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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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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며 등단한 박민정의 첫 번째 소설집. 이 책에 게재된 작품은 모두 여덟 편으로, 현 청년 세대와 부모 세대가 겪는 갈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기숙사가 딸린 국제학교에 입학한 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부모를 거부하는 <옛날 옛적 미국에서>는 가계 파탄이 가져온 부모의 윤리적 타락과 자식의 복수를 반전과 공포를 통해 재현한다.
표제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는 장애가 있는 몸에 부모의 학대까지 받아 존재감을 상실한 주인공의 도덕적, 심리적 무감각이 초래하는 비극을 통해 몸 없이 정신만 남아 있는 유령 같은 인생이 신체를 얻었을 때조차 완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보여 준다. 그러나 작가는 세태를 고발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박민정 소설에서 가족 파괴 서사는 부모의 양육 방임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다면적으로 제시된다. 부모의 잘못은 부재, 결격, 무능, 불능, 태만, 무책임, 부도덕, 위법 등 ‘돌봄’을 방해하는 모든 층위에 걸쳐서 나타나며 자식들은 그들의 자식에게 폭력을 대물림하며 가족에 저항한다. 부모 세대를 거부하기 위해 그들과 닮아 가는 아이러니는 가족을 넘어 한국 사회의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를 건드린다. 병든 가족이라는 입구로 들어간 독자들은 소설의 출구에 이르렀을 때 한국 사회의 오늘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실내극 이후 : 부모가 자기를 독자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부모의 의식 속에서 자기는 지워져 있으므로, 자기도 그저 자기의 일부일 뿐인 배 속의 아이를 지운다. 박민정의 청년은 부모가 되지 않음으로써 부모의 불능을 가장 철저한 지점까지 완수한다. :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잠복되어 있을 뿐이다. 당신은 도시의 경계를 둘러싼 ABC 중 하나일 뿐이며, 상처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알파벳은 없다. 그리고 알파벳들이 모여 만들어 낸 거대한 문장 가운데 하필 당신이 오타가 될 수 있다. 박민정의 소설은 그런 오타들의 모음이다. 동시에 오랜 시간 체내에 진득하니 자리 잡았던 상처의 발현들이다. 그것을 오류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 여덟 개의 이야기가 여기에 적혔고 그리하여 하나의 소설가가 탄생했다. 박민정은 참담한 상흔을 동정이나 긴장 없이 오래 바라보는 일을 담담히 해낸다. 중대한 걸음이다. 쉽지 않은 걸음이 될 것이다. 이 걸음의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곳에서 박민정을 다시 만나고 싶다. 아마도 그곳에는 토니 모리슨의 황색 후계자가 꾸부정한 자세로 뭔가를 끼적이고 있을 것이다. 망각으로 봉합된 상처 위에 독한 소금을 양껏 뿌리고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이 책,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임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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