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신인상에 '또 다른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재영의 첫 소설집. 등단 이후 만 5년간 발표해온 작품들을 묶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루는 소설들을 비롯하여, 패배자들의 지친 삶에 주목하는 열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코끼리'와 '아홉 개의 푸른 쏘냐'에 등장하는 러시아, 네팔, 중국,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들은 출구 없는 막다른 절망과 고통스런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이들은 타지의 섬뜩한 폭력을 견디며 무서운 절망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성실한 취재가 바탕이 된 표제작 '코끼리'는 국내의 현대문학 교수 350명이 뽑은 '2005 올해의 문제 소설', 작가들이 뽑은 '2005 올해의 좋은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
'미조'의 주인공은 이혼과 실직을 겪은 뒤 도시생활에 대한 환멸을 안고 낙향하여 술로 세월을 보낸다. 그에게는 더 이상 행복해지려 하는 꿈이 없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자정의 불빛'은 의식 없는 삶을 살아가는 부르주아의 속물성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코끼리
아홉 개의 푸른 쏘냐
국향(鞠香)
치어들의 꿈
사라져버린 날들
자정의 불빛
물밑에 숨은 새
또 다른 계절
미조(迷鳥)
국화야, 국화야
- 해설
- 작가의 말
김재영 (지은이)의 말
봄날의 벚꽃과 초여름의 철쭉, 한여름 계곡과 가을날의 단풍은 말할 것 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편 계절과 계절 사이에 조심조심 생장하고 가만가만 갈무리하는,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견디는 풀과 나무들을 지켜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슬프고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비로소 숲의 내밀한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순간 내 소설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쾌하고 농염하진 않지만, 달빛 속에서 도란도란 속내를 드러내는 살가움이라면. 아린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함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