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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금융을 다룬 우영창 작가의 장편소설. 국제금융의 이상 비대화와 중산층의 몰락에 따른 양극화의 심화에 주목해온 우영창 작가가 세계 대다수 민중을 희생으로 탐욕스런 배를 불리고 있는 금융자본에 도전해온 전지구적인 기구 '세계금융정의연대 world finance justice'의 활약을 그린 소설이다.

악덕 금융업자와 파생상품 투기꾼들에 대한 표적 테러를 10여년 간 가행해온 WFJ(세계금융정의연대)의 한국계 여대원과 대형증권사 상품트레이더였다가 동료들에게 배신당하고 어린 아들의 죽음과 이혼을 거쳐 여동생이 하는 저가형 치킨집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최하층 남자.

이 두 남녀의 모험적인 로망을 축으로, 탐욕스런 금융인들과 서민들의 쌈짓돈을 갈취하며 연예인과 스캔들을 일으키는 재벌 3세 아이돌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거기에 거액 자산가의 유산과 중견기업 동서강관을 차지하기 위한 금융정의연대와 탐욕 금융업자들간의 한 판 대결이 복선을 깔며 드라마틱하게 진행된다.

방현석 (소설가, 중앙대 교수)
: [더 월]은 우리 문학이 비로소 세계적 시야와 문장을 확보했다는 걸 보여주는 쾌거다. 모든 종류의 ‘금지’를 금지하는 작가의 상상력은 본격소설과 장르소설의 칸막이를 해체하고,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괴물이 된 금융자본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1년 12월 31일 '책꽂이'
 - 한겨레 신문 2011년 12월 31일 교양.문학 새책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2년 01월 05일자

수상 :2008년 문학의문학 소설상
최근작 :<배를 내민 남자 2>,<배를 내민 남자 1>,<한옥리모델링 : 170년 고옥을 대수선하다> … 총 10종 (모두보기)
소개 :

우영창 (지은이)의 말
이름 없는 이들과

창밖은 뿌옇다.

비는 대지를 파고들고 강물에 뒤섞이고 허공에 아득히 펼쳐 있다.
한밤중의 빗소리는 까마득히 먼 옛적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곳에, 추위에 떠는 영혼들이 살아있고, 그들이 그 밤을 지금 이곳으로 보내왔음을 나는 알고 있다. 밤은 밤에 잇대어 지금껏 그 냉기를 전해왔다.
나는 내가 어딘가에서 왔기를, 동굴의 얼굴들, 시장의 얼굴들, 피난민의 얼굴들, 헛간의 얼굴들에게서 왔음을 바라고 있다. 이름 없이 죽어간 모든 이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 여기, 인류의 일원이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소수의 탐욕과 이기심이, 광범위한 빈민을 양산하는 이 세계의 비열한 구조에 눈을 감으면 이미 타협한 자요,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임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항의하는 방식이 서툴고 졸렬함은, 그 방식이 내가 놓은 덫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또 고백한다. 이 소설이 상업 장편 영화의 플롯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반은 자진해서 그 낡은 틀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진부함’은 그 자체로 나를 매혹했다. 그리고 바로 그 장소에서, 문학이 영상과 어떻게 다른가를 입증코자 애썼다면 한갓 수사학자의 주장일까?
그리고 나는 주목한다. 매일 매일이, 출구가 없어 보이는 지리멸렬한 일상이 사실은 우리 생 전부의 무게감을 매번 요구해온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요구하지만 더 나은 ‘일상’은 미망일 수 있다는 점에 내 시선은 자꾸 머문다. 이 야릇한 이중성, 그건 삶이 재화나 이루어야 할 거창한 그 무엇 이상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죽음의 숙명에서 오는 우리 존재의 신비와 허약성,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루살이처럼 가벼운 우리가 실은 심연을 가로질러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세상은 나아질 것인가.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아질 거라는 확신은 없다.
70억의 삶이 호흡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싸우고, 굶고, 매 맞고, 죽어가는, 그래도 한편에선 웃고, 포식하고, 섹스하고, 하품하는 이 도착적인 현장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집단과 개인의 이성과 도덕성을 시험받아야 하는 시련에 처해 있다. 문학이 그 시련에 동참하는 건 의무감 때문이 아니다. 이 세계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 지구촌 곳곳에서 새 생명들이 탄생하고 있다. 세계가 어떻게 되어 먹었건,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건, 아랑곳없이 생명들은 탄생한다. 그것이 세계가 존속해야 하는 이유는 아니지만 존속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아마도 후자가 훨씬 중요하리라. 새 생명은 그 자체로 세계의 오염을 정화하는 산소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