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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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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젊은 작가 8권. 2010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래 무개념한 주인공, 무개념한 주인공보다 더 생각 없는 서술자, 단순하다 못해 평면적인 서사 등 독창적인 이야기 구조와 비교 불가한 개성적 문체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 온 작가 김엄지의 첫 장편소설.
2014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 봄호에 게재된 소설로, 게재 당시 "익명적인 세계에 참여해 있는 익명적인 존재"를 통해 나아지지 않는 일상의 무의미한 반복이라는 "악무한의 사슬"을 그려 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선한 충격과 기대를 동시에 선사했다.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영위하며 식욕, 수면욕, 성욕 등 기본적인 욕구만 소심하게 추구하는 주인공 E의 무의미하고 반복적이며 성취 없는 일상을 간결한 문체와 불연속적 장면, 그것의 무한한 반복을 통해 서술함으로써 생의 불가해함과 권태로운 일상이 동반하는 고독의 질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 : 많은 작가들이 작금의 시대를 지옥으로 묘사하곤 한다. 재난, 전쟁, 테러, 가난……, 이런 것들이 그 지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는 어떤가? 주말, 출근, 산책, 주말, 출근, 산책, (가끔 술), 주말, 출근, 산책……. 이 소설 속에 다른 것은 없다. 빨래를 하거나 하지 않는 주말, 그리고 똑같은 출근과 점심과 퇴근, 약간 다른 안주에 마시는 몇잔의 술, 매일 보는 동료들과의 무의미한 대화, 그러면 다시 빨래를 하거나 하지 못하는 주말, 출근, 퇴근, 술, 산책, 다시 주말……. 이것이 이 소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전체다. 재앙이나 재난마저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 ‘애증?복수?권태?폭력?불합리’마저도 감지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세계, 기억하거나 의미화할 만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가치’ 그 자체인 세계……. 말하자면 김엄지식 지옥이다. 전혀 차이나지 않는 반복, 그 악무한의 무의미 속을 발목 잘린 비둘기처럼 견디며, 실은 견딘다는 의식마저도 없는 채로 살아가는 ‘인간-동물’들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되묻고 싶다. 남의 이야기 같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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