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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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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아이가 하나 보인다. 여러 색깔의 벽에 묻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구부정하게 걸어가고 있다. 표지에 등장하는 걸 보면 아마도 주인공 루이인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 주인공은 이렇게도 기운 없이 어적거리고 걸어가고 있는 걸까?
책이 시작하며 들리는 로베르토와 수지의 말 또한 예사롭지 않다. "루이도 왔네. 쟤가 올 줄은 몰랐는데." 이쯤에서 짐작해 보건데 루이는 그다지 친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듯하다. 어쩌면 루이 스스로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서 로베르토와 수지가 펼치는 인형극이 시작될 즈음, 작은 사건이 벌어진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루이가 인형 구씨를 쳐다보며 '안녕'을 외치는 것이다. 팔을 쭈욱 펴고, 종이로는 나팔을 만들어 크게 크게... 앞장의 그림들과 무척이나 대비되는 그 동작을 보면 아마도 루이는 인형 구씨가 굉장히 마음에 든 것 같다. 연극이 끝나고도 인형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던 루이는 다시 타박타박 집으로 걸어간다. 표지 그림이 반복되면서 이제 루이의 쓸쓸한 뒷모습이 인형 구씨에 대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자기 방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구씨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는지, 모처럼 발견한 친구와 제대로 사귀지 못해 속상했는지, 루이는 벽에 붙어 앉아 괴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흑인 아이 루이는 자폐증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놀랄 만한 집착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루이는 그저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어울리지도 못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에게 꼭 맞는 친구를 발견한 아이 말이다. 어느 쪽이든 수지와 로베르토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를 볼 수 있는 결말은 퍽 감동적이다. 그 아이들은 벌써 알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서로를 도와가며 살 수 있는지... 에즈라 잭 키츠의 그림책을 꾸준히 보아온 독자들이라면 다른 책들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지는 <피터의 의자>에서 피터를 그토록 속상하게 했던 갓난 아이 수지라던가, 로베르토는 피터의 친구로 어디에서 나왔던 아이라던가, 로베르토가 연극에 이용하는 생쥐 인형은 <꿈꾸는 아이>에 등장했던 생쥐와 똑같이 생겼다던가 하는 것들은 이야기의 전개와는 별 관련이 없지만, 아는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림 한 컷으로 등장인물의 심리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솜씨, 아이들의 세계를 너무나도 잘 포착해내는 시선, 아이들다운 마음 씀씀이로 자아내는 흐뭇한 결론 모두가 에즈라 잭 키츠의 그림책이라는 입증해 주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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