비롯하여 발표 당시 호평을 받았던 단편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윤대녕 소설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생의 불가항력에 직면한 인물들. 각각의 소설에서 이 키워드는 빠지지 않고 소설 안에 안착한다.
허탈한 오해와 얄궂은 상황 탓에 헤어지게 되는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 '대설주의보', 해마다 청명(淸明)이 되면 지방 어느 온천에서 만나는 연인의 이야기 '보리' 등 생의 불가항력에 가로놓인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운명의 고리를 순환하지만 도중에 생의 고통과 휘둘림 끝에 가야만 했던 제자리에 도착한다.
보 리
풀밭 위의 점심
대설주의보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오대산 하늘 구경
도비도에서 생긴 일
여행, 여름
해설-신형철 | 은어에서 제비까지, 그리고 그 이후
작가의 말
윤대녕 (지은이)의 말
단편 「대설주의보」는 2008년 겨울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쓴 것이다. 내 생에서 모종의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는데, 과연 그 심정을 담았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이 소설은 최승호 선생의 오래전 시집 『대설주의보』에서 영감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책을 내기 전 선생께 전화를 걸어 새 소설집의 제목을 『대설주의보』로 하고 싶다고 하자, 선생은 뭐 괜찮지 않을까? 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보리」와 「여행, 여름」은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썼다. 그곳에 머물게 되면 나는 여지없이 비감해지곤 하는데, 아마 박경리 선생 때문이 아닐까? 「보리」는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 여름에, 「여행, 여름」은 작년 여름에 씌어졌음을 밝혀두고 싶다.
「오대산 하늘 구경」과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는 재작년 여름 ‘월정사’에서 두 달 간 여름 방부를 들였을 때, 「도비도에서 생긴 일」은 작년 겨울 속초에 있는 ‘척산온천’에서 썼음도 훗날까지 스스로 기억해두고 싶다.
나머지 한편「풀밭 위의 점심」만이 일산 ‘작업실’에서 쓰인 것이다. 연전에 나는 문인 집단거주지역인 일산을 떠나 서울 북한산 아래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더불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위에서 일일이 밝혔듯 감사를 드릴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 소설은 다만 혼자 쓰는 게 아니라는 자각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렇다면 칼날을 입에 문 사내처럼 좀더 일념의 자세로 임해야 하지 않았을까? 어느덧 나는 등단 이십 년이 되었고 여섯 번째 소설집을 내고 있다. 그런데도 늘 앞이 막막한 것은 삶 자체가 막막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래 만나온 사람들의 존재가 더더욱 소중하고 그리워진다. 만나서 헤어지는 순간부터 다시 그리워진다. 그럼 뒤를 돌아보게 돼 있다(나는 결코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때 그들도 나를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심정으로 계속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 순간마다 부젓가락으로 가슴을 후비듯 목울대로 뜨겁게 차오른 생각이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내 책을 읽어준 독자들께도 새삼스레 인사 전하고 싶다. 부디 오래오래 소중히 생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